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작품을 가볍게 읽기 시작했다. 그 전에 이 작가님의 엽편 하나를 읽고 킥킥 댄 다음이기 때문이다. 재치있고 장난꾸러기 같은 느낌, 어찌 보면 말장난, 그냥 재미로 훑고 나가면 되는 이야기? 정도의 기분으로 읽어나갔다. 아마도 그래서 첫 부분의 그 황당한 설정들을 그냥 넘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처음 우주대마왕이라며 하늘에 나타난 거대 톱니바퀴가 트럼프 킹의 얼굴로 바뀌질 않나 그 많고 많은 나라 중에 하필이면 한국의 한 고등학교 학생을 콕 집어 불러내질 않나, 옥상으로 책상과 의자를 갖고 올라오라지 않나 그 설정부터가 무지하게 황당무계하고 어이가 없었다. 어차피 황당무계한 이야기니까 왜 이런 설정을 했냐고 묻지 않겠다. 전셰계적인 난제를 한국의 고등학생 1명에게 다 짐지우는 그 놀라운 설정 자체가 코미디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조금씩 다른 느낌과 다른 면들이 눈에 띈다. 어라? 가볍게만 볼게 아닌데? 이렇게 되어간다.
이 우주대마왕은 뜬금없이 세 가지 문제를 맞춰야 지구멸망을 막을 수 있다고 하면서 던지는 질문이란 게 “너 아버지 이름이 뭐냐”이다. 뭐 이런..!
하지만 여기서 반전이 일어나면서 이야기가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이 이갸기를 달리 보기 시작한 건 아마 이 부분부터인 것 같다. 그러더니 또 칼세이건이 나오고 그와 관련된 것을 설명하는 고등학생이 너무 똑똑하고 논리적이라 또 한번 놀랐다. 톱니바퀴가 궁금해 하면서 더 듣고 싶어하는 게 이해가 됐다. 우주대마왕을 설득시키는 정도의 인간이라면 지구 멸망을 막을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도 설득당하고 있는…) 그러나 또 우주대마왕의 두 번째 질문도 황당하다. 여기에서도 반전이 있다. 세 번째 질문만 그나마 질문답다. 아마도 우주대마왕은 두 번은 그냥 고등학생을 곤란하게 만들고 망신을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세 번째는 정말로 지구를 멸망시킬 목적으로 못 풀만한 문제를 낸 것이 아닐까? (난 또 개인적인 질문을 이어가다가 갑자기 천재 정도나 되야 풀 문제를 내는 것에 대한 이유를 열심히 찾고 있다. 이런 이야기에선 그런게 중요하지 않아!) 어쨌거나 지구가 멸망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난 이 이야기의 매력은 줄거리에 있지 않고 세부 디테일에 있다고 생각해서 큰 줄거리 스포일러는 마구 한다..)
이 톱니바퀴인지 트럼프킹인지 하는 요물 때문에 갑자기 비혼모(미혼모) 가정에서 자란 평범한 고등학생이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평소 존경하던 사람을 만나고 숨겨져 있던 출중한 능력까지 드러내게 되니 이만한 해피엔딩이 어디 있겠는가! 한 남학생의 판타지를 충족시키기 위한 이야기로는 충분하다.
그 뿐만 아니라 보는 내내 난리법석을 부리는 전세계인들의 호들갑스런 행태들이 재밌었고 은근 풍자적이라 절로 웃음이 난다. 각 나라의 정부 요원들이나 방송계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것, 정부 요원이 어딘가 창문을 깨고 잘못 떨어진다는 점 등 이런 소소한 광경들은 큰 줄거리와 별개로 곳곳에 툭툭 던져 놓았지만 그것들이 잘 한데 어우려지면서 온통 난리법석인 무슨 특이한 축제를 구경하는 것 마냥 꽤 흥겨울 정도였다. 문장이 정돈되지 않았고 조금 산만한 내용들마저도 마치 일부러 그래 놓은 느낌마저 들게 하는 묘한 소설이다.
말도 안돼, 뭐야, 뭐야 하면서 결국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재미있는 작품이다. ‘ㅋㅋ’ 이 표현이 정말 잘 어울리는 느낌.
추가 결말 이전까지가 좋았다. 뒷 부분은 좀 뜬금 없었고 앞 부분의 흥이 깨지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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