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을 읽으니, 동성결혼 찬반 토론이 생각나더군요.
현대에 들어서 많이 인식이 변했다고 하지만, 동성애와 같은 성소수자들은 사람들에게 좋지 않는 소리를 듣기 마련입니다. 대표적인 말로는 ‘섭리에 맞지 않다.’라는 이유가 있지요. 하지만 웃기게도 그들이 운운하는 ‘섭리’ 즉 ‘자연’에서도 동성애를 찾아 볼 수 있지요. 인간도 섭리(자연)의 일부인데 이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인간과 자연을 따로 떼어 보면서 섭리라는 개념을 제멋대로 사용해 휘두르는 느낌을 주더군요. 이 상담하는 간사처럼 말이에요.
이 세계관에서 수술로 성적 지향성을 바꿀 수 있다고 하지만, 결말을 보면 솔직히 그것도 완벽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의 내용은 독자가 읽으면서 상당히 마음이 불편한 느낌이 들게 만듦니다. 이성애만을 진리로 여기는 사람이라면, 마지막 주인공이 수술을 받았음에도 성적 지향성이 바뀌지 않아 좌절해서 죽었다는 느낌이 들게 만드는 뉘앙스이고, 성적지향성에 대해 자신의 선택이라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이 글의 전체 내용에서 느껴지는 편견이 역겹게 느껴지지요.
이 글을 읽으면서 또 불편한 감정이 들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면, 그렇게 교정된 이성애자 ‘여성’이 나라를 위해서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해 아이를 많이 낳을 것이라고 말하는 부분입니다.
이 글 안에 사회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물론이고, 여성에 대한 차별도 만연하다는 것을 느끼게 만드는 대목이었습니다.
이 글에 가장 역겨운 느낌을 증가시키는 장치는 유미를 상담한 간사의 존재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간사가 정말 정말 동성애자였다 수술로 이성애자가 되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자신이 바뀌었기 때문에 당연히 다른 사람도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읽으면서 짜증이 나더군요. 솔직하게 그 간사의 말은 학교폭력 피해자에게 상담사가 나도 옛날에 학교폭력을 당했는데, 날 괴롭히던 아이에게 내가 맞추면 되더라. 너도 그 애들이랑 같은 반 친구니까. 친구가 되도록 노력해보렴! 이라고 말하는 것이랑 똑같아요. 짧게 줄이면 ‘개소리’라는 거죠!
아마 이 글의 간사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유미가 왜 자살했는지 평생 알지 못하겠지요. 그리고, 그 자살의 원인을 귀인하다보면 자신에게도 일정부분 존재한다는 사실도.
여러모로 유미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드는 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