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하는 이야기의 조각들 공모 공모채택

대상작품: 전신보 (작가: 이나경, 작품정보)
리뷰어: 주렁주렁, 18년 2월, 조회 131

0.

리뷰를 쓸까말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저는 이럴땐 해당 작품을 처음부터 다시 차근차근 읽어나가는 게 좋은데 이번에는 다시 읽지 않고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점으로만 리뷰를 써보려 합니다. 올리게 될지 안 올리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써 보면 알겠지요.

1.

[전신보]라는 제목만 봤을 때는 기담인 줄 알았어요. 읽어 나가면서 문득 두 가지가 떠오르더군요.

하나는 제가 중2때였던 것 같아요. 쉬는 시간에 뭘 했냐면, 당시 제가 좋아하던 가요 제목들을 죽 연결해서 말이 되는 글을 만들어 보는 거였어요. 노래 가사나 접속사, 조사 등 절대 들어가면 안 되고 오로지 노래 제목만 배치했는데 말이 되는 글. 돌이켜보면 엄청 즐거워하면서 이 노래 제목으로 해볼까 저 노래 제목으로 해볼까, 수업시간에도 하고 푹 빠져 있었어요. 그게 뭐라고 그렇게 즐거워했지? 모르겠어요. 단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학교에서 과제로 내줘서 쓰는 글이 아닌, 제가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쓴(만든) 글이었단 거. 저한테는 당시 노래 제목이 이야기의 씨앗이었던 것도 같아요.

다른 하나는 한국에 12권까지 나온 만화인 [페이블즈(FABLES) 디럭스 에디션] 입니다. 어느날 동화나라는 정체불명의 적의 공격을 받고 많은 사상자가 생겨나는 와중에 몇몇 캐릭터들 – 백설공주, 피노키오, 재크, 슬리핑 뷰티 등등 -이 동화 나라를 탈출해서 현실 뉴욕으로 도피를 해요. 동화 나라라니 동화 속 캐릭터만 있을 것 같지만 뒤로 갈수록 민담, 신화, 전설….이야기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각종 이야기속 캐릭터가 다 등장합니다. 굉장히 재밌어요. (하지만 출판사가 버티고 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볼 만화는 아니고요) 페이블즈에서 제일 인상깊었던 에피소드가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미녀, 신데렐라 셋의 모임이었어요. 이 셋은 한달에 한 번인가 만나서 식사를 하는데 왜냐, 다 같은 남자랑 결혼했기 때문입니다. 남자 이름은 “백마 탄 왕자(이게 극중 이름)”. 이 백마탄 왕자는 독사과를 먹은 백설을 구조해서 결혼하고 잘 살다가 백설의 동생이랑 바람이 나서 이혼, 그러다 또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구해서 결혼하고 잘 살다가 또 바람 피워서 이혼, 그러다 신데렐라랑 결혼 이혼, 그니까 동일한 왕자가 세 여자랑 결혼을 했던 겁니다. 그런데 이 백마 탄 왕자가 사기꾼이라거나 그런게 아니예요. 진짜로 사랑했어요. 백설이나 잠자는이나 신데렐라나 진정으로 백마 탄 왕자는 사랑했습니다. 단지 그게 일시적이었던 거죠.

세 사람은 같은 남자랑 결혼했다 이혼한 과거는 같지만 현재는 전혀 달라요. 가령 백설이나 잠자는 미녀는 태생이 왕족이고 공주였어요. 이혼을 했어도 비빌 친정이 있고 갖고 있는 재산이 많았기에 동화나라를 탈출할 때 챙겨나왔죠, 또 공주니까 교육도 꽤 받았고요. 하지만 신데렐라는 이혼을 했어도 돌아갈 친정이 없고 교육 수준도 높지 않아요. 신데렐라가 현재 뉴욕에서 괜찮은 직업을 갖기란 어려워요. 분명 어릴때 읽었던 동화에서는 셋 다 왕자를 만나 그후로도 영원히 행복한 왕비들이었는데, 현대 뉴욕으로 이들을 옮겨놓으니까 신데렐라가 가진 계급차가 확 드러나는 겁니다. 이 해석에 저는 굉장히 감탄했었어요. 이야기의 원형들을 가져와서 이렇게까지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전복시킬 수 있다는 점이요.

2.

앞서 말한 중학교때 노래 제목 이어붙이기를 돌이켜보면 그게 저한테는 일종의 모험이었고 신났고 또 어떤 원형, 어떤 씨앗으로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브릿지에서 종종 민담/동화 등을 변형한 이야기를 읽을때, 아 내가 그때 그렇게 신났던 것처럼 작가들도 신났으려나…작가들에게는 저 민담들이 이야기의 씨앗이었으려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끊이지않고 도전하는 소재라고 봐요. 그렇다고 성공하기 쉬운가? 그렇지는 않고요. 이야기의 원형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살아남은 거고 또 그 오랜 시간동안 무수히 많은 변형이 있었을텐데 그 안에서 특출나기란 쉽지 않죠. 언제든 그냥 원형을 보지 왜 변형을 봐야하나 질문이 튀어나올 수 있고요. 어려운 소재예요.

