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는 모르겠고, 팬은 발생하겠네요.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작가: 이산화, 작품정보)
리뷰어: 아리다스, 18년 4월, 조회 245

리뷰에 앞서, 전 SF의 S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스페이스 판타지로 알던 사람이에요. 백합이라서 건드린 사람이라구요. 그래도 씁니다. 리뷰란 어디까지나 수용자의 감상을 그럴듯한 근거로 들이미는 글이니까요. 비평 기대하시면 아래 3줄 요약까지만 읽어주세요.

 

-6편 짜리 OVA를 보는 듯한 밀도 높은 구성

-백합은 육체적 관계에 치우친 기호성 아이템.

-재미있습니다.

 

이렇게 요약했지만 사실 길게는 안 적을 거에요. 정확힌 못 적겠네요. 아는 게 많으면 레퍼런스나 개인적 경험을 근거로 쓸 얘기가 많았을 테지만, 앞에도 적었듯이 전 SF와 담을 쌓던 독자고 백합이 좋아서 이 작품을 건드렸거든요.

 

그리고 스포일러 없습니다. 전 리뷰에 스포 안 적는 주의에요. ㅎㅎ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란 제목은 이 작품의 주제를 꿰뚫습니다. 뭔가 트러블이 생겨서 벌어진 사단에 주인공이 휘말립니다. 수사관이라는 주인공의 직업 덕분에 명분도 서고요. 여기에 ‘안락의자 탐정’ 스타일의 히로인이 끼어듭니다. 휘둘리는 주인공과 좌지우지하는 히로인의 주고 받는 캐미를 읽고 있자면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갑니다. 고전적이지만 질리지 않는 스타일이죠.

 

이런 밑바탕 위에 사이버펑크가 세워졌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기엔 아이러니한, 반대로 저쪽이 보기엔 21세기 모습이 괴상망측하다 여길 수 있는 특유의 괴리감을 잘 살려서 우리에게 선사합니다. 과거와 현재가 단절됐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이야기를요. 작중에선 담담히 서술하지만 이것도 인간이라 해야 하나, 인간과 기계의 차이는 무엇인가, 인간의 미래는 무엇일까 하는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그리고 당장 우리의 일상에서도 터질 수 있는 오류가 한데 얽힙니다. 덕분에 이런 해괴망측한 세계를 다 봤나 싶으면서도 독자는 작중 배경을 납득하고 맙니다.

 

이어서 꽤나 자극적인 수위로 스타트를 끊은 다음 2~3화에 걸쳐 여기가 어떤 곳인지 설명합니다. 물론, 주인공과 히로인의 백합 캐미는 빠지지 않고요. 매 화 백합의 스멜을 느낄 수 있단 점이 이 작품의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매 화 이 동네가 어떤 곳인지 새로운 단서가 주어져서 상상력을 자극하고요. 더해서 위에 적었다시피 이 작품은 OVA를 연상시키는 밀도 높은 전개력을 보여줍니다. 1~3화에 걸쳐서 클라이맥스를 위한 복선을 쌓아가죠.

 

이 타이밍서 사족 하나. 다른 분들의 리뷰를 읽으니 3화가 가장 혹평을 받던데 이해는 합니다. 근데 3화가 없으면 이 작품의 전체 줄거리 자체가 성립되지 않아요. 지적은 정당합니다만, 1990~2000년대 OVA만 보더라도 3~4화 즘 쉬어가는 에피소드에 복선 끼얹을 때 많아서 전 납득했습니다. 당장 TVA도 그러는 걸요. 적고 나니까 초중신 그라비온의 그 화수 낭비 생각나서 열 받지만 넘어 가겠습니다.

 

1~3화에서 쌓인 복선과 무대 장치들은 4~5화에 걸쳐 폭발합니다. 한 화마다 잘 됐네 잘 됐어로 끝나는 듯 싶으면서도 클라이막스를 향해 나아간다는 점도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기원의 내막, 있을 법하지만 있어선 안 될 뒷 설정 등이 클리셰란 이름으로 등장하긴 하는데 딱히 거부감은 안 들어요. 자연스럽게 흘러가거든요. 또한, SF의 비관적인 세계관이면서도 항상 좋게 끝나리라고 보증수표를 남발한 덕분에 괜히 맘 졸이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맘에 들었어요. 그렇기에 수 시간을 들여 정주행할 수 있었고요.

 

그래도요, 백합을 기대한 저에겐 적잖게 실망한 구석이 있습니다. 사이버펑크 태그가 앞, 백합 태그가 뒤에 있을 때부터 각오는 했지만 그래도 너무하잖아요. 육체적 관계를 동반한 기호성 백합이 주류를 이룬 탓에 백합을 메인으로 기대하면 저처럼 됩니다. 탄식이 나와요.

 

누군가는 여성과 여성의 농후한 민달팽이 (검열)이면 좋을 수도 있죠. 그치만 저처럼 여성 대 여성이기에 가능한, 찌인득 하면서도 오만 잡상이 교차하면서 얽히고설키는 감정선을 기대한 독자에겐 아쉬운 구석이 남아있단 겁니다. 비상하게 유능하면서 애인에게 집착하는 히로인과 휘둘리면서도 결코 변치 않는 주인공의 마음, 이런 건 솔직히 남x여 소년만화나 버디물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구요.

 

남캐는 백합물 특유의 감정선을 표출하지 못한다는 건 편견 아니냐고요? 그렇죠. 그래도요, 그런 거에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시댑니다 아직까지는. 백합이라는 특수한 전제 조건 하에서만 쉽게 납득할 수 있는 특유의 인간 관계의 갈등이나 썸씽이 있단 겁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아예 남x여 메이저 장르나 찾으란 핀잔을 들을 순 있죠. 그러나 전 그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습니다. 가까이는 시트러스, 멀리는 마리아 님이 보고계셔로 백합의 멋짐에 눈을 뜬 새내기들이 있듯이 세기말을 마법소녀 파르페로 보낸 저에게 있어 같은 구도면 남x여 커플 보다 백합 캐미를 더 좋아할 수밖에 없다 이 말입니다. 아, 이 작품의 백합 요소가 잘못됐단 건 아닙니다. 제 취향에서 빗겨갔을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완주하기까지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재미있거든요. 이 미래상에서 벌어지는 인간군상극과 주연들이 주고 받는 감정선의 흥미진진함,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결론에 이르는 템포까지 제 맘에 쏙 들었네요. 하층민이 좌충우돌 사건들을 겪으며 세계를 뒤흔드는 클리셰가 지겨울 순 있어도 시시하진 않았습니다.

 

누군가는 슈퍼로봇대전 스토리처럼 좋게 좋게 넘어가는 해피엔딩 일직선인 이 작품의 스탠드가 맘에 안 들수 있겠죠. 그래도 전 괴로운 이야기보다 행복한 이야기가 더 좋아서 맘에 들었습니다. 작가님의 다른 작품에도 관심이 생기네요. 조만간 결재 수익이 들어가면 저인줄 아세요 작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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