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마법사와 탑은 단편소설입니다. 혹시 누군가 이 글이 단편 소설이냐, 장편 소설이냐를 두고 다툰다면 저는 누구의 손을 들어줘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짤막한 글에 짤막한 이야기지만 위기와 갈등을 갖춘 완성도 높은 글이기 때문입니다. 단편을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조금 더 짧았다면 좋았을 걸’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장편을 좋아하는 입장에선 ‘너무 짧은 거 아니야’하는 생각이 드는 글이었죠.
글은 제목에 굉장히 충실합니다. 개가 나오고 마법사가 나오고 탑도 나옵니다. 심지어 개는 두 마리나 나오죠. 배경은 중세풍 판타지 세계입니다. 그곳에서 개의 이야기가 집중될 수 있고, 마법사의 이야기가 집중될 수도 있었습니다. 글을 읽으며 저는 ‘개’에 초점이 맞춰진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지만 후반으로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마법’에 초점이 맞춰지더군요. 즉, 개로 흥미를 유발시킨 뒤 마법으로 마무리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두 가지 분위기를 풍깁니다. 하나는 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개가 나오는 장면은 감정적이고 주인공 엘리엔 울프겐의 내면 심리가 충실히 서술됩니다. 사실 좀 과장되게 말해서 엘리엔의 마음은 온통 개에게 쏠려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소설 속 개가 등장한 이후로 언제 어디서나 엘리엔은 개를 생각하고 있지요. 그래서 만약 이 소설이 개와 일상을 묘사하는데 힘을 쏟았다면 겨울날 읽기 좋은 따끈한 이야기 한 편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된 위기는 마법입니다. 마법사 엘리엔이 스승님의 뒤를 이어 괴물을 퇴치하는 내용이 소설 후반부를 자리하고 있지요. 물론 개가 괴물과 싸움에 큰 영감을 주긴 했지만, 결국 엘리엔은 스승님의 마법으로 위기를 극복합니다. 이 대단한 싸움을 벌이기에 앞서 마법과 마법의 의미와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를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소설 첫 부분부터 ‘정체불명의 괴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마법사의 생활과 마법에 대해 다뤄왔다면 이야기의 긴장감이 마무리 단계에서 속칭 포텐이 터질 수 있었겠지요.
그래서 두 가지 분위기의 소설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그것이 이 소설의 단점이라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중국집에서도 가끔 짬짜면을 먹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가끔 치킨집에서 반반으로 시켜먹고 싶을 때가 있지요. 초반에는 귀여운 개를 감상하다 후반에는 마법과 괴물, 스승님의 과거에 얽힌 이야기를 읽고 싶어질 때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개와 마법사의 탑은 바로 그런 독자들을 위한 글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만약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이야기가 계속된다면 아마 시리즈 3번이나 4번쯤에서 ‘개를 데리고 다니는 마법사 엘리엔 울프겐’의 이름을 들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