납치범이 남긴 쪽지 중 ‘네가 보고 있는 B씨’라는 대목에서, 쪽지가 발견될 당시에는 어쨌거나 실제로 눈에 보이는 B씨가 집에 있기는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가능성은 두 가지로 좁혀집니다.
첫째, 실제로 B씨가 부주의하게 버린 발톱을 쥐가 주워 먹고 사람으로 변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체의 일부를 매개로 한 변신 마법은 어지간히 수준 높은 마법사가 아니면 사용할 수 없는 고난이도의 마법입니다. 물론 어떤 마법사나 드래곤이 데일리 던전이 내보내는 기사에 불만을 품고 영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B씨를 납치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처럼 고명한 마법사나 위대한 드래곤이 일간지에서 내는 기사에 신경을 쓰기나 할까요? 게다가 그냥 납치하고 협박만 해도 충분히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텐데 굳이 번거롭게 마법을 써서 분신을 남겨놓을 이유도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두 번째 가능성ㅡ즉 B씨가 일종의 이인증을 겪고 있다는 데 무게를 두려고 합니다. 쪽지 내용을 바탕으로 B씨가 납치되어 갇힌 장소와 그의 현재 상태가 어떠한지부터 알아볼까요? ‘습도 80%가 일교차 50도로 조절되는 쾌적한 던전’? ‘노예처럼 행복하게‘? 굳이 제가 굵은 글씨로 강조하지 않아도 두 표현 모두 모순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납치에 따른 어떤 요구사항도 없습니다. 만약 진짜 납치자라면 B씨의 끔찍하고도 불행한 상황을 강조하고 돌려보내는 데 따른 대가를 제시했을 겁니다. 따라서 이 쪽지는 B씨 자신이 직접 작성했거나 최소한 스스로 생각해 낸 내용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위에서 묘사한 장소는 과연 어디일까요? B씨가 근무하는 직장인 데일리 던전일 겁니다. 어떤 사람이 노예처럼 지내는 장소라면 직장 이외에 달리 어디가 있을 수 있을까요…(B씨가 유부녀이고 고된 시집살이를 하고 있는 중이라면 시가라는 가능성이 하나 더 추가되기는 합니다)
쪽지를 쓴 실제적인 동기는 사실 쪽지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목적은 명확합니다. B씨는 실제로는 어느 누구에게도 납치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지만, 그 자신이 B씨가 아닌 ‘B씨의 발톱을 주워 먹고 변한 쥐’라고 주장하기 위해 그 쪽지를 남긴 겁니다.
저는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아니므로 B씨가 겪고 있는 증상에 대해서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없습니다. 따라서 B씨가 단지 일을 하기 싫어서 꾀병을 앓고 있는지, 아니면 실제로 극도의 스트레스와 열악한 환경 때문에 발병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얼른 B씨를 병원으로 데려가서 검진을 시키고 적절한 진료를 실시했으면 합니다. 과연 실제로 회복 가능성이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잃어버린 B씨를 되찾기란 영영 불가능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