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무지갯빛 보석을 찾아서”의 1부 리뷰입니다.
아기자기한 세계관, 흥미로운 모험기, 와장창창 정치극
친구들과의 대화록(링크) 작성을 마친 후에, 공지하신 1부 후기를 보고선 “아!” 했던 내용이 있어, 그것으로 시작해 볼까 합니다.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땐, 제 머릿속에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복잡한 생각은 다 떨쳐 버리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어요. 타임리프물을 연재하면서 과도하게 꼬인 플롯에 시달렸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매일 매일 새로운 곳을 다니면서 신기한 일을 경험하는 그런 여행기를 쓰려고 했어요. 처음에는.
그런데 쓰다보니 결국 현실이 발목을 잡더라고요. 저도 마찬가지고, 모두가 떠나고 싶지만 해야 할 일들, 지켜야 할 자리들 때문에 머물러 있잖아요. 아르고핀처럼 떠나고 싶지만, 인제핀처럼 어딘가에 묶여 있는 거죠.
아르고핀이 탈출을 감행하는 와중에 왕국의 운명이 위태로와졌어요. 아버지도, 언니도 위험해요. 이런 상황에서 혼자 좋자고 떠나는 게 용납이 되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왜 왕국을 이렇게 만들었지? 하고 자책하기도 하고요. ㅠㅠ)
이 글은 크게 세계관을 설명하는 설명문과, 아르고핀 공주 일행의 모험기, 그리고 남겨진 자들의 정치극으로 나뉩니다.
3얼, 그러니까 저와 제 친구들이 소설을 읽으면서 공통적으로 느꼈던 점인데요. 세계관, 모험기는 꽤 재밌습니다. 저희들끼리 이러쿵 저러쿵 궁예질을 해봤는데, “이건 작가가 즐겁게 작성한 티가 난다.”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치극은 “필요하니까 어쩔 수 없이 적어 본다” 요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정치, 군사에 대한 내용에선 크게 뚫린 구멍들이 많았어요. 이런 장르는 치밀한 맛으로 보는데, 그런 부분을 작가님이 재밌어서, 즐기면서 쓴다는 느낌은 잘 안들었습니다. 구멍이 많은 만큼, 급했나? 준비가 부족했나? 하는 전개도 많았고요.
저는 이 글이 더 재밌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1부 후기에 남겨진 작가님의 글을 보니, 스스로도 그 방법을 알고 계셨다고 생각합니다. 올바른 질문은 하셨으니까요. 아마 스스로 질문에 질문을 이어나간 끝자락이 이것이겠지요. “이런 상황에서 혼자 좋자고 떠나는 게 용납이 되나?” 여기서 작가님은 “용납되지 않는다”를 선택하시고 세계의 안정에 힘쓰셨습니다. 이러한 윤리적인(?) 선택은 모험기가 주는 근본적인 재미를 깎아먹는 일이 됐지요. 모험기가 주는 근본적인 재미라! 그게 뭘까요? 제 친구한텐 이런 의미였습니다.
이: 으어어. 원래 모험기는 그렇게 파바박 달리는 맛인데. 그렇잖아. 심바가 정글로 도망가서 뒤돌아봤냐? 티몬, 품바랑 하쿠나 마타타 하면서 벌레나 처먹었지. 사라비나 날라가 무슨 고생했을지 신경도 안썼다고.
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긴 정글로 가서 친구 사귀고 렙업이나 했지.
이 말에 저도 꽤 공감을 합니다. 저는 애초에 “모험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이다”고 생각합니다. 모험자 자기 자신만을 위한 거지요. 가까운 사람들을 걱정시키고, 때로는 짊어져야 할 짐을 버립니다. 그렇게 해서 가벼워진 몸으로 달려나갑니다. 그 속도감으로 세상과 부딪히며 나오는 탄성. 모험기는 그걸 엿보는 재미지요. 모험이라는 단어 자체가 위험을 무릅쓴다는 뜻이니까, 정의와 맞닿은 해석이라 생각합니다.
작가님도 과학자니까, 좀 더 많이 들으셨을 법한 이야길 옮겨 보겠습니다. 제가 학부생 시절에 열통계 강의를 듣다가 담당 교수님이 잠 깨라고 지나가는 말로 해주신 얘깁니다. 사연 자체는 1세대~1.5세대 과학자 분들이 많이 겪었던 고민인데요, 첫마디가 주는 메시지가 강렬했습니다. 그건 바로 이겁니다.
“이기적으로 살아라. 여러분 이기적으로 사셔야 해요.”
