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희민’에서 희민의 모습은 다양하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받은 적 있는 피해자이기도 하고, 선한 행동을 하는 좋은 사람이기도 하며, 누군가에게 가해를 하고 나쁜 짓을 한 가해자이며 나쁜 사람이기도 하다. 이렇게 일관되지 않은 모습은, 또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렇게 복잡한 우리의 모습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할까?
언뜻 희민은 피해는 피해고 가해는 가해라며, 이 둘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희민의 생각이 흘러가는 과정을 보면 루주아님께서 리뷰에서 하셨던 말씀처럼 그는 그저 피해자의 위치에서 벗어나 가해자의 위치에 있으려 하는 의도가 보인다. 그것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희민은 그의 고발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제 거의 칠 백명의 사람이 고발문을 리트윗한 상태였다.
(중략)
희민은 커튼을 걷었다. 밝은 빛이 희민을 휘감았다. 아침의 빛이. 희민은 옷을 차례차례 벗고 양팔을 빛을 향해 뻗었다. 입을 벌려 무엇인가를 말하려다가, 그만둔다. 나는 이미 죽었어. 희민은 생각했다. 몇 번이고 죽었는데 아직도 살아있어. 신기하지. 희민은 양팔을 힘없이 내려 놓았다. 창가에 무력하게 서 있는 자신이 너무 아름다웠고,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그런 희민이의 마음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다. 피해자의 머릿속을 맴도는 죄책감의 굴레를.
피해자는 어떠한 형태로든 그 일로 인해 괴로운 상태에 빠진다. 그리고 힘들기 때문에 그 상태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러기 위해선 원인을 찾게 되고, 보통 두 가지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하나는 원인이 가해자의 행동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피해자인 자신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가해자가 바뀌는 것이 옳고, 대부분 그 사실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교정하려고 애쓴다. 왜냐하면 남을 바꾸는 것보단 자신이 변화하는 게 훨씬 쉬우니까…
머릿속에서 그때를 떠올리고 그때 다르게 행동해야 했었다며 후회한다. 자신이 잘못한 일이 되고 죄책감이 된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 사건이 없던 일이 되지 않는다. 괴로움은 그대로다… 아니 후회하는 것이 다시 현재를 괴롭게 하고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어 다시 후회하고 또 다시 현재가 괴로워지고 그 모든 과정이 끝없이 반복된다.
이 비틀린 인과관계의 모순에 지쳐가던 희민은 자신의 생각의 굴레를 벗어나지 않고도 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우연히 찾아낸다. 가해자의 위치에 서는 것이다.
괴로움을 받을만한 행동을 하고, 정당한 괴로움을 느낀다. 거리낌 없이 자신을 탓한다. 몇몇 못난 사람과는 다르게 비난을 군소리 없이 받아들이는 자신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동시에 느껴선 안 될 아름다움을 느끼는 자신을 혐오한다.
희민 자신도 느끼다시피, 이 모든 과정은 자기 연민이며 자기 변호고 자기 만족이다! 희민이가 선한 자신의 행동을 위선의 위치로 끌어내리며 끝까지 가해자로 머물러있으려는 건 자신을 위해서다. 모순 없이 존재하고 자아도취에 빠져있기 위해서.
물론 어떤 일의 가해자는 평생 가해자일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해도 없었던 일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행위가 다른 행위로 대체될 수 없기 때문에. 과거의 착한 행동이 현재의 나쁜 일을 상쇄할 수 없고, 과거의 나쁜 일을 새로 한 착한 일로 대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러나 그 의미는 과거의 나쁜 일이 현재의 착한 일을 상쇄할 수 없고, 과거의 착한 일을 현재의 나쁜 일로 덮을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만 우리는 어느 때이고 했던 행동의 결과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할 뿐이다.
따라서 피해자였던 희민의 과거를 이유로 작중에서 희민이가 가지고 있는 가해자로서의 태도를 정당화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해자 희민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보다도 공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며 자해하는데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자신이 원하는 가해자의 상를 구현하는데 중점을 둘 것이 아니라-그 행동은 결국 s에게 행해진 또 다른 가해였을 뿐이다.- s의 입장에 서서 그의 감정을 안정되게 할 수 있는 행동을 했었어야했다.-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면 그랬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으로 인해 또 다른 누군가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조심하고. 그러지 못한 희민은 그저 여느 나쁜 가해자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일 뿐이다.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해치는.
아마 작가님은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아직 우리 사회에는 자신이 저지른 일조차 인정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넘치고 넘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모든 가해자가 옳은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