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누구인가’라는 매우 기본적인 물음으로 독자들을 괴롭히는 담백한 추리물, 거기에 더해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할 경우 닥쳐올 실질적인 위험으로 독자들 마음을 쫀쫀하게 하는 스릴러입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살인범이다.”
이 첫 문장이 「연출자 X」의 추리/스릴러 에너지를 가동시키는 원점이지요. 화자와 독자의 앞에는 화자의 연인 김성미, 그리고 그녀가 살인범이라고 주장하는 최승현 두 사람이 제시되고 화자와 독자는 어느 쪽이 진실이고 어느 쪽이 거짓인지 추측하며 글을 읽게 됩니다. 두 등장인물은 초반부에 신속하게 소개되고, 작가는 능숙하게 수상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한 사람과 스스로를 꾸미고 전시하기를 잘하고 그래서 사랑스러운 한 사람을 내보입니다. 상당히 뚜렷한 대비를 가진 첫인상을 시작으로 독자 앞에는 한 조각 씩 새로운 카드가 주어지고, 그 때마다 진실과 거짓은 모호해집니다. 글이 진행되는 동한 계속해서, 그리고 끝까지 두 인물이 진실과 거짓 혹은 선과 악으로 뚜렷하게 나뉘지 않는 것은 쫄깃함과 재미를 더해줍니다.
이렇듯 고전적인 (그리고 고전적인 이유가 있는!) 서사가 탄탄하게 밑받침해주는 가운데 「연출자 X」에 매력을 더해 주는 건 제목이 이야기하듯이 ‘연출’입니다. 범죄 리얼리티 영상을 만들겠다는 최승현과 프로 아동 컨텐츠 영상 제작자인 김성미는 스튜디오 안팎에서 상황과 인물, 그 중에서도 자기 자신을 연출하고 스스로 보여지기 바라는 모습을 남들도 보게 만들고자 하는 인물들입니다. 두 주요 인물 외에도 양시만과 연출자X 역시 이런 유형의 인물상을 구체적으로 그리는 데 일조하지요. 오늘날의 우리들은 일상적인 맥락 안에서 스스로를 연출하는데 많은 힘을 쓰곤 합니다. SNS에 올리는 게시글 하나, 덧글 하나, 어떤 페이지를 팔로우하는지. 취업활동 중에는 자소서를 발표하고,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에는 내용물만큼이나 영상물 혹은 PPT의 디자인과 전달 방식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 화자가 김성미를 보고 코멘트하듯이, “자신의 특징과 매력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은 현대인에게는 거의 필수 스킬인 것 같습니다.
「연출자 X」에서 우리는 우리의 일상적인 귀찮음이자 피곤함이었던 그것이 여러 사람의 인생을 지배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연출가들의 작품들은 익숙하지만 익숙함을 넘어서 소름끼치고, 악독하고, 그래서 매력적입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하민의 위치에 대한 애매함이었습니다. 적극적으로 스스로의 삶을 연출함으로써 타인의 삶까지 변화시키고자 하는 다른 인물들과는 다르게 하민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대부분의 경우 다른 누군가의 영향에 의해 행동을 결정하게 됩니다. 이런 면에서 소극적인 만큼 주인공을 서사의 한가운데에 붙들어 놓을 다른 장치가 필요한데, 「연출자 X」에서 그 장치는 ‘사랑’, 혹은 하민과 성미가 그렇게 부르는 무언가였던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이 사랑한다고 서로 속삭일때, 그 의미는 전혀 달랐을 것 같지만요. 김성미의 인생이 완전히 뒤집힌 어린 시절 그 날의 짧은 만남이 두 사람을 계속 이어놓는 건, 김성미의 시점에서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는 김성미의 모습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바로 그 알수없음이 로맨스릴러로서의 매력이지요. 하지만 하민의 입장에서 본 두 사람의 관계는 무언가 이상했습니다. 최승현이 주는 돈을 장난인가, 하면서 일단 받고 보고, 성미가 살인자가 아닐 것이라고 믿으면서도 성미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지는 못하던 하민이 김성미에 대한 사랑을 굳힌 후 하는 행동들은 낯설게 다가왔습니다. 살인 후에 죽은 사람의 지갑과 계좌를 확인하고, 성미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함께 해외로 도피하는 모습은 글의 전반부에서 봐 왔던 하민의 모습과는 한 톤 비껴가 있는 듯 했습니다. 다섯 번의 데이트와 하룻밤이 주는 사랑이 얼마나 뜨거우면 사람을 그렇게 바꿔놓을 수 있는 걸까요? 김성미의 퍼포먼스가 얼마나 강력했어서 하민은 그 무대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든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