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가 무너지는 이 곳 이계리에서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이계리 판타지아 (작가: 이시우, 작품정보)
리뷰어: Ello, 18년 4월, 조회 267

0.

고야

아배는 타관 가서 오지 않고 山비탈 외따른 집에 엄매와 나와 단둘이서 누가 죽이는 듯이 무서운 밤 집 뒤로는 어느 山골짜기에서 소를 잡아먹는 노나리꾼들이 도적놈들같이 쿵쿵거리며 다닌다

날기멍석을 져간다는 닭 보는 할미를 차 굴린다는 땅 아래 고래 같은 기와집에는 언제나 니차떡에 청밀에 은금보화가 그득하다는 외발 가진 조마구 뒷山 어느메도 조마구네 나라가 있어서 오줌 누러 깨는 재밤 머리맡의 문살에 대인 유리창으로 조마구 군병의 새까만 대가리 새까만 눈알이 들여다보는 때 나는 이불 속에 자즈러붙어 숨도 쉬지 못한다

또 이러한 밤 같은 때 시집갈 처녀 막내고무가 고개너머 큰집으로 치장감을 가지고 와서 엄매와 둘이 소기름에 쌍심지의 불을 밝히고 밤이 들도록 바느질을 하는 밤 같은 때 나는 아릇목의 삿귀를 들고 쇠든밤을 내어 다람쥐처럼 밝아먹고 은행여름을 인두불에 구워도 먹고 그러다는 이불 우에서 광대넘이를 뒤이고 또 누워 굴면서 엄매에게 윗목에 두른 병풍의 새빨간 천두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고무더러는 밝는 날 멀리는 못난다는 메추라기를 잡아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내일같이 명절날인 밤은 부엌에 쩨듯하니 불이 밝고 솥뚜껑이 놀으며 구수한 내음새 곰국이 무르끓고 방안에서는 일가집 할머니가 와서 마을의 소문을 펴며 조개송편에 달송편에 죈두기송편에 떡을 빚는 곁에서 나는 밤소 팥소 설탕 든 콩가루소를 먹으며 설탕 든 콩가루소가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얼마나 반죽을 주무르며 흰가루손이 되어 떡을 빚고 싶은지 모른다

섣달에 냅일날이 들어서 냅일날 밤에 눈이 오면 이 밤엔 쌔하얀 할미귀신의 눈귀신도 냅일눈을 맏노라 못 난다는 말을 든든히 여기며 엄매와 나는 앙궁 우에 떡돌 우에 곱새담 우에 함지에 버치며 대냥푼을 놓고 치성이나 드리듯이 정한 마음으로 냅일눈 약눈을 받는다

이 눈세기물을 냅일물이라고 제주병에 진상항아리에 채워 두고는 해를 묵혀가며 고뿔이 와도 배앓이를 해도 갑피기를 앓아도 먹을 물이다

 

1.

어떻게 생각하면 사족이란 단어는 이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 진 건 아닐까, 하고 리뷰 쓰기 버튼을 앞에 두고 여러번 망설이게 됐습니다. 쟁쟁한 리뷰어들이 이미 각자의 감상과 해석을 잘 표현 주셨기 때문에 게다가 이미 그 리뷰들을 다 읽어버린 탓에 새로운 논의를 진행하기 어려워진 까닭입니다. 그렇지만 역시 백석의 <고야>와 잘 맞는 글이기도 하고요. 핑계가 좋은 김에 용기를 내서 끝맺어 볼까 합니다.

먼저 공간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시골이라는 배경이 있기 전의 공간은 어떨까요.

미호는 이계리에서 자신이 머무는 집과 뒷산에 대해 ‘정당한 권리자’ 로 불리고 있어요. 게다가 미호의 집에서는 어떤 괴이도 미호를 해칠 수 없다고 여러번 말이 나오죠. 그래서 세연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도 일단 도시에 머무는 세연을 데리고 이계리의 집으로, 미호가 정당한 권리를 행사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데리고 갑니다.

