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 더 호라이즌/ 종족의 우상에 관하여 감상

대상작품: 오버 더 호라이즌 (작가: 이영도 출판, 작품정보)
리뷰어: 피클, 18년 2월, 조회 541

명품에 관한 흔한 상념이 잘 엮어 훌륭한 희극이 됐네요. 이야기의 구조는 간단합니다. 명기를 둘러싼 딜레마가 나열되고 그걸 보안관 조수 티르가 상식적인 관점으로 간단하게 해결해버리죠. 비틀린 교양에 관한 멸시는 항상 좋은 풍자 소재라고 생각하고 이 작품은 그걸 잘 증명해주는군요.

사람들은 흔히 무언가에 성격을 부여하곤 하죠. 좋은 악기나 잘 드는 필기구, 심지어 우리가 먹는 음식에까지 말이예요. 좀 크리피하지 않나요? 도구에야 그렇다고 쳐도 음식이나 술에게 인격적인 개성을 부여하고 그걸 먹어치운 다음 맛을 설명하는 데에 사용한다니. 일종의 상징적인 식인 행위라고 농담삼아 말하는 사람도 가끔 봤는데 말이죠. 이렇게 농담거리로 쓰일 정도로 우리들의 인격화 습성에는 우스운 면이 없잖아 있지만 그렇다고 아예 이해할 수 없는 건 또 아니예요. 사람인 이상 나무쪼가리나 철덩어리 보다는 같은 사람에게 더 친근감을 느끼는게 당여한 일이고 그렇다면 자주 사용하는 도구에게 이름을 붙여가며 사람 취급하는 것도 그 도구에 대한 애정 표현으로 여길 수 있죠. 그게 아니면 단순한 물체로 여기기에는 성능이 정말 뛰어나서 혹은 관리가 원체 까탈스러워서 그걸 조심히 다뤄야 할 목적으로 인격을 부여하는 경우도 있구요. 이 이야기의 소재인 바이올린의 경우에는 후자에 가깝겠네요. 나무와 현으로 만들어진 악기는 관리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그게 성능까지 좋고 그래서 값어치가 어마어마하다면 말이죠, 악기의 수명을 늘리기 위해서 뿐 아니라 그걸 다루는 사람의 정신적 재산적 안위를 위해서라도 인격을 부여해가며 마치 이게 나무토막이 아니라 사람인 것 처럼 대하는 게 좋을겁니다.

한마디로 이런 인격화는 정서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우리를 위해서 하는 겁니다. 다시말해 지극히 실용적인 비유라고요. 문제는 이게 단순한 비유란 걸 잊기 시작하는 데서 오는 겁니다. 악기의 혼이니 생명이니 하며 떠드는 것이야 얼마든지 하라죠. 그게 악기의 수명을 늘려주고 연주자가 악기를 좀 더 잘 다룰 수 있게 해주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런데 작중에서 악기의 혼과 생명은 그런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죠. 마치 그게 실재하는 것처럼 사용되고 그런 것처럼 구는 사람들이 널리고 널려서 심지어 악기살해자 같은 별명이 웃음거리가 아닌 상황까지 나옵니다.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습니까. 그러나 이런 광언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오직 티르 뿐인고로 작품 속 세계에서 이 헛소리가 중요한 사건의 시작이고 딜레마의 원인이 됩니다. 이해를 돕기위해 간략히 적자면 다음과 같아요. 마타피 교수는 아스레일 치퍼티라는 좋은 바이올린의 소유자입니다. 그는 어느 날 호라이즌이란 엘프로부터 악기를 연주하게 해달라는 편지를 받죠. 그는 아주 훌륭한 연주자고, 얼마나 훌륭한지 교수는 그가 이 악기를 연주하지 못 하게 하는 건 악기의 목적을 훼손하는 것과 다름 없다며 차마 거절하지 못 할 정도입니다. 문제는 그가 악기살해자로 불린다는 거예요. 호라이즌이 어떤 악기로 연주를 하면 그 뒤로 그 악기는 결코 예전과 같은 감동을 주지 못 하고(심지어 그 연주를 듣지도 못 한 사람에게마저) 따라서 악기로서의 생명은 끝나버린다는 거죠. 그래서 교수는 딜레마에 빠집니다. 악기를 내주자니 그건 악기의 생명을 끝내는 일이고 그렇다고 주지 않자니 그건 악기의 목적에 위배되는 일이라 마찬가지로 악기의 생명을 끝내는 일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 못 해서 마타피 교수는 술주정을 부리며 난동을 피우고, 그게 보안관의 주목을 끌며 이야기가 시작되죠.

