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감상형 리뷰입니다.
예전에 연극 [러브 러브 러브]를 본 적이 있습니다.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도 제 뇌리에 남는 것은 전혜진 배우가 한 대사입니다. 극중 샌디(전혜진 배우)가 옥스퍼드인지 캠브리지인지 영국 명문대 학생이었는데 술을 먹고 뻗는(?) 바람에 캠퍼스 내에서 잠을 잤거든요. 학교 경비가 자고 있는 샌디를 깨우지요. 그때 샌디를 깨우며 한 대사가 “학생, 이런데서 자면 강간당해.”였습니다. 그러자 아직 술기운이 가시지 않은 샌디가 자리에서 일어나 휘청거리며 말하지요. “아저씨, 저 여자에요. 밖에서 자든 안에서 자든 낮이든 밤이든 항상 강간당할 위험이 있어요.”라구요.(너무 옛날이라 실제 대사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대사를 들었을 때의 충격이란. 영국의 베이비부머 세대인 샌디와 켄은 자유를 좇는 리버럴리스트입니다. 그래서 저는 주인공인 샌디와 켄의 말들이 사실 맘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저와 너무 다르니까요. 하지만 저 대사만큼은 확실히 제 맘에 와 닿았지요. 5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종종 떠올릴 정도로요.
맞습니다. 원래 ‘밤’은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죠. 밤이슬이 내린 거리, 가로등이 켜진 공원에서 혼자 맡는 풀냄새, 밤하늘에 떠있는 반짝이는 별. 달빛과 가로등빛이 어우러진 밤거리는 얼마나 매력적인가요! 하지만 우리는 ‘밤’을 두려움의 시간으로 여기곤 합니다. 이는 ‘밤’과 결합한 다른 것 때문이지요. “다른 것”은 강간, 폭행, 납치처럼 현실적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일 수도 있고 귀신이나 악마 같은 미지의 존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본질적인 문제는 “다른 것”이지만, 종종 이 결합 때문에 우리는 ‘밤’ 자체를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밤을 좋아하는 소녀 이야기]의 수지는 다릅니다. 수지는 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밤의 매력을 잘 아는 아이지요. 부모님은 수지의 밤 산책을 좋아하지 않기에(금지하기에가 아니라 “좋아하지 않기에”입니다. 작품 속 세상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는 다르다는 걸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지요.) 수지는 매일 밤 몰래 밖으로 나가 밤 산책을 즐깁니다. 세상에, 어린 여자아이가? 늦은 밤거리를, 그것도 혼자? 더 이상 파괴될 동심도 남아있지 않은 저는 초반에 글을 읽으면서 걱정을 하였지요. 허나 이것은 기우일 뿐이었습니다.
[밤을 좋아하는 소녀 이야기]의 작품 태그는 #동화, #판타지, #메르헨이랍니다. 판타지적 요소가 가득한 동화라고도 볼 수 있고 동화적인 요소가 가득한 판타지라고도 볼 수 있는 글이지요. 밤을 좋아하는 수지는 밤 산책을 하다가 공원에서 ‘밤의 마법사’를 만납니다. 수지가 ‘언니’라고 부르는 ‘밤의 마법사’는 마법가루가 담긴 주머니를 찾고 있었지요. 밤을 불러오는 마법가루가 담긴 주머니요. 수지는 처음에 ‘밤의 마법사’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날부터 정말 밤이 오지 않습니다. 잠을 자지 못한 아빠는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을 깨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엄마도 잠을 자지 못해 회사에서 너무 피곤했다고 말하지요. 밤이 오지 않아 밤산책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지는 다시 밤을 되찾기로 결심합니다. 수지의 모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거지요.
저는 사실 밤을 가져오는 ‘마법사’나 밤을 가져오는 ‘마법가루’보다 이 부분이 더 판타지 같다고 느껴지더군요. 어린 아이도 밤늦게 산책을 할 수 있는 세상, 아빠가 설거지를 하는 세상, 엄마도 일을 하는 세상, 밤하늘의 별이 잘 보이는 세상, 흙냄새와 풀냄새를 맡을 수 있는 세상, 가슴 가득 밤공기를 들이마셔도 안전한 세상. ‘밤’에 결합시킨 “다른 것”들을 들어낸 있는 그대로의 ‘밤’이 존재하는 세상. 이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요!
[밤을 좋아하는 소녀 이야기]는 꿈꾸는 아이가 그려내는 밤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수지처럼 용감한 아이들이 꿈꾸는 멋진 세상이지요. 그리고 ‘마법사’나 ‘마법가루’와는 다르게 언젠가는 이룰 수 있는 꿈이 아닐까 싶네요.
브릿지에 올라온 도화선 작가님의 글이 많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보여주실 글이 정말 기대가 됩니다. 작가님. 좋은 작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