집 안과 집 밖을 구분하는 금줄을 치거나, 복을 불러온다는 복토를 훔치거나, 액운을 떨치기 위한 지신 밟기를 하는 것도 모두 이런 공간적인 구분을 하기 위한 행위였죠. 내가 정당한 주인인 집으로 내보내거나 불러들이는 행위에요.

그렇지만 집 안과 밖을 구분하는 행위가 좋기만 한건 아니었어요. 그 결과 외부인인 미호가 시골 마을의 ‘정당한 권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김서방이 부리는 강짜나 뭘 모를거라고 깔보는 어둑시니들의 텃세도 마찬가지고요. 게다가 제일 눈길이 갔던 건 정자에 앉아 있는 미호를 보고 눈을 위아래로 홉뜨던 영감님이에요. 그 영감님이 물러난 건 미호가 단순한 외지인이 아니라 이제 귀녀할머니의 제자가 되었다는 뜬소문이 있고 난 뒤였죠. 그리고 분명 은호가 아니었더라면 뻘쭘하게 서있다 나왔어야 했을 마을회관 잔치에서는 미호가 김서방네 개를 사다 키운다거나, 귀녀 할머니와 훈련하는 걸 봤다는 등의 얘기가 나왔겠죠. 시골 사람들의 인정이란 그런거니까요.

미호가 작가였건 궁수였건 혹은 어떤 잘나가는 직장인이었건 그런 미호의 개인사는 관심 밖이고, 시골이라는 배타적인 공간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하다못해 “고양이와 논길을 걸어오더라, 이제 개도 키우고 고양이와도 잘지내니 우리 마을 사람이다.” 라는 전제가 필요해요.

인면지주를 죽이려고 할 때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던 까닭은 어쩌면, 그 인면지주가 외국에서 온 아직도 인정 받지 못한 낯선 여성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그리고 어쩌면 미호가 인면지주에게 동정심을 느끼고 살려주는 것도 외부에서 온, 아직은 이계리의 일원이 되지 못한 여성으로서의 동질감일 수도 있지요.

단지 마을과 연관되지 않은 오롯한 개인사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소외시키는 것이 이계리라는 시골이 가지고 있는 공간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조금만 방심하면 시골이라는 거대 공간에게 잡아먹히는 건 일도 아니에요. 그렇게 잡아 먹힌 존재들이 괴이가 되는 걸 수도 있는데 말이죠.

 

2.

얼마 전 리뷰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무렵 꿈을 꿨어요.

이계리를 무대로 한 작은 마당극이었어요. 한 쪽에서는 미호가 귀녀 할머니와 산을 타고 있고, 한 쪽에서는 검둥이가 형제들이랑 어울려서 놀고 있고, 조풍은 한껏 멋을 부리며 어딘가를 걸어가고 있었어요. 각자가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 광경을 보며 이 중에 뭘 써야 하나 고민했죠. 그 때 변사가 말하길 “그래서 미호의 무기는 활이야 펜이야?” 라고요. 그 순간 잠에서 깨서 “그래서 활이야 펜이야!!” 하면서 억울해 했지만 답은 스스로 찾아야겠죠.

생각해보니 미호는 무기가 아주 많아요. 활도 있고 펜도 있고, 검도 있고 검둥이도 있어요!

이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건 검둥이죠, 두 말 할 것 없이. 검둥이는 흉조나 어둑시니가 접근을 못하게 막아주는 건 물론 조풍처럼 무서운 사람(?)도 미호 가까이에 오지 못하게 열심히 막아요. 파수견이라고 부르고 미호의 권리가 닿는 곳을 지키는 금줄 같은 역할이네요.

