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더 이상 여름이 아니다! 감상

대상작품: 사쿠라코 이야기 (작가: 노말시티, 작품정보)
리뷰어: 피오나79, 18년 6월, 조회 57

철호는 아내 민정과 일곱 살 난 딸 가연과 함께 일본으로 벚꽃 구경을 온다. 벚꽃이 가득한 교토는 그야말로 인산인해였고, 성수기에 여행을 오느라 비행기표부터 시작해서 어느 하나 바가지를 안 쓴 게 없었던 터라 철호는 불만이었다. 그나마 겨우 저렴한 숙소를 구했는데, 시내에서 좀 떨어져 있긴 했지만 극성수기인 벚꽃 축제 기간의 교토에서 하룻밤에 팔천엔이라는 금액은 횡재라고도 할 수 있었다. 어두운 시골길을 한참을 달려 도착한 이와쿠라초, 풀과 나부뿐인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신식의 삼 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이 그들의 숙소였다. 조그만 할머니 한 분이 새빨간 기모노를 차려 입고 있었는데, 로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곳에서 눈에 띄는 것은 바로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인형 자판기였는데, 자판기 안에는 허술한 솜씨로 만들어진 기모노 인형들이 줄지어 있었다. 가연이는 인형을 하나 뽑겠다고 자판기에 매달려 있었고, 어디 하나씩 망가진 모습의 인형들과는 달리 뽑기 가격은 무려 오천 엔이었다. 뭔가 수상한 자판기 속 인형에 푹 빠진 가연이는 계속 인형을 갖고 싶다고 졸라 대고, 그들에게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한다.

짧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임팩트있게 다가오는 작품이었다. 서두에 교토 근교 이와쿠라초에서 전해 내려오는 여자 아이 인형에 대한 이야기가 마치 전설처럼 언급되어 있는데, 이 또한 굉장히 매력적인 스토리였다. 이 부분만으로도 단편 하나 분량의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만큼. 그렇게 사람들의 떠도는 이야기로 전해지는 그 전설이, 현대로 시간대를 옮겨 왔을 때 만들어 낼 수 있는 독특한 공포의 분위기도 훌륭하다. 인형과 자판기라는 설정이 익숙한 듯 하면서도 섬뜩한 느낌을 자아내고, 무엇보다 가족, 그 중에서도 아이와 관련된 설정이 더욱 오싹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공포물에서의 진정한 주인공은 공포심을 일으키는 근원 자체라는 사실을 기억해 보자면, 이 작품에서 어긋난 모성(혹은 단순히 아이에 대한 집착일지도 모르겠지만)이라는 것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더욱 분명해진다. 누구나 공감 혹은 이해할 수 있는 소재를 전설이라는 설정으로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그것이 현대에서 와서도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는 점이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도 길게 여운이 남는 이유일테니 말이다.

무더운 여름 밤, 우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감에 사로잡히는 경험을 통해서 오싹하면서도 시원한 희열을 느낀다. 공포 체험을 통해서만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두려움과 마주하고 떨쳐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판기 큐레이션에 포함되어 있는 작품들 모두 짧지만 강렬한 한 방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이라, 이런 밤에 읽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 중에서도 <사쿠라코 이야기>가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였는데, ‘사람 잡아 먹는 자판기’라는 설정 자체가 두드러지지는 않았지만, 이 설정을 조금 더 세련되게 풀어내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더위에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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