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를 빼고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웃었습니다. 아이티기업의 광고를 보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수 많은 기술들과 용어들이 등장합니다. 에스에프라서? 그리고 설명이 계속 나옵니다. 작가님이 어떻게 조사를 했는지 상상하게 될 정도로요.
문제는 이 광고가 1인칭 시점과 모순을 일으킵니다. 주인공은 왜 우리에게 용어를 열심히 설명하는 걸까요? 심지어 급박한 상황에서요. 그래서 웃게 되는 겁니다. 딱 한 부분만 꼽아보겠습니다.
시리가 경고음을 냈다. 내 심장박동이 갑자기 빨라졌기 때문이다. 나는 차가 지나가버린 반대편 차선을 넋이 나간듯 계속 돌아보았다. 시리가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고 계속 말을 걸었다. 메뉴얼에 따라 나를 진정시키고 비상상황이 지속되면 나를 응급실에 데려가려는 의도다. 나는 퍼스널 바의 오프 스위치를 길게 눌러 시리의 기능을 강제 정지 시켰다. (강조는 인용자)
주인공이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요. 이 주인공에게는 이 기술이 당연한 일상입니다. 설명이 필요 없다는 뜻이죠. 예를 들어 현대인인 저는 지금 “나는 키보드keyboard를 두드렸다. 각 버튼은 글자들에 대응된다. 그리고 키보드는 내가 친 글자들을 컴퓨터로 보내 문장으로 조합해낸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글을 쓰고 있죠. 예를 들기 위해 다음과 같이 바꿔보았습니다.
시리가 경고음을 냈다. ‘심장박동수 높음’ 나는 차가 지나가버린 반대편 차선을 넋이 나간듯 계속 돌아보았다. 시리가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고 계속 말을 걸었다. “응급실에 연락할까요?” 나는 퍼스널 바의 오프 스위치를 길게 눌렀다. 조용해졌다. (인용자가 수정한 부분에 주의해주시죠.)
이러면 이야기가 매끄럽고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나요? 작품 전체를 이런 관점으로 살펴보시면 좋겠네요. 그러면 아이티 광고 같은 느낌이 나지 않을 겁니다.
이제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안 읽으신 분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골자는 아내의 부정을 의심하는 남편의 이야기입니다. 남편의 캐릭터는 “부정망상이 있다. 아내가 5년 전에 우울증으로 죽었다.”가 전부입니다. 딱히 깊이 있게 묘사되진 않고요. 교과서의 이론을 사람으로 만들어 놓은 느낌입니다.
탐정은 없지만 미스터리로서 구조는 있습니다. 망상에 빠져 아내를 죽음으로 몰고 간 범죄자의 시점에서 심리를 묘사하고 있죠. 도서 미스터리적인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미스터리는 몇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1) 첫 번째 아내의 죽음
2) 아내의 부정을 목격한다.
3) 영상을 보면 아무 문제가 없다.
4) 첫 아내가 죽은 이유도 똑같은 의심 때문이었다.
여기서 (1)번이 설명되죠. 그리고 남편이 망상에 빠져 있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5) 다른 남자와 있는 아내를 목격하고 죽인다
6) 알고 보니 아내는 로봇이었고, 똑같은 모델이 많았다.
여기서 (2) (5)번을 이해하게 되죠. 진짜로? 부정을 목격했던 겁니다. 그냥 똑같이 생긴 모델일 뿐이었지만요.
마지막의 반전은 알고 나면 별 것 아니다 싶지만, 가벼운 단편으로서는 재미있습니다. 제목도 이해가 가고요. 반복해서 나온 인공지능이라는 주제와 일관성이 있기도 합니다. 처음에 “보이지도 잡을 수도 없는 대상을 실체로 여기고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는 대사와 연결되어서 묘한 기분을 주죠.
다만 안타까운 점은 첫 아내에 대한 묘사입니다. 아내는 우울증을 겪었으며 자기는 새장 속에 갇혀 있지 않다는 유언만 남깁니다. 남편은 죄책감을 느끼고, 새 아내를 의심하면서 갈등하지만… 딱 그 정도입니다. 제가 다른 리뷰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죽음과 자살은 가볍게 다뤄지는 감이 있습니다. 주인공의 부정망상도 흥미로운 정신 질환 소재로 끝나기 쉽죠. 독자는 이입하지 말아야하는 주인공에게 이입하고 동정할지도 모릅니다. 피해자는 대상화되고, 가해자의 범죄는 가볍게 묘사됩니다. 이건 좋지 않죠.
제가 이 작품을 고쳐쓴다면 기술을 잘 모르는 왓슨역을 등장시킬 겁니다. 자연스럽게 기술들을 설명할 수 있으니까요. 동시에 남편에게 이입하는 걸 막고, 외부인의 시점으로 남편을 묘사하기도 쉽습니다. 최후에 그 왓슨 역이 주인공을 검거하고 범죄를 폭로하는 구성을 써보고 싶네요.
제 리뷰는 여기까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더 나은 형식으로 돌아온 작품을 기대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