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있습니다.
게으른 감상입니다.
<사흘 후에 뵙겠습니다>는 분명 독특한 작품은 아닙니다. 고통받는 아이에게 악마가 찾아와 힘을 주는 내용은 그렇게까지 독창적이지는 않습니다. 설정도 그렇습니다. 기독교 기반의 지옥에 충실한 악마입니다. 관료적인 모습이 추가된 지옥과 점잖고 인간적으로 보이는 악마지만 그렇게까지 드문 설정은 아닙니다. 어쨌거나 지옥과 악마는 역사 이전부터 인류와 함께 했으니까요.
그렇지만 저는 이 소설을 끝까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바로 혜지의 부모 때문이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들은 혜지도 아니고 악마도 아니고 부모입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리에서 한 가지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왜 부모는 혜지를 달래지 않았을까?’
악마는 혜지에게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부모라는 작자들을 지옥으로 끌고가게 할지, 아니면 이대로 내버려 둘 지 말이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선택은 힘을 가져야 할 수 있습니다.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할 수 있는 범위와 정도도 달라지죠. 악마는 혜지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심지어 선택의 범주가 목숨과 지옥 직행권이라면 부모에게 있어서 혜지는 지구 상의 어떤 사람보다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장에라도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며 혜지를 달래주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부모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악마가 사라지자마자 합을 맞춰–평소에는 그렇게 싸우면서 말이죠– 윽박지르다 다시 나타난 악마에게 제지를 당하고 나서야 입을 다뭅니다.
다음날, 아버지는 자고 있는 혜지를 깨워 낯선 교회로 끌고 가서 물벼락을 맞게 해서 감기에 걸리게 합니다. 어머니는 대충 적당히 좋은 소리만 하다가 아픈 아이를 두고 친구들이랑 놀러 갑니다. 밤에는 혜지가 듣는 걸 뻔히 알면서도 부부싸움을 합니다. 최소한 나가서 싸울 생각도 못 합니다. 악역이라고 해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고작 사흘만 착하게 굴면 생존율이 그나마 오를텐데 그 잠깐도 견디질 못합니다.
약속한 사흘이 가까워오자 부모는 혜지를 부르는 장면을 봐서야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부모가 무언가 이상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자식은 결국 부모를 버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요. 이상한 믿음이지만 차근차근 생각해보니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혜지의 부모는 혜지가 독립적인 자아를 가진 개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혜지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일부가 결국에는 자신을 버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혜지를 자기 자아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한 거죠. 혜지가 자기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시키는 일을 거부하지도 않았으니까요.
혜지는 열두 살이고 학대가 오 년이 넘었다는 걸 생각하면 더 명확해집니다. 미운 다섯 살, 일곱 살이라는 소리가 있는 것처럼 아이들이 다섯 살이 넘으면 점점 자기 주장이 강해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혜지의 부모는 그 시기의 혜지를 폭력과 학대로 억눌렀습니다. 그러니 마치 인형처럼 보였겠죠. 하지만 억누른다고 해도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자신을 선택을 존중해주고 힘을 주는 존재가 나타나자 억눌렸던 자아가 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마침 사춘기가 시작될 열 두 살이기도 하고요.
혜지가 아버지의 강요를 거부하고 뺨을 맞는 순간이 바로 분기점입니다. 부모의 자아를 끊고 독립하는 순간이었죠. 이미 한참 전에 일어났어야 했지만 열 두 살이 되고 나서야 벌어진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혜지는 동시에 힘이 있기에 부모를 깔보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부모를 혐오했고 이번에는 자신을 혐오하게 되었습니다.
혜지는 부모처럼 누군가에게 쏟아내기 보다는 고요한 어둠 속에서 자신을 위한 고민에 빠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악마가 부모의 입을 없애면서 혜지를 압박하는 모든 두려움은 사라지게 되었고 온전히 자기자신을 위한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혜지가 부모 대신 자신이 악마가 되기로 마음먹은 건 그저 부모에 대한 잔인한 복수나 삶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부모와 같은 인간이 되기 싫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악마가 아무리 인간처럼 말하고 행동한다고 해도 악마가 인간이 될 수 없으니까요.
가족의 비극은 상대방과 너무 가깝다는데 있습니다. 특히 부모 자식 사이는 지나치게 가까워지기 쉬운 존재입니다. 자신의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어도 뒤끝이 거의 없는 상대가 세상에 얼마나 될까요. 어린 아이는 부모가 쏟아내는 감정을 거부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받아들이고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한 번 가정폭력이 일어나면 쉽게 반복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혜지의 부모는 혜지가 없었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거꾸로 혜지에게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지 않으면 자신들의 현실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이 짐어져야 할 상처마저 아이에게 떠넘겼고 마침내 혜지는 악마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동시에 부모처럼 누군가에게 종속되고 의존하는 삶 대신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가자는 결심으로 보였습니다.
PS. 리뷰를 적을 때마다 장황하게 적게 되네요. 생각을 뻗어나가는 대로 적다 보니 그렇게 되는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