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아주 많습니다. 작품을 먼저 읽고 오시는 것을 권합니다.
오늘 컨셉은 도발입니다.
네. 오늘 저는 광역 도발을 할 겁니다.
어그로를 끌어서 댓글창을 불타게 해 볼 겁니다.
……앗.
생각해 보니 제가 와우할 때 탱커를 해 본 적이 없네요:::
죄송합니다.
계획을 살짝 변경합니다.
지금부터 세상에서 제일 헷갈리는 두 단어에 대해 이야기해 보렵니다.
하드와 소프트.
이건 딱딱한 차이, 그러니까 경도를 의미합니까?
그럼 당신의 ㅇㅇ는 ㅁㅁ보다 단단합니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하드렌즈와 소프트렌즈.
하드 타입과 소프트 타입.
하드 록과 소프트 록.
하드디스크.
하드(바)와 소프트아이스크림.
그리고 하드 SF와 소프트 SF.
왜 이러는 걸까요?
서양 애들은 왜 이렇게 확실히 구분도 안 되는 걸 자꾸 만들어서,
안 그래도 복잡한 세상을 더 헷갈리게 할까요?
애석하지만 오늘은 제 퇴근 시간 때문에
저 모든 것을 다룰 수가 없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 중
딱 두 가지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아이스크림과 SF의 구분.
즉 하드(바)와 소프트아이스크림.
그리고 하드 SF와 소프트 SF.
오늘따라 서론이 길다고요?
네. 오늘은 작품 이야기가 엄청 짧을 겁니다.
일단 들어보세요.
다 필요하니까요. 흐흐.
여러분은 누군가가 아이스크림 쏜다고
동네 슈퍼의 냉장고 앞으로 데려가면 어떤 걸 고르시겠습니까?
뭐, 취향에 따라 고르시겠지만
제 답은 이겁니다.
사주는 사람이 하드를 고르면 하드를 골라야 합니다.
빵빠레나 설레임을 고르면 욕먹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걸로 논쟁 끝입니다.
아시겠어요?
저는 딱딱한 건 잘 못 먹거든요.
그래서 아이스크림 사준다는 사람이
더위사냥이나 고드름을 고른다 싶으면 협상을 시도합니다.
음료수를 사도 괜찮냐.
설레임도 가능하냐.
정도로요.
이 서정적인 내용의 SF 작품도
소프트 SF라고 태그가 달려 있었고,
자게글에도 분명히 소프트 SF를 쓰셨다고 하셔서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소프트라고 믿고 일독을 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딱딱합니까?
여기서 제가 딱딱하다고 말씀드린 건 장면을 넘기기가 힘들다는 이야기입니다.
감성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장면 자체가 모호하고, 중의적입니다.
읽으면서 스치는 단상 하나가 있었습니다.
혹시 이 작품에서 말하는 소프트는
기술과 자연과학을 전면에 덜 내세운다는 뜻이 아닐까 하고요.
저는 문장들을 천천히 소화시키면서 생각해 봤습니다.
제가 예상한 소프트는 이게 아니었습니다.
저는 자연과학 외에도 사회학이나 인류학, 심리학처럼
인간과 사회를 다루는 수많은 다른 학문을 생각했거든요.
혹시라도 오해하실까 봐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이 작품은 정말 서정적입니다.
후반으로 갈수록 데이비드의 고독과 마지막 별을 바라보는 감정이 점점 커지고,
관리자와의 대화도 존재의 의미나 누군가 바라본다는 일로 흘러갑니다.
저도 그 부분은 충분히 느꼈습니다.
다만 제가 여기서 궁금했던 건
그 서정성이 곧 소프트 SF의 ‘소프트’를 뜻하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마침 제 키보드 옆에 먹다 남은 ‘설레임’이 엎어져서 녹고 있군요.
질문을 다시 드리겠습니다.
설레임은 하드인가요?
소프트인가요?
답은 뭐,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요.
제가 이 작품을 일독하고 난 느낌을 거칠게 말씀드리면
SF를 읽다가 어느 순간 관념적이고 모호한 판타지를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초콜릿 맛 아이스크림이라고 적혀 있는 포장지를 뜯고
너무나 단단해서 놀라 내용물을 살펴보니
단단하게 얼린 초코파이가 나온 느낌이라서 그렇습니다.
왜 그렇게 느꼈냐고요?
데이비드는 별들이 거의 사라진 우주를 떠돌며 몇 번이고 동면합니다.
그가 보고 싶어 했던 백색왜성마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빛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다 우주선은 멈추고,
자신을 우주의 ‘관리자’라고 부르는 존재가 나타납니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차를 내오기도 하고,
데이비드에게 우주복을 입혀 우주 밖으로 내보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관리자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어디까지 가능한 존재인지,
우주선과 데이비드에게 벌어지는 일이 어떤 조건 아래 가능한지는 계속 흐릿합니다.
대신 작품이 뒤로 갈수록 선명해지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혼자 남은 데이비드의 고독.
마지막 별을 바라보는 일.
그리고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별에 의미가 있는가 하는 질문.
그래서 저는 읽는 동안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이 작품에서 과학과 기술은 이야기를 설명하는 규칙으로 단단해지는 게 아니라
데이비드의 고독과 존재에 대한 질문을 올려놓는 무대로 사용되고 있구나.
아마 제가 앞에서
‘이 작품에서 말하는 소프트는 자연과학과 기술을 전면에 덜 내세운다는 뜻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사실 제가 이 글을 따로 쓰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작품 자체에만 있지는 않습니다.
작품이 서정적인 레이어를 점진적으로 깔아가는 감성적인 글이라는 건 확실합니다.
그런데……
저는 읽으면서 어느 순간
다소 모호하고 관념적인 판타지를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런 제 머리에 계속 걸린 것이 있었습니다.
태그와 자게글에 붙어 있던
‘소프트’라는 세 글자입니다.
어……
혹시 작가님께서 도발 스킬을 쓰신 거에
제가 어그로가 끌린 건가요.
아무튼 궁극적으로 중요한 건 맛이겠죠.
설레임이든, 얼린 초코파이든
맛만 있으면 장땡이 아니겠습니까?
하하.
왜 이렇게 갑자기 정리하고 도망가냐고요?
퇴근 시간이 다 됐습니다.
집에 가야죠.
혹시 저도 헷갈리는 이 리뷰를 읽고
“난 다르게 생각한다.”거나 반박이 떠오르신다면……
그 반박이 맞습니다.
(제가 아직 초보라 방어구가 녹템밖에 없습니다. 때리면 아파요. ㅜㅡ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