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에 요청해주신 작품들 중에 하나를 골랐습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입니다. 내용 전개상 어쩔 수 없이 거의 스포일러입니다. 작품을 먼저 읽고 오셔서 리뷰와 보고 느낀 것들을 비교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내가 방문한 곳은 기원(祈願)의 정원이다.
나는 주인공을 따라 낯선 공간에 들어섰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공간, 온통 색색의 꽃과 풀, 그리고 나무로 가득’한 낯선 식물들의 세계, 그 알 수 없는 정원을 걷다가 만난 정원사는 무척이나 주인공을 예의바르게 맞는다.
왠지 비현실적이고 신비로운 장소에서 뭔가 근사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서두다.
그렇다면 이곳은 어딘가? 정원사가 말하길 모든 소원이 모이는 곳이고 아무나 올 수 없는 곳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장소에 왔다는 것만으로 자격이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소원을 말하면 한 가지는 꼭 들어준다는 매력적인 장소. 흥미가 마구 샘솟지 않는가?
하지만 여기서 그 자격이란 게 뭘까? 독자는 무척 궁금했지만 그건 알 수 없었다. 주인공이 따로 궁금해 하지 않으니 나라고 별수 있나. 주인공이 하는 대로 소원만 열심히 생각할 밖에. (근데 정말 궁금한데…. 이런 건 왜 말해주지 않을까? 상상의 여지로 두기엔 좀 …. )
이제 주인공은 쭉 소원에 대해서 생각만 한다. 이런 저런 생각 다양하게 많이 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난제’를 푸느라 수천 잔의 차가 차갑게 식기를 반복하고서야 주인공은 마침내 소원을 말하게 된다. 결국 이 한 마디를 듣기 위해서 난 여기까지 약간의 지루함을 참아가며 읽었다. 그. 런. 데 ….
아마 이 부분에서 나는 화들짝 놀랐다. 우우우왓(what)?~~ 왜 이러는 거야? 정말!!!
성질 급한 독자는 당장 작가에게 댓글을 남기고 따지고 든다. 점잖으시고 현명하신 어떤 독자는 석가모니가 꽃을 드니 미소를 지었다는 그 제자와 같은 미소를 지을수도 있을까? 좀 시크한 독자는 ‘뭐 어쩌라고?’ 하면서 그냥 다른 소설들을 읽으러 갈지도. …. 사실 난 이 결말을 보고 독자들이 반응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게 더 즐거웠음을 고백한다. (작가님이 의도한 것이 이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이런 결말은 적어도 독자가 다 읽고 난 이후에 뭔가를 상상할게 있을 때 써야 하는 게 아닐까? 난 정말 그가 무슨 소원을 빌었을지 전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냥 소설을 읽다가 결말을 못 보고 중단한 느낌이 들었다. 이해할 수 없는 단절 같은 느낌. (나만 이렇게 느꼈다면 난 아마 기원의 정원을 벗어나기도 전에 기억을 잃어버린 모양이다.)
일단 이 소설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은 결말도 결말이지만 내용이 좀 철학적인 느낌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소원에 대한 치열한 고민에 무게가 실려 있어서 어떤 소원이 가장 좋은가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는 계기를 주고, 그런 낯선 공간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상상을 했다는것은 높은 점수를 주겠지만 이야기 전개가 그닥 재밌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존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런 심각한 류의 철학이 담긴 무거운 분위기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름다운 동화 같은 느낌도 아니다. 약간 애매한 느낌의 소설이다. 뚜렷한 이미지가 없다.
어딘가 낯선 곳, 우리가 사는 일상적인 공간이 아닌 이색적인 공간이 배경으로 나오는 소설은 그 자체로 흥미롭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처음 보는 장소, 새로운 판타지적 세계를 모험하는 여행자의 느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자는 그곳에 대해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기 때문에 뭔가 새로운 광경이 펼쳐질 거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작가가 보여주는 대로 안내하는 대로 보고 느낄 준비가 돼 있다. 그건 마치 가이드를 따라 새로운 여행지로 막 들어설 때 느끼는 가벼운 흥분이 섞인 기대감과도 같다. 그러나 그 기대감은 이 소설에선 충분히 충족되지 못했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가 펼쳐진 공간이라면 모를까 (난 개인적으로 이런 공간이 등장한 소설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뭔가 가득 찬 공간인데도 풍경은 밋밋하고 특색이 없다. 다 읽고 났을 때 눈앞에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다.