전신보는 동물들의 변신 이야기를 위해 초반 동물이 주인공이어도 이상하지 않은 우화나 민담을 가져와요. 시작은 낯익은 이야기인데 슬쩍 내용이 변합니다. 소설 속 캐릭터만 변신할 뿐 아니라 스토리도 변신하는 거죠. 또 한 두 캐릭터가 아니라 계속 여러 캐릭터들이 나왔다가 사라졌다가, 꼭 변신하는 것처럼 속도감있게 진퇴를 거듭합니다. 그럼 이게 성공적이었는가? 글쎄요, 저는 지금까지 30회차가 올라온 [전신보]를 그다지 성공적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3.

[전신보]의 배경은 가상 조선시대 같은데 전쟁 얘기가 나오는 걸 봐서 임진왜란 이후라고 대충 짐작을 했어요. 아닐 수도 있겠고요. 동물들의 우화로 시작하는 1화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공간적 주 배경은 산, 산과 가까운 마을 등인데 하나만 꼽는다면 산(숲)일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이 소설은 시종 주 배경이 우리가 상상하는 조선시대의 산, 정도로 흐릿하게 묘사됩니다. 집도 별반 다를 바 없고요. 사건이 발생하는 공간에 대한 묘사가 많이 비어있는 소설입니다. 그렇다고 캐릭터 묘사에 파고드는가? 그것도 아니고요. 캐릭터는 계속해서 등장했다 사라지고 이야기 속도는 아주 빨라서 마치 차를 타고 빠르게 이동할 때 창밖으로 풍경이 휙휙 뒤로 멀어지는 것처럼 공간과 캐릭터가 사라져요. 물거품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부유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그럼 무엇이 남는가. 이나경 작가님의 필력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럼 무엇이 이 소설의 동력인가. 작가님의 필력인 것 같습니다.

4.

아마 브릿지에서 필력이 제일 좋은 작가가 누구인가 하면 이나경 작가님이 절대 빠지지 않을 것 같아요. 이건 분명한 장점이자 작가 개인의 강점이죠. 하지만 [전신보]에서는 장점이라고 보이지 않습니다. 이상하더군요. 단편일 때 분명했던 장점이 왜 장편으로 오자 독서를 방해한단 느낌을 주는가, 게다가 이 소설은 옴니버스 형식이라 작가의 장점을 더 극대화시킬 수 있었을 것 같았는데 말이지요. 저는 [전신보]를 일종의 설정집이나 프리퀄로 봤습니다. 배경과 캐릭터는 비어있는데 이야기는 빨라서, 떡밥을 계속 던지기 때문에, 정신없이 따라갔어요. 그러다 저는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럼 이 도돌이표를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가, 작가의 필력이 좋은데 그럼 좋다고 해서 언제까지 계속 이런 서사를 따라가야 하는가. 저는 좀 회의적이었어요. 그리고 뭔가 작가한테 속고 있단 불편감 같은 것도 느꼈고요. 이 이야기를 계속해서 믿고 따라갈 신뢰가 쌓이지 않는 느낌이었어요.

5.

저는 [전신보]에 이런 당혹감을 느껴요. 이나경 작가님의 글은 문장이 굉장히 매끄럽게 이어지면서 리듬감을 자아내요. 이게 읽는이에게 감탄을 일으키고요. 기대감을 만들어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기대감이 큰 상태에서 글을 읽어나가게 되고 기대감이 충족되지 않으면 어떤 실망감이랄까, 배신감이랄까, 그런 감정이 미묘하게 생겨납니다. 단편일 땐 괜찮아요, 상대적으로 빨리 끝나니까 이 미묘함이 뭐지? 하다보면 이야기가 끝나 있어요.

읽기 시작할 때부터 기대치의 총량이 타 작가와는 다르기에 미진해 보이는 부분이 더 빨리 눈에 들어온다는 인상도 받습니다. 뭔가 더 잘할 수 있는데, 더 잘할 능력이 있는 작가인데, 만족스럽지가 않단 말이죠. 작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뽑아낼 소재를 아직 못 만난건지, 문장 구사를 위해 묘사나 서술을 혹시 줄이는건지, 읽고 난 뒤에 시원함이랄까 감정상의 고양이 느껴지지 않는 겁니다. 도대체 제가 이렇게 느끼는 원인, 즉 근본적인 이유를 고민를 해봐도 모르겠는 겁니다. 이게 아닌데, 뭔가 미진하다는 감정이 남아요. 더불어 이걸 해결 못하면 계속 발목을 잡을거란 판단도 들고요.

6.

그럼 이런 질문을 할 수 있겠지요. 주렁주렁 리뷰어의 이 리뷰는, 전신보나 이나경 작가가 이러저러했으면 좋겠다는 본인의 욕망을 투사한 것인가. 만약 리뷰어 본인의 욕망이라면 일기장에 적으면 될 걸, 굳이 리뷰라는 형태를 통해 표현되어야 하는가. 작가에게 전달되어야 하는가.

계속 제가 고민해봐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리뷰를 올릴까 말까 고민을 거듭한 것이겠고요.

7.

앞서 저는 전신보가 프리퀄 같다는 느낌이었다고 언급을 했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은 이 뒷이야기가 본론일 거라 보고요, 뒷 이야기가 꼭 나오기를 기대해봅니다.

덧.

각 제목만이라도 한자 병기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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