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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작품: 사이코메트리 스토커 (작가: 붕붕, 작품정보)
리뷰어: 한켠, 18년 6월, 조회 277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작가님의 전작 <짐승>의 후기에는 구상중인 차기작(<사이코메트리 스토커>)의 줄거리가 나와 있습니다. 애초에 작가님이 구상했던 <사이코메트리 스토커>(이하 <사스>)는 한 여자(아마도 채희정)를 ‘사랑’하는 스토커(아마도 김지훈)가 그녀의 남자친구(아마도 공진우)를 죽이려 하고, 알고보니 이 남자친구는 양다리였고, 이 남자친구의 여친(아마도 이수연)은 자기 남친(공진우)를 지키지 위해 스토커와 맞선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요. 제 개인적 취향으로는 <사스>가 이 줄거리대로 갔으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초반부 긴장감을 자아내는 요소는 ‘각막을 이식해서 초록빛으로 빛나는 눈을 가진 김지훈이라는 남자가(각막 이식한 사연이 나올 줄 알았는데 떡밥회수가 안 되었어요.) 알아낸 채희정에 대한 정보가 과연 그의 말대로 사이코메트리로 알아낸 걸까 아니면 그냥 스토킹을 한 걸까’인데요. 이 스릴이 중요한 이유는…만약 사이코메트리일 경우, 1. 법으로 해결할 수가 없으며(초능력은 처벌이 안 되니까요) 2. 김지훈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강한 빌런이 되므로 초능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창의적인 대응방법을 구사해야 하며 3. 일반적인 스토킹 범죄와는 다른 독특한 소재만으로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등등인데요. 이‘긴가민가’한 긴장감과 참신한 소재는 예상보다 금방 스토킹으로 결론 나 버립니다. ​

<사스>의 재미는 디테일에서 나옵니다. ‘위대한 사랑’을 하고 있다고 믿는 망상증 걸린 듯한 스토커 김지훈과 여자친구인 채희정을 지키는 ‘멋진 남자’라는 오지랖을 부리는 공진우의 내면을 날것 그대로 현미경을 들이대서 보여주는데, ‘내가 제일 잘났어’/‘세상의 루저지만 내 여자에겐 순정파’라고 믿는 자아도취한 지질한 남자들의 묘사가 웬만한 개그보다 웃깁니다.채희정에게 ‘내 아침을 차려줘’라는 ‘스케치북 고백’을 하는 김지훈이나(자기가 아침을 차려주겠다고 해야 로맨틱이지…아이고 머리야…) 채희정의 공포를 이해하지 못해서 독자와 채희정에게 ‘고구마’를 선사하는 주제에 채희정과 상의 없이 김지훈과 싸우러 가는 공진우나…스토커나 남친이나 도긴개긴입니다. ‘남자들은 다 똑같아’란 말이 절로 나옵니다.

구석기 시대도 아닌데 말로 싸울 생각보다는 서로를 힘으로 제압할 생각에 골몰한 남자도 한심해서웃깁니다. 둘이 처음 맞붙는 장면은 영상으로 보고 싶을 정도로 생생한데, ‘멋진 발차기’는 커녕 쥐어박고, 그 와중에 자기 팔 다칠까봐 걱정하고,서로 이겼다고 ‘정신승리’하고 있어서 싸움 못하는 평범한 남자들의 ‘현실 초딩싸움’같아서 신선했습니다. ‘용병 출신 블로거’가 보증하는 ‘12만 4천원 짜리 네이버쇼핑에서 파는 칼’을 사서 김지훈과 싸우려고 하거나 명품 둘렀는데 유두가 튀어나오는 패션센스에 결벽증 있는 김지훈의 인물묘사는 tmi스러워서 우스꽝스럽습니다.

