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판타지 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의 감동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 나왔다.
흔히들 PC통신 시절 판타지 소설을 떠올리면 이영도, 전민희, 이우혁, 윤현승, 홍정훈 작가 등을 떠올린다. 리뷰를 하는 이 작품 ‘피어클리벤의 금화’는 그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웹소설 연재 특유의 빠른 호흡, 짧은 문장과 대사, 유행하는 장르, 설정이 아닌, 주요 캐릭터들의 시점을 이동하며 각각의 생각을 조명하는 군상극을 선택한 이 작품은 조금 색다르게 느껴진다. 흔히 일본의 소년 만화들이 범하는 우 중 하나인 이 싸움 갔다가, 저 싸움 갔다가 하면서 독자들의 집중력을 분산시키는 경우가 있다. 본디 군상극이 아닌 작품들에서 그런 우를 범하면, 독자들은 점차 기대감이 떨어지고 한 번에 몰아서 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하지만 이 작품, ‘피어클리벤의 금화’는 군상극으로서의 묘미를 제대로 담고 있다. 이 캐릭터, 저 캐릭터 왔다 갔다를 두서없이 하는 것이 아닌, 각 세력의 생각, 각자의 입장차, 각자가 가진 정보의 한계,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각 시점 분량과 긴 호흡까지. 한 번 이 글을 읽기 시작하는 순간, 독자들은 이어질 내용과 또 다른 캐릭터들의 상황이 궁금해 계속 다음 화를 넘기게 된다.
이 작품은 군상극이라 해서 각자의 생각을 단조롭게 설명하는 것이 아닌, 주·조연 캐릭터 하나하나에게서 생동감이 느껴지며 감정 이입이 잘 된다. 등장하는 캐릭터들 전원이 실제 살아있는 것처럼 독자는 그들의 생각에 공감하고, 웃게 된다. 보통의 작품들이 악역을 하나 정하고 무너뜨리는 것에 목적을 둔다면, 이 작품은 빤히 보이는 악역이 아닌 각자의 입장차만이 존재한다. 작중에서 나오듯이 누가 적인지를 알 수 없다. 아니, 알 필요가 없다. 누구의 입장도 이해가고, 누구의 말도 맞다. 모두가 맞기에 울리케는 ‘교섭’을 통해 다 만족할 순 없어도, 최선의 결론을 도출해내기 위해 계속 궁리해야만 한다. 처음에는 자신이 속한 영지의 안위와 주변인들만을 생각했지만, 점점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교섭의 장과 세력들이 늘어나면서 울리케는 골머리를 앓기 시작한다. 이건 독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독자들은 울리케와 함께 하면서 생각에 동조하지만, 그 외에도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각자의 입장차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게끔 만든다.
보통의 작품들은 주인공과 적이 명확하기에 결론마저 투명하게 보인다. 다른 작품들이 적이 지든, 주인공이 지든 둘 중 하나였다면, 이 작품은 다양한 세력과 입장차로 인해 누가 떠오르고, 누가 몰락할 지가 선명히 보이지 않는다. 물론 결론이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누가 남고, 누가 희생될지. 아니면 아예 다 같이 손잡고 걸어가거나, 다 같이 몰락의 낭떠러지로 떨어질지는 알 수 없다.
피어클리벤 영지, 빌러디저드, 아우스뉘르 황실, 라핀다시르 공작령, 아이비레인과 에파, 미스미르드, 드레스바르프 후작, 실록의 폐장, 늬르뉴와 고블린들까지.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한 번 보고 마는 스낵 컬쳐가 아닌, 두고두고 곱씹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속독이 아닌 정성스레 한 단어, 한 줄, 한 장을 놓치지 않고 읽게 만드는 것이, 분명 이 작품에는 존재한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많은 독자들이 이 작품을 읽고 오랜만에 과거의 짙은 향수를 느꼈을 것이다. 어렸을 적, 처음 판타지 소설을 접하고 환상 세계 속에 빠져든 그 시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