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암기의 사이에서 공모(비평)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오픈북 (작가: 리두, 작품정보)
리뷰어: 열한시, 17년 2월, 조회 90

오픈북 시험을 경험한 것은 한 학기 뿐이었다. 학부 내에서도 독특하기로 유명했던 교수님이었다.

“친구와 함께 톡방을 열어 회의해도 됩니다. 이어폰으로 영상을 보아도 좋습니다. 소리를 내지 않는 어떤 방법을 활용해도 좋습니다. 열심히 해보세요.”

‘열심히 해보세요.’라는 말에 소량의 악의가 섞여 있었으나 학부생이 무슨 자격으로 이의를 제기하겠는가. 그저 손가락으로 외치는 소리없는 비명만 단체 톡방에 울려퍼졌을 뿐이다. 오픈북 시험에 대한 내 기억은 이 정도다. 소설의 첫 부분을 읽자마자 그 교수님이 자연히 떠올랐다.

이 글은 초인적인 암기력을 얻은 주인공의 이야기다. 그러나 암기력은 이해력과 비례하지 않는다. 때문에 주인공은 오픈북 테스트라는 기습공격에 맥없이 쓰러지고 만다. 주인공은 기말고사를 망쳤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능력 없이 공부하자고 스스로 다짐한다. 사유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이다.

시험을 앞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꿔본 적 있는 이야기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험은 사유를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암기력 하나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흔히들 주입식 교육의 폐해 중 하나로 ‘사고력 부족’을 꼽는다. 이에 따라 ‘사고력 증진’을 노린 교육방법이 다시 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정책이 도입되어도 학원만 흥하지 큰 변화는 없어 보인다. 당연한 일이다. 시간은 부족한데 입시와 취업의 문은 높기 그지없다. 암기하기에도 힘들어 죽을 맛인 학생들에게 “이것도 중요해!”라며 짐 하나를 더 얹는 셈이다. 결국 필요에 따라 비교적 덜 중요한 것은 버려지고 만다. 그리고 암기와 이해 중에서 버려지는 것은 주로 이해다. 비효율적이니까.

우리는 필사적으로 발악해야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모순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 삶에 사유가 끼어들 자리가 있을까. 교육은 사회를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교육이 ‘암기식’교육이 된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사유가 암기보다 한 단계 위의 ‘학습’임은 분명하다.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바가 어디인지도 명백해 보인다. 그러나 단순히 “사고력 증진을 위해 우리 모두 힘쓰자!”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눈앞의 장애물이 너무 많다. 한숨이 나오는 현실이다.

넋두리는 여기까지. 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초반부, 시험을 앞둔 대학생들에 대한 묘사는 나를 다시 그 때로 돌아가게 했다. 마치 내가 시험을 앞둔 대학생이 된 것 같은 긴장감이었다(대체로 내 시험은 불만족스러운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에 별로 기분 좋은 긴장감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그만큼 디테일한 묘사였다는 소리다). 특히 시험문제를 맞닥뜨린 장면은 실재 학부생의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 본 것 같다. 작가가 노동법 강의를 수강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수강여부와 상관없이 이 선명한 묘사력은 이 작가의 재능일 것이다.

또한 대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인 어려움 또한 잘 서술해낸 것 같다. 공부에만 전념할 수 없는 현실은 주인공을 더욱 절박하게 만드는 훌륭한 서사적 도구가 된다.

이 소설에서 아쉬운 점을 꼽자면, 도이라는 캐릭터의 활용이었다. 도이가 가지고 있는 서사적 위치가 애매하다. 주인공, 교수, 그리고 어머니는 소설이 제시하는 메세지와 관련된 역할을 가진다. 교수는 주인공에게 사유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가지고 있다. 어머니는 주인공의 힘든 가정형편을 드러내며 함께 공부하는 벗으로서의 역할도 맡았다. 그러나 도이의 위치는 명확하지 않다.

도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그는 근로장학생이다. 암기력이 뛰어나고, 동시에 다양한 교육방법을 적용해 학습하는 대학생이다. 그리고 변태같은 교수에 대해 한탄하는 친구에게 웃어보이며 다짜고짜 ‘강간당한 느낌이겠네’라고 말하는 괴짜이기도 하다.(특히 이 대사가 가장 당황스럽게 느껴졌다. 주인공의 당혹스러움에 대한 공감이 아니라, 독자로서의 당혹스러움을 말한다. 전체의 차분한 분위기에 비해 지나치게 자극적인 대사가 아니었나 싶다.) 나는 이러한 도이의 다양한 설정이 어떤 서사적 이유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의 독해력이 부족해 이유를 읽어내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단편소설은 짧은 이야기 속에서 주제의식을 담아내야하는만큼, 이유없는 설정은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드는 소설이었다. 작가의 다음 작품에 대한 건필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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