그런데, 풍자는 안전해야 풍자입니다. 개그맨이 정치인 풍자한 후에도 무사할 거라는 걸 알아야 마음껏 웃을 수 있지요. 정치 풍자 코미디쇼가 끝나고 개그맨이 감옥에 간다면, 관객은 풍자를 비장하게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지질한 김지훈이 공진우를 살해하는 순간, 김지훈은 ‘웃긴 놈’에서 ‘위험한 놈’으로 격상됩니다. 사실, 공진우는 죽기 직전까지의 활약과 공들인 인물묘사에 비해 ‘비명횡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읭?’스럽게 죽어버려서 너무 아깝습니다. 김지훈의 서사를 위해 다소 편의적으로 투입된 인물인가 싶을 정도인데요. 공진우 살해 이후 이 작품은 매력이 줄어듭니다.

공진우 이후 김지훈과 대적할 인물은 이수연과 채희정인데요.김지훈과 거의 대등하게 머리싸움(?) 몸싸움(?)하던 공진우가 퇴장한 이후 이수연과 채희정이 김지훈에 맞서는 걸 기대하기가…어려웠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스토커를 처벌할 법이 약하긴 하지만, 공진우가 활개치고 다니는 동안 여성인물들은 김지훈에 맞설 ‘파워’를 쌓지 못했습니다. 지질한 놈 vs 더 지질한 놈의 개그물이 아니라면, 공진우는 도입부의 역할이고 여자들 vs김지훈이 본편일 텐데요. 공진우가 ‘직접’ 김지훈과 맞설 동안 채희정은 이수연의 집으로 ‘도피’하고 김지훈의 ‘동생’에게 전화해서 항의하고 김지훈의 정체를 알아냈을 뿐 실질적으로 맞서서 뭔가를 하진 않았습니다. 이때부터는 김지훈이 아무리 지질하게 나와도 웃기질 않습니다. 대화도 안 통할 또라이가 칼 들고 설치는데, 채희정이나 이수연이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진짜로’ 채희정이나 이수연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으니까요.

만약에, 공진우의 죽음으로 이수연이나 채희정이 ‘각성’했다면 여자들 vs 김지훈에서 힘의 균형이 맞지 않았을까요. ‘여친의 죽음으로 각성하는 남자주인공’이라는 클리셰도 전복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체력은 여성이 남성보다 약할지라도 지능, 재력, 인터넷,언론, 청부폭력(?) 등등 물리적 폭력 말고도 스토커에게 복수하거나 엿먹일 수 있는 수단이 있을 것 같은데요. 애초 구상대로 이수연과 김지훈이 맞섰다면, 그 과정에서 이수연이 채희정을 보호하거나, 채희정이 이수연과 한편이 되어 김지훈과 대적했더라면, 여성이 피해자에 머물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요.이수연이 차키를 조작해서 김지훈 검거에 도움 주는 정도로는 약해요. 힘의 균형이 차이나다 보니 김지훈이 이수연의 집으로 쳐들어온 이후 김지훈의 지질함은 여전하지만 공진우랑 투닥일 때보다 긴장감이 덜 합니다. <사스>의 ‘웃기면서 무서운’ 절묘한 균형이 허물어진달까요.

혹은 이 경험을 계기로 채희정이나 이수연이 ‘성장’한다면 어떨까요. 채희정이 후일담에서 기자와 인터뷰 하면서 ‘김지훈은 사회에 의해 괴물이 되었다’는 식으로 요약정리하는 부분도 좀 더 조심스러워야 할 것 같습니다. 김지훈에 대한 면죄부(면벌부)로 읽힐 수도 있어서요. 채희정이 ‘별 일 없이 살고’ 김지훈이 중형을 받는 게 ‘권선징악’이긴 한데, 너무 깔끔해서 마무리가 후다닥 된 느낌이었습니다. 오히려 ‘초범이고, 그 정도는 계획성이 없었다’는 이유로 약한 처벌 받는 결론이었다면 현실반영이라서 씁쓸했겠네요…

현실보다 반발짝 더 나아가는 게 예술이라면, ‘미소지니 하는 남자는 지질해’에서 더 나아가 여성들의 연대와 파워, 혹은 저 지질한 스토커에게도 겁먹을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통렬한 고발, 피해자로만 남지 않는 삶 등을 보고 싶습니다.채희정과 이수연에게 더 힘을 실어 주세요. 여성들은 생각보다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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