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먼 나라에 한 사냥꾼이 살고 있었어요. 사냥꾼이기도 하고 왕이기도 했죠. 사냥꾼 나라의 왕은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이 세상 어떤 동물도 그의 총을 피할 수는 없었죠. 온 나라의 사냥꾼들은 사냥꾼 왕을 존경했습니다. 사냥꾼들은 온 세상을 돌며 희귀한 동물들을 사냥해 왕에게 바쳤습니다. 금은보화와 산해진미도 바쳤죠. 하지만 사냥꾼 왕은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사냥꾼들은 왕을 위해 거대한 집을 짓기로 하였습니다. 하루 종일 걸어도 끝에서 끝까지 갈 수 없는 거대한 집이었죠.
집 남쪽에는 너른 사냥터도 있었습니다. 사냥꾼은 매일 집에서 나와 사냥을 했지만 금방 흥미를 잃었습니다. 그 어떤 동물이라도 총 한 방에 잡을 수 있었거든요. 사냥꾼은 오른손으로도 쏴 보고, 왼손으로도 쏴 보고, 발가락으로도 쏴 보고, 눈을 감고도 쏴 보았지만 동물들은 총알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짜증이 난 사냥꾼이 그냥 총을 집어 던지자 그 바람에 발사된 총알에 동물들이 쓰러졌죠. 그 어떤 동물도 사냥꾼의 흥미를 끌지 못했습니다. 그 곰이 나타나기 전까지는요.
어느 날 숲에 나타난 곰은 놀랍게도 사냥꾼의 총알을 피했습니다. 깜짝 놀란 사냥꾼은 재빨리 다시 총알을 장전하고 방아쇠를 당겼지만 총알은 아슬아슬하게 곰의 겨드랑이 사이를 지났어요. 사냥꾼은 하루 종일 곰을 쫓아다니며 총을 쏘아댔지만 곰을 잡지 못했습니다. 어둑어둑 해가 기울어가자 사냥꾼은 덜컥 겁이 났습니다. 밤이 되고 곰을 놓치고 나면 다시는 이렇게 즐거운 사냥을 하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사냥꾼은 곰에게 소리쳤어요.
“이봐! 제발 도망가지마! 내일 또 내 앞에 나타난다면 뭐든지 해 줄께!”
그러자 곰이 멈춰섰습니다. 곰은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내밀며 소리쳤어요.
“좋아! 대신 조건이 있다. 이 숲에서는 앞으로 다시는 다른 동물을 사냥하지마. 너도, 다른 사냥꾼도. 그렇게 약속한다면 내일 딱 하루 더 네 앞에 나타나 주지!”
사실 그 곰은 동물들의 신이었습니다. 너무 많은 동물들이 사냥꾼들에게 죽어 그 영혼들이 신에게 몰려가 하소연을 했거든요. 신은 인간이 너무 많은 동물들을 사냥하지 못하게 하도록 이 세상에 곰의 모습을 빌어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알았어! 어차피 사냥따위 지겨워 지던 참이었어! 그런데, 문제가 있다. 다른 동물들을 사냥하지 않아도 너는 사냥하고 싶은데! 어떻게 다른 곰들과 너를 구분하지?”
“걱정하지마. 앞으로 온 몸의 털을 금빛으로 칠하고 네 앞에 나타날 테니.”
사냥꾼은 곰과 약속했습니다. 다음 날, 집을 나온 사냥꾼은 남쪽으로 1km를 걸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곳에는 온 몸을 금빛으로 칠한 곰이 있었죠. 사냥꾼은 신중하게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탕! 명중했어요! 하지만 곰은 풀썩 쓰러지는가 싶더니 벌떡 일어나 동쪽으로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
“거기 서! 맞았잖아! 맞았다고!”
“흥! 빗맞았어! 빗맞았다고!”
곰은 동쪽으로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 허둥지둥 사냥꾼이 쫓아갔지만 잡지 못했어요. 동쪽으로 1km를 쫓아갔지만 곰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고 사냥꾼은 허탈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습니다. 날이 어두웠지만 상관없었어요. 북쪽으로만 가면 끝도 없이 펼쳐진 자신의 집에 도착할 수 있으니까요.
북쪽으로 1km를 걷자 과연 사냥꾼의 집이 나타났습니다. 사냥꾼의 집은 동쪽으로도, 서쪽으로도 끝없이 이어져 있었죠. 집에 들어서려는 순간, 멀리 숲 어딘가에서 곰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앞으로 이 숲에서는 금빛 곰만 사냥해야해! 약속을 지키면 가끔 네 앞에 나타나 주지. 어디 나를 잡을 수 있나 시도해 보라고!”
“알았어! 꼭 나타나야 해!”
사냥꾼의 입에 그제야 미소가 번졌습니다. 사냥꾼은 신이 나서 집에 들어갔습니다. 다음 날, 남쪽 숲에서는 금빛 곰 이외의 어떤 동물도 사냥하지 말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동물들은 적어도 그 숲에서만큼은 사냥꾼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 편히 쉴 수 있게 되었죠.
그러니, 곰의 색깔은 금빛이겠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