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watches the watchmen
누가 왓치맨을 감시하는가
-왓치맨(Watchmen) 中-
‘나’는 살육 당한 아버지와 도공들 사이에서 유일 하게 살아 남았습니다. 아니, ‘그들’이 유일하게 살려 둔 것이지요. 이런 내 앞에 일섬 (一閃)이 나타납니다. 일섬은 제안 합니다. ‘외뢰해라’
정의에 대해 묻고 선과 악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품들은 무협 외에도 찾을 수 있습니다. 이제는 고전으로 불리는 그래픽 노블 <왓치맨>부터 가깝게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시빌워>를 꼽을 수도 있죠. 이런 작품들의 공통된 화두는 ‘무엇이 정의냐’ 입니다. 무협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누가 정파냐 사파냐’ 겠지요.
근대사회에서 정의는 도덕, 양심 혹은 법이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법은 보호장치이자 감시망입니다. 하지만 그런 감시망에 대한 논의는 언제나 존재 했습니다. <왓치맨> 속 그 유명한 대사인 ‘누가 왓치맨을 감시하는가’ 는 그렇기에 언제나 유의미한 질문입니다. 우리는 끊임 없이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던짐으로 악이 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내가 선이라고 확신 하지 않는 것, 선은 여기에 존재합니다.
<은원(恩怨)>은 일섬의 입을 빌려 이 질문을 노골적으로 던지고 있습니다. ‘정파와 사파란 무엇이냐?’, ‘과연, 그렇다면 네 아비는 정파이냐 사파이냐?’ 이에 나는 ‘정파’라고 대답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그런 질문을 던지는 일섬의 존재 조차도 모르지요.
일섬과 맞서는 고수들은 스스로를 ‘정파’라 말하기를 망설이지 않습니다. 일섬은 묻습니다. ‘그를 해하라 의뢰한 이는 당신들이지 않느냐’. 이에 그들도 대답하지 못합니다. ‘복잡한 실’들과 ‘은원의 꼬임’을 목도 하며 일섬 역시 스스로 묻습니다. 무엇이 정과 사를 구별하는지는 그도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묻습니다. 정작 그 역시 의뢰를 받아 복수를 대행 했지만요. <은원(恩怨)>이 그려낸 무림 속 매력은 이 질문에 있습니다.
호러로 정평이 난 고수가 휘두르는 무림의 맛을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