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하다. 흉가 이야기인데 자꾸만 읽고 싶다. 벌써 몇번째 읽는지 모른다. 읽고 있으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따뜻해지면 안 되는 이야긴데 이럼 어떡하지? 흉가, 귀신이야기인데 납량특집에 넣으면 안되는 참 요상한 이야기.
* 스포일러 있습니다.
(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리뷰를 안 쓰려고 했는데 결국 쓰고 있다. 작품 안 읽으신 분은 무조건 읽고 오시길. 대단찮은 리뷰 때문에 작품의 인상이 흐려질까봐 걱정하며 또 리뷰를 쓰고 있다. 지금쯤이면 아마 읽으실 분들은 거의 다 읽지 않았을까 한편으론 생각하면서…..)
억새가 자라는 늪 주변에 있는 흉가, 거기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흉가란다. 그 흉가를 소개하는 ‘옥희’같은 주인공의 목소리가 너무 사랑스럽다. 그 아이 이름은 나중에 나오는데 선희. 너무도 오랫만에 불러보는 이름이라 저 자신도 어색하다는 이름이다.
처음엔 흉가 근처에 사는 이웃집 아이인가 했다가 그 흉가에 살고 있는 아이라는 말에 깜짝 놀란다. 사람들이 심장마비로 죽기도 하고 기웃거리긴 해도 머물진 않는 장소, 보기 흉하고 골칫거리지만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그런 집에 산다니? 왜? 그러다 또 한번 놀란다. 어떤 아저씨 손에 끌려와 목이 졸려 죽은 아이라고 고백한다. 헉. 귀신?
귀신이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그 이야기를 한다. 사랑스러운 아이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고 흉가에 사는 또 다른 어른들 소개와 사람들을 절대 악의적으로 괴롭히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담담히 늘어놓는다. 또 흉가에 와서 난리법석을 부리는 방송 촬영팀을 구경하는 그들이 너무 귀엽기까지 하다. 툇마루에 나란히 앉아 생쇼를 벌이는 방송국 사람들을 구경하는 세 귀신이 상상되니 슬몃 웃음이 난다. 그들이 가짜 귀신을 본 흉내를 내는 걸 진짜 귀신들이 보면서 깔깔거리고 웃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만큼 재밌는 일이 또 어디 있을까.
그렇게 시끄러운 밤이 지나고 다음날 혼자 찾아온 아저씨(무속인이겠지?) -울고불고 생쇼를 벌이면서 엉뚱한 귀신 흉내를 내던 아저씨가 혼자 찾아와서 선희를 알아본다. 아, 이 부분 읽으면서 살짝 눈물이 맺혔다. 그는 진짜 귀신을 볼줄 아는 사람이었고 그들을 위로하려고 일부러 다시 찾아 오기까지 한 거다. 그가 선희를 위로하는데 왜 아무 상관없는 내가 위로받는 느낌인지 모르겠다.
“모쪼록 더 아프지 말고 사람 때문에 상처받지 말고 편히 쉬거라, 날이 차구나… 집에 들어가렴.”
떠나가는 아저씨에게 “또 놀러오세요” 하며 오래 오래 피묻은 손을 흔드는 소녀처럼 억새풀 사이에 오랫동안 멍하니 서 있는 기분이 든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세상에는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보이지 않는 이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작은 소통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로가 될 수 있는지도 알게 된다.
흉악한 인간에게 억울하게 죽었지만 또 그들이 사는 흉가를 허물려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결코 악의를 품고 인간을 대하지 않는 죽은 자들과 먹고 살기 위해서 과장된 몸짓을 일삼는 무속인도 모두 연민어린 존재들이다. 그렇게 악의 없는 산자와 죽은 자의 따뜻한 소통을 그린 이야기, <귀신이 살아요> 는 보고 또 보게 되는 그런 작품이다.
이 작가님 소설 몇개 안 읽었지만 대체적으로 참 따스한 느낌이 든다. 삽화 올리시는 것 보니 그림을 그리셔서 그런지 소설도 읽다 보면 이미지가 잘 떠오른다. 피묻은 손을 흔드는 귀신을 하나도 안 무섭게, 심지어 사랑스럽게 만들다니 두말 해 무엇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