이런 소설에선 화자(주인공)의 시선이나 느낌 감정에 따라 소설의 분위기가 확 달라질 수 있는데 이 주인공은 상상보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타입이다. 정원사에 대한 궁금증이나 그의 옷에 대한 생각들, 자신이 손님일까 불청객일까 고민하는 장면도 그러하고 나머지 소원에 대해서 고민하는 부분에서도 그랬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가 그다지 재미를 느낄만한 부분이 적다. 전체적으로 이미지 묘사는 적고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독자에게 어떤 감정이 생겨날 여지도 별로 없다. 또한 주인공에 대한 정보가 완전히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설정상 과거도 모르겠고 미래도 모른다.- 지금 현재 이 순간만 있기 때문에 더욱 뭔가를 상상해볼 여지가 없다. 주인공이 낯선 공간에서도 별달리 두려움이나 이상함이나 궁금증이나 어떤 풍부한 감정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소원 그 자체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는 계기로는 좋지만 그 외의 상상의 여지를 차단한 것이 아쉽다. 독자의 머릿속에 뭔가 그려지거나 상상해볼 만한 게 별로 없는 채 계속 읽어나가게 되니 독자가 수동적으로 끌려가게 될 수밖에 없다. 독자가 끌려가기만 하면 지루해진다. 독자가 상상하게 하고 독자가 의문을 가지게 하고 궁금하게 해야 끝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을 수 있는데 그게 부족하고 더구나 독자가 유일하게 궁금했던 한 가지를 어떻게 했던가!
판타지적인 공간임에도 별로 판타지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아쉬웠다. 의자가 딱딱하다가 앉으면 푹신해진다, 차가 줄어들지 않거나 온도 등이 비정상적으로 변한다 정도가 전부여서 미진한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정원을 좀 더 묘사를 더 많이 하고 색감을 더 넣어주거나 세상의 모든 소원을 이미지화 해서 신기한 볼거리를 좀 더 넣어줬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정말 ‘기원의 정원’하면 눈에 딱 펼쳐지는 그림을 하나 만들어주었으면. 주인공이 처음 들어설 때 주변 풍경을 좀 더 신비롭게 묘사하거나 그냥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식물이 모인 깔끔한 정원’에서 좀 더 나아가 이 세상에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식물들이 가득 찬 걸로 탈바꿈시킨다면? 색깔들도 오색찬란하게 넣고 모양도 평범하지 않으며 (비정상적으로 거대하거나 작거나 등등) 돌멩이도 막 살아서 움직인다거나 해서 이 세상 것이 아닌 오묘한 공간이란 느낌이 좀 더 들게 묘사했으면 어땠을까. 모험까진 아니라도 뭔가 색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가 실망했기 때문에 든 개인적인 생각이다. (독특하고 예쁜 정원을 하나 갖고 싶은 욕심에 너무 오지랖이 넓었다면 용서해주시길! )
그리고 나중에 정원사가 말하는 긴 문장, ‘아름다운 여인’, ‘더러운 소년’ 등등을 계속 나열하는 긴 문단이 뭔가 생뚱맞다는 느낌이 있었다. 앞뒤와 뚝 떨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그 단락 자체의 문장들은 나무랄 데가 없지만 문단 앞과 뒤와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고 그 문단만 좀 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쌍따옴표 문장 내에서 나열로 끝내지 말고 뭘 말하는 건지 추가 문장을 좀 덧붙여 주거나 정원사가 말하는 부분인 앞 단락과 연결지어서 가는 게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
특히 기다리고 기다리던 궁금증이 해결되는 결말에 도착하고나서 ‘우우우왓’ 소리를 꽥 질러 버리게 만들어서 난 작가님이 밉다.
다른 독자분들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난 이 결말이 무슨 효과를 내는지 전혀 모르겠다. 하다못해 앞쪽에다가 복선이라도 한줄 넣어줬으면 설마 그런 걸? 이란 상상이라도 해볼 텐데 … 갑자기 주인공은 쏙 빠지고 독자들에게로 바톤을 넘겨 버리는 듯한 이 결말은 황당하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갑자기 나는 무슨 소원을 빌었길래 이렇게 살고 있을까?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지도 않았다.
결말이 이렇지 않았다면 그래도 무난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작품인데 뭔가 부족하단 느낌마저 들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