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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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사마귀나 개구리를 보면 돌을 던지며 놀곤 했습니다. 저는 시골 출신이라, 말 그대로 개구리 꼬챙이 끼워 구워 먹고 그랬죠. 국민학교라 불리던 까마득한 시절이네요. 돌에 맞아 죽은 개구리를 불에 구우면, 기도하듯 양 손이 오므라들고, 넓적다리는 통통하게 익어요. 죽 뜯어 입에 베물면 닭고기 맛이 납니다. 불쌍하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아, 지금에야 끔찍한 기억이지만 돌에 맞아 죽은 개구리 입에서 알갱이가 섞인 걸쭉한 액체들이 흘러나오는 걸 보고 징그럽다고 떠들던 때도 있었네요. 색이 초록이라 기억이 납니다.
리뷰 첫 부분부터 징그러운 표현을 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절대, 못 합니다. 자각하고 있으니까요. 생명의 소중함? 당시는 몰랐죠. 어린 아이 일 때고, 개구리를 죽여선 안 돼 라는 말을 하는 어른들은 아무도 없었어요. 지금은 하라고 해도 안 합니다. 죄책감이 들거든요. 한낱 미물이라도, 함부로 죽여선 안 된다는 거, 확실히 알고 있으니까.
탱탱 작가님의 글은 구수한 입담 같은 표현이 일품이죠. 이 글 역시 구수한 입담으로 시작합니다. 촌구석 오지에 새로 부임한 미모의 여교사가 등장합니다.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 하지만, 어느새 여교사는 개구리 처녀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됩니다. 말이라는 건 돌고 돌아 없는 상황도 만들어내죠.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잖아요. 여교사는 소심하고 조용하고 순수하고 착한 여인이나, 마을 사람들의 돌고 도는 소문과 질투 혹은 험담 혹은 음흉한 농담들에 의해, 점점 변해가고 맙니다. 그리고 끔찍한 결말을 맞이합니다.
여기까지가 전반부입니다. 읽는 독자들은 분노를 금할 길이 없습니다. 개구리 처녀에 대한 동정심도 생기고요. 막말로 이런 썩을 놈들이란 욕이 튀어나올 정도로, 뛰어난 문장과 몰입도로 이입하게 만듭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차갑고 덤덤한 표현이 아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탱탱 작가님의 변사 같은 진행이 장단을 맞추며 묘한 시너지를 일으킵니다. ‘개구리 처녀가 개구리처럼 널브러졌네’ 라는 대사까지 등장하면서, 현실에도 일어날 수 있는 이 정말 무서운 이야기가 남일 같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기다리는 복수가 암시됩니다.
개구리 처녀의 복수극. 후반부는 그렇게 현실적이던 전반부와는 달리(마치 염전 노예 사건이나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비현실적인 오컬트 장르로 바뀝니다. 역시나 작가님의 구수한 입담은 여전합니다. 알 수 없는 싸움, 살인, 교통사고 등등 마을은 풍비박산이 됩니다. 이 멍청하고 아무 생각 없는 주민들은 그러려니 하고 마가 꼈나 이러다가 무당을 불러 굿을 해요. 무당이 연실 굿을 하다가 드디어! 원귀에 빙의됩니다. 네, 개구리 처녀요. 자 이제, 너희들이 저질렀던 끔찍한 죄에 대한 죗값을 치러라. 후회해라. 너희가 이렇게 큰 죄를 저지른 거야.
무당이 개구리처럼 엎드려 거품을 무는데, 개구리 처녀가 원귀가 되어 빙의해서 복수를 하고 정체를 드러내는 데, 질질 짜고 미안했다고 울부짖고 해야 되는데.
주민들은 모릅니다.
왜 이러는지.
개구리 처녀의 복수는 그렇게, 의미 없이 사라집니다.
초반에 왜 저런 추억을 주절주절 펼쳤는지 이제 아시겠죠. 이들은 죄책감 따윈 존재하지 않았어요. 죄책감은, 죄를 지었다는 자각에서 비롯됩니다. 마가 끼었어. 재수가 없네. 일어날 수 없는 사고들이 난무하고, 영험한 무당이 직접 빙의해서 너희들이 죽인 이 원한을 봐 하고 쇼를 해도, 이들은 모릅니다. 왜 저러지? 애초부터 개구리 처녀의 죽음은 정말이지 개죽음이었던 거죠. 실상을 전부 아는 우리, 그러니까 글을 읽는 독자들은 다 알고 있고 분노 하고 복수를 원하고 마무리를 원하는데, 구수한 입담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님은 그리 놔두지 않습니다.
개구리 처녀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이 얼마나, 불쾌하고, 찝찝하고, 짜증나는 결말입니까.
끔찍하게 억울하게 죽은 개구리 처녀의 복수극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렸어요.
왜? 그저 단지, 이들은 자신들의 죄를 몰라서. 기억도 못 해서. 자각하지 못 해서.
이 작품의 뛰어난 점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철저히 제3자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보는 입장에서는 분명 감정이 제대로 이입되어 따라가는 것을 알면서도, 신경 쓰지 않고 흔하디흔한 진행을 거부합니다. 결국 마을은 망하고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지겠지만, 영원히 개구리 처녀의 원한은 풀리지 않겠죠. 안타깝고, 불쌍합니다. 그렇게 여운을 주며 글은 끝이 납니다.
호러 문학을 정의하는 데 있어, 여러 가지 의견들이 많지만, 제가 가장 가깝다고 느끼는 주장중에 하나가, 바로 테러 문학이라는 겁니다. 말 그대로 독자에게 테러하는 문학. 불쾌하고 짜증나게 하는 소설. 공포 그 자체가 불쾌한 단어죠. 읽고 나서 불편했다면, 공포 문학으로서 성공한 겁니다.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그럼에 있어. 이 개구리 처녀라는 소설은, 최고의 불쾌함과 불편함을 선사해줍니다. 작가님의 유려한 문장과 가독성, 특유의 구수한 입담은 붕 떨어져 관람하게, 혹은 듣게 만드는 분위기를 주는 데, 너무도 잘 어울리죠.
훌륭한 작품이며 꼭 보시길 권합니다.
ps. 제 소설에 이 인간들 다 등장시켜 깡그리 죽여 버리고 싶었는데, 꾹꾹 참고 리뷰 씁니다…….(개구리 처녀에 대한 리스펙트다 이 놈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