젊었던 시절의 교수님은 학문에 뜻이 있었고, 잘할 자신도 있어서 유학길에 오르고 싶었답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미국보단 일본에 가실 계획이었죠. 그런데, 집안 어르신과 동생들이 장손인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어서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어려운 형편에서 모두 힘써 등록금을 냈으니까요. 쉬운 결정이 아니었겠지요. 졸업하고 취업하면 큰 돈을 버는데, 유학은 오히려 돈이 드는데다 미래는 어찌 될 지 모르잖아요. 설령 나중에 잘 된다 쳐도, 당장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꽤 오랜 시간 동안 고민을 하셨답니다. 그리고 장고 끝에 내린 결론이 이 말이었다고 합니다. “이기적으로 살자.” 그리고 나름의 모험을 시작하셨지요. 결정한 뒤엔,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나간 겁니다.
젊은 시절 교수님이 좀 더 효자였다면, 이타적이었다면 모험보다 안정을 선택하고 다른 길을 걸어가셨겠지요. 그것도 멋진 삶입니다만, 모험기로 만들기엔 어려웠을 겁니다. 그러나 그 교수님은 자신만을 위한 선택을 했습니다. 가족들을 고생시켰습니다. 일본어도 할 줄 모르면서 일본에 가서 연구를 시작했고, 여러 난관을 헤쳐 결국에는 교수직을 얻으셨지요. 이것은 모험기입니다.
작품 얘기로 돌아오지요! 쿤이 그랬지요! 얻어낼 해답은 던지는 질문에 달려있다. 작가님이 던졌던 질문은 멋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혼자 좋자고 떠나는 게 용납이 되나?” 저는 위의 질문을 “(휙 떠나면 재밌을 텐데) 이런 상황에서 혼자 좋자고 떠나는 게 용납이 되나?”로 읽었거든요. 그리고 지금 저는 이 질문에 “당연히 혼자 좋자고 떠났어야 한다!”라고 답하려 합니다. 모험기란 그 맛으로 보는 거니까요! 그 지점에서 더 안타까워지는 건데요. 작가님은 시작하기 전부터 어떻게 하면 모험기가 재밌을지 아셨습니다. 실제로 작가님은 이 소설에서 세계관을 아기자기하게 잘 꾸미셨고, 1부에 포함된 모험기는 흥미로웠어요. 잘 해낸 분이니까, 많은 걸 가른 저 선택 하나에 “아!”하며 탄식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저 질문을 스스로에게 처음 하셨을 때, 그냥 달린다는 선택만, 오로지 그 선택만 하셨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뒤돌아본다는 선택이 크게 아쉽습니다. 정치극은 이 세계관과 잘 어울리는 호흡도 아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얘기도 짧게 하지요. 정치극! 저는 세계관이 모험기와는 결이 잘 맞지만, 정치극과는 결이 안 맞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번에도 제 친구가 했던 말을 빌리자면, “디아블로3의 알록달록동산을 보는 것 같다”는 말이었습니다. 동화적인 배경과 사실적인 플레이어와의 부조화가 인상적인 맵이지요. 아마 해보셨거나, 해당 문서를 찾아보시면 무슨 뜻인지 금방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정치극이 좀 더 치밀해서 잘 섞었으면 나올 수 있는 길이 하나 보이긴 합니다. 잔혹동화 같은 느낌 말이지요. 정치극이 다소 부실한 지점은 여러 방면에서 참 아쉬움을 남기네요.
부수적으로 정치극과 딸려 나온 단점 중에는 외전의 존재인데, 저희 삼얼은 특정 회차부터는 반드시 외전 먼저 읽어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그 이후로는 정말 외전 먼저 읽고 본문을 읽었습니다. 그게 훨씬 수월하고 좋았어요. 그것에 대해서는 다른 리뷰에도 언급된 바가 있고, 3얼이 떠들어댄 대화록에도 있으니 더 말하진 않아도 될 거라 생각합니다.
아, 모험기로 봤을 때는 크게 아쉬운 점이 있긴 했는데요. 저는 이 소설에서 반드시! 무지갯빛 보석의 쓸모를 초반부에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아르고핀 공주가 이것을 그토록 원하는지 감정이입이 안 돼서 힘들었습니다. 사실 1부를 마치기 전에는 이유가 밝혀졌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 외엔 대개 큰 걸림 없이 잘 읽었습니다.
써놓고 보니 정치극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한 부분이 많은데요. 이는 세계관과 모험기 자체는 즐겁게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리뷰 제목도 긍정적인 형용사와 부정적인 형용사로 나뉘었지요. 긍정이 2니까, 아쉬움보다는 기대가 크다는 뜻입니다 핫핫. 2부에서는 우당탕탕 속도감 나는 모험기를 기대해 봅니다! 무지갯빛 보석을 찾아 가즈아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