여러분들은 이게 이해가 가나요? 악기살해자로 이름 날리는 연주자와 악기의 생명을 두고 끙끙거리는 전직 음악 교수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악기에 생명 따위가 어디 있어요! 그건 비유일 뿐이데. 그러나 이런 지적을 하는 사람은 음악에 일자무식인 우리의 보안관 조수 티르 뿐이군요. 이 돈키호테 풍 세계에서 돈키호테 풍 사건은 이런 연유로 점점 더 커지기만 합니다. 악기살해를 막기 위해서 자산가들이 물밀듯 밀려와 자기에게 바이올린을 팔라며 아우성이고 종국에는 바이올린을 탈취하려다 살인 사건까지 일어나죠. 이쯤하면 꿈에서 깰 법도 하건만 아무도 그러지 않네요. 서술자이자 주인공인 티르의 눈에 이 모든 사건은 이해불가능한 영역으로 묘사되고. 더불어 그 사건과 일말의 관계도 없는 우리들에게는 더없이 우스꽝스럽게 다가오죠. 음악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 사이에서야 악기에 이름을 붙이고 그걸 생물처럼 여기는게, 또 그런 행위를 존중해주는게 교양일지도 모르죠. 그러나 해당 영역 밖에서까지 그러면 비웃음 사기 딱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건전한 상식을 이해하는 사람이 너무 적었는지 티르는 마타피 교수에게 그깟 악기 그냥 연주하게 내버려두라고 설득하는 대신 간단하게 바이올린을 훔치기로 합니다. 그러면 악기의 생명이 어쩌구하는 소동을 끝내버릴 수 있을테니까요. 마을의 평화와 교수의 평온함을 위해 티르는 도둑질을 감행하고 사건은 일단락됩니다.

구름같이 몰려온 재산가들은 도둑맞은 바이올린을 찾아 도시로 떠나고 연주를 듣기위해 온 구경꾼들도 대부분 떠나가죠. 마을은 다시 고요해졌고 교수는 아끼던 악기를 도둑맞았다는 아쉬움과 그래도 악기의 생명을 지켰다는 안도감 사이에서 만감을 느끼긴 하지만 이전보다 훨씬 나아진 상태로 돌아오죠.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는 거 같지만 소식을 미쳐 듣지 못 한 호라이즌이 마을에 찾아오면서 여분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호라이즌이 미친 놈마냥 나라 여기저기를 들쑤시며 계속 연주하는 이유가 밝혀지죠. 음악을 통해서 지평선을 넘겠다나 뭐라나. 이 황당한 이유를 들은 보안관보는 지평선은 넘을 수 없으니까 지평선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건전한 충고를 합니다만, 그는 티르와 자신 사이에 있었던 옛일을 들먹이며 말을 들어먹지 않습니다. 지평선을 넘기 위해서라면 도덕이나 상식 따위는 내팽게 칠 수 있다는 주장과 함께요. 위의 악기 소동은 악기의 생명이란 비유를 실용적인 목적으로 쓰지 못 한, 그게 비유임을 잊은 돈키호테 무리들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를 보여주고 또 그에 대비되는 소박한 상식이 얼마나 편리한 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이는 호라이즌의 등장이라는 여분을 통해 정점을 찍습니다. 이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얼마나 대단한지 누구나 칭송해마지 않는 호라이즌이 마침내 등장해서 한다는게 지평선이란 단어의 뜻조차 제대로 파악 못 한 다니요.

사람들은 자주 사람이 아닌 것에 사람을 투영하죠. 그게 편리하니까요. 다른 비유도 마찬가지 입니다. 미적인 이유에서든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에서든 비유는 결국 인간이 자기 편하려고 만든 수단이며 그렇기 때문에 지극히 인간중심적입니다. 이를 망각하면 사람은 무언가가 있는 줄 착각하죠. 이 뒤에 저 너머에 우리의 상식과 평범한 도덕과 일상보다 더 크고 중요한 무언가가 있고 그걸 위해서라면 앞에 것들을 희생해도 되는 줄 압니다. 전혀 아니지만요. 이걸 제대로 알지못하면 이런 우스꽝스러운 사건이 생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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