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점이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저는 리뷰 전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고나서 시작합니다. 어떤 작품은 개성이 있지만 기술이 부족합니다. 어떤 작품은 자극적이고 특이한 설정을 밀어붙이려다가 비현실적으로 변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평범한 사람이 나오는 평범한 이야기입니다. 아내와 딸이 죽어서 복수하는 작품을 몇 번째 보는지 모르겠네요.
[내 이름을 알려줘]에서는 2화에 걸쳐서 아내와 딸을 길고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디테일은 좋지요. 저는 이 문장이 인상에 남았습니다.
가족들과 지중해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안방의 이불이 연한 옥빛 바다색으로 바뀌었다. (이하 생략)
하지만 딸의 묘사는 자세하긴 해도, 피상적입니다. 모범적이었는데 사소한 일탈을 했다는 것 빼고는 딸에게 개성은 없습니다. 하물며 딸이 어떤 연예인의 팬이었는지도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클리셰만 남아있죠. 공감은 가지만, 끌리진 않습니다. 딸과 아내는 결국 주인공의 동기로 소모되고 끝납니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경 역시 같이 살다가 나가는 부분을 빼면 개성이 부족합니다. 저는 이런 캐릭터를 몇 번이고 봤습니다. 셋 다 여자지만, 결국 복수하는 건 남자인 이야기도요. 자세하지만 전형적이죠. 여기서 마치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겠습니다.
태그에는 있지만, 하드보일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사립 탐정이 나오는 그 장르가 아니라, 문체로 봐도 그렇습니다. 헤밍웨이나 대싯해밋처럼 읽기 좋은 단문이긴 합니다. 비유나 미사여구도 뭐 레이먼드 챈들러는 애용하죠. 그런데 주인공이 판단하거나, 감정을 직접 말해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당장 앞의 인용구 후에는…
아내는 낭만적이었다. (중략) 고아였던 경수에게 딸은 세상에 대한 경외감을 갖게 한 존재였다. (중략) 딸은 반항했다. (중략) 아내는 속상해했다. (중략) 가족을 잃은 사람이 처음으로 하는 일은 모든 것을 자기 탓이라고 자책하는 것이다.
하드보일드 문체라면 보여주기만 하고 설명하진 않을 겁니다. 저는 직접 말해주는 부분마다 오히려 몰입감이 떨어졌습니다. 감정을 과장하는듯 보여서요. 슬프지만 슬프다고 말하지 않는 주인공이 독자를 울게 하죠. 경수가 어떻게 되었는지 보여주기만 해도 독자들은 예상할 수 있을 겁니다. 경수가 이해할 수 없는 심리 상태를 가진 것도 아니었고요.
전형성과 말해주기가 겹쳐졌습니다. 여기서 예상되는 효과는 독자를 끌어당기지 못하는 것이죠. “그래서 뭐?” 안타까운 죽음이긴 하지만,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지요. 범인도 잡혔는데요.
남은 방법은 처벌받지 않는 가해자에 대한 분노입니다. 사회고발이죠. 복수의 감정이 독자를 끌어당길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역시 ‘사실적’이고 ‘있을 법한’ 이야기에서 치명적인 문제에 부딪힙니다. 고증에 오류가 있다는 거죠.
공탁이라던가 여러 점이 자세히 나와 있는 걸 보면, 조사를 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유족을 만나 사과하거나 합의를 시도하지 않은 건 그렇다고 치고요. 형량이 이상해서 자료를 다시 확인해보았습니다. 뺑소니로 인한 사망사고는 특정 범죄 ‘가중처벌’등에 대한 법률에 따라 “5년 이상의 징역이나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있습니다. 맥락을 보면 아내와 딸을 병원에 데려간다던가 구호조치를 시행하지도 않았고요. 차를 버려서 은폐를 시도했습니다. 자수하지도 않았습니다. CCTV증거가 있으니 자백에 의한 유죄 협상의 가능성도 적지요. 공탁금 액수가 매우 크긴 하지만, 3년의 형량은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더 큰 처벌이 내려졌을 겁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독자에게는 법원을 비판하는 주인공의 동기는 물론이고, 작품의 신뢰도가 낮아지겠죠. 법을 모르는 독자는 사실로 오해할 수도 있고요. 현실 사회를 비판하는 요소가 있는 작품이니만큼 사실을 토대로 해야할 것입니다. 한국 사회는 부조리합니다. 하지만 법관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서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법원을 단순히 “가해자의 인권만 생각하는 악당”으로 만드는 건 나태한 클리셰이기도 하지만, 사실과도 다릅니다.
이 작품의 핵심은 어쩌면 복수극에 있을지 모릅니다. 앞으로 다른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참신한 소재들이 나올까요? 적어도 프롤로그에는 없습니다.프롤로그와 1화는 독자가 이 소설을 읽을지를 결정합니다. 독자가 어떤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을까요.
[마지막으로 작가님께]
끌리는 도입부를 써주세요. 제가 요즘 프롤로그들을 읽으면서 작가님들께 매번 드리는 말입니다. 이 작품에도 좋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아내가 여행을 추억하는 부분, 아내의 여동생이 집을 나가는 부분은 좋았습니다. 그런 장점들을 더 키워보세요.
또 한 가지, 지금 프롤로그에는 가해자가 나와 있지 않습니다. 갈등 없이 과거 회상만 이어지는 도입부라 늘어지는 면이 있습니다. 가해자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자세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구체적으로 가해자와 주인공이 부딪히는 장면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대충 예시를 만들면 주인공에게는 화를 냈으면서, 법원에서는 참회하는 척을 하는 이중성 같은 것이요. 물론 이건 제가 만든 예시입니다. 작가님이 더 좋은 방법을 찾아내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