검둥이는 미호를 지키려다 다리가 잘리고 마는데요. 세다리의 멍멍이, 하지만 육체의 불완전함이 오히려 검둥이를 완전한 존재로 만들어줍니다. 염라대왕이 강림차사의 길 안내를 맡겼던 흰강아지도 세다리였어요. 게다가 미호가 괴이가 되는 이계로 넘어갔을 때 검둥이는 다시 네다리를 가진 개가 되는데 이 곳이야 말로 불안정한 세계이므로 현실의 세다리인 검둥이야 말로 완전한 존재라는…. (여하튼 검둥이 발이 잘린게 안쓰러워서 이러는 건 아닐겁니다…)

(잘린 검둥이 발을 부적으로 완성해주셨어요. 문준수 작가님 감사합니다 ㅠㅠ 모두에게 행운이 깃들길.)

 

최애인 검둥이에게 완전성을 부여했으니 다음 무기들은 빠르게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남자친구 꼬임에 넘어가서 산 활, 귀녀 할머니 소유의 활, 조풍에게 받은 활과 은호에게 부탁해서 산 화살 등 미호가 궁수인 건 맞네요. 하지만 미호의 의지만으로 완성된 무기는 아니에요. (아, 그러고보니 미호는 활을 들음으로써 이계리와의 거리를 확보하고, 화살의 갯수에 따른 한정성 덕분에 재미도 확보했네요.) 그리고 큰 역할을 하는 마음에 쏙 들었던 칼은 도철에게 선물 받았죠.

생각해보면 검둥이도 귀녀 할머니의 권유로 김서방에게 받아온 개였으니 사실 미호의 참된 무기는 펜이라는게 답이었을거예요. 결국 1부의 문을 닫는 것도 미호가 작가로 인정받았을 때니까요.

미호가 원해서 지닌 것, 미호가 결국 되기 원하는 것.

내 안에서 이미 알고 있는 것의 답을 끌어 올리는 건 짜릿하네요.

질문을 던져 주었던 변사와 그럴 듯한 해석을 낼 수 있게 도와준 미호에게 감사 인사를 보냅니다.

 

3.

이 작품에서 한 장면만을 뽑는다면요.

 

먹잇감을 노리는 듯 매섭게 치켜 뜬 호랑이의 눈과 그 사이에 놓인 커다란 코가 미호의 얼굴과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다.

긴장하여 내뱉는 미호의 숨결에 호랑이의 수염이 작게 떨린다.

 

 

저는 이 장면에서 숨을 오래 참았다 한숨처럼 내쉬고 말았어요. 두려움과 떨림이 공존하는 찰라의 순간을, 그 팽배한 긴장감을 아직도 떨쳐내기가 어렵네요. 단전 쯤에서 뭔가 꿈틀, 하고 약동하는 느낌이에요.

장아미님이 리뷰에서 짚어주신 그 장면의 선정성에 적극 동의합니다. 게다가 본능 속에 각인 된 공포와 나만은 괜찮다는 굳건한 믿음 사이에서 오는 이 장면의 짧은 쾌락도 소설을 구성하는 감정을 극대화 시키는데 일조한다고 생각해요.

매우 경험해보고 싶은 일이기도 하군요.

 

4.

미호는 분노할 때마다 강해지고, 포뢰는 너무도 순수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염원과 저주를 구분하지 못하고, 조풍은 끝까지 멋과 빈정거림을 잃지 않고, 도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녀를 살립니다.

자유분방한 성격의 캐릭터들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이 곳 이계리는 내 영역과 네 영역의 경계, 꿈과 현실의 경계, 도시와 시골의 경계, 끝내는 이야기의 경계까지 무너지고 마는 곳이고요.

이 글을 읽는 독자마저 현실을 잊고 작품 속으로, 도시에 살아도 시골 속으로, 이렇게 꿈 속에서조차 어떤 통찰을 얻게 되네요.

경계와 경계가 허물어지는 이야기는 2부에서 초라한 웅얼거림을 뱉는 아주 작은 호랑이와 사실은 비밀을 간직한 고양이와 함께 계속되겠죠. 검둥이는 자유롭게 사냥을 할테고 미호는 또 어떤 퀘스트를 받아 얼마나 좋은 무기를 얻게 될지.

궁금한 마음을 한껏 담아 리뷰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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