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문도’에 숨겨진 누군가의 비밀 감상

대상작품: 엘 문도 (작가: 장아미, 작품정보)
리뷰어: 노말시티, 18년 1월, 조회 79

장아미님의 글은 언제나 차분하고 안정적입니다. 그런 장아미님이 여고생 주인공이 다른 세계로 모험을 떠나는 판타지를 쓰셨네요. 재미있겠다. 제가 이 글을 클릭해 읽기 전의 상상이었습니다. 평소와는 다른 작가님의 글을 읽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었죠. 읽고 난 감상은, 정말 작가님 다운 그것도 가장 사랑스러운 모습의 글이네요.

이 글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집니다. 주인공인 나래가 현실 세계에서 겪는 일들과 거울 속 세계인 ‘엘 문도’에서 겪는 일이지요. 전자는 다른 글들과 분위기가 비슷하지만, 엘 문도에서의 모험은 온갖 상상과 신비, 동화같은 모험과 신화같은 웅장함이 어우러진 멋진 판타지예요. 하지만 제가 가장 좋았던 부분은 ‘제가 본능적으로 끌리는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작가님의 말처럼 사랑스러운 요소들이 글 곳곳에 가득한 점이었습니다.

엘 문도 부분만 따로 떼어 읽어도 재밌는 글이지만, 이 엘 문도는 현실 세계의 거울상이라는 점 때문에 이 환상의 세계가 현실 세계의 무언가를 반영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되고, 그것이 흥미로움을 더합니다. 엘 문도의 등장 인물들이 현실 세계 중 누구의 거울상일까를 상상해 보는 재미가 있는 거죠.

현실 세계에서, 나래는 아빠를 일찍 잃은 아이입니다.

내가 기억하는 아빠는, 엄마의 잦은 첨언과 부연으로 미화된 거짓 추억에 불과한 건 아닐까. 내게 아빠라는 사람이 정말로 존재하기는 했을까.

아빠의 상실을 견뎌내기 위해 일부러 아빠를 떠올리지 않으려 한 탓에, 나래는 아빠에 대한 기억이 희미합니다. 남아 있는 건 엄마가 말해주는 아빠의 모습뿐이죠. 나래에게 아빠는 엄마를 통해서만 존재합니다. 엄마가 아빠를 잊으면 나래도 아빠를 잃어버리게 되는 거죠.

그런 엄마에게, 엄마를 오랫 동안 지켜보던 다른 남자가 있습니다. 아빠의 친구죠. 나래는 당연히 고민합니다.

내 마음 속에서는 아직까지 엄마도 이제 자기 삶을 살아야지! 누군가 외치고 나면, 그래도 어떻게 아빠를 잊을 수 있어, 다른 누군가가 울분에 차 고함을 지르곤 했다. 홀로 남은 엄마가 안쓰러워 속이 쓰리다가도 순식간에 미워져 꼴도 보기 싫어졌다.

엄마의 행복을 비는 마음과, 엄마가 아빠를 잊어버리면 자신도 아빠를 놓치고 말 거라는 불안감에 나래는 시달립니다. 나래가 엘 문도를 여행하는 이유는 그래서, 엄마를 거치지 않은 자신만의 아빠를 갖기 위한 여행입니다.

나는 여전히 그들의 러브스토리를 듣고 싶었다. 엄마가 아닌 아빠의 기억으로 그들의 과거를 재건하고 싶었다.

나는 아빠가 그리웠다. 아무도 몰래,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 남아 있을 그의 자취를 찾아 나서고 싶었다.

그래서 제게, 엘 문도의 여행은 과연 연금술사 아리, 마법사 다카, 의문의 남자 요한, 아리의 아빠 순, 그의 조수 할로, 그리고 많은 다른 등장인물 중 누가 엄마이고 아빠일까를 상상해 보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습니다. 또, 누가 나래의 거울상인지도요.

하지만 그 관계는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더군요. 엘 문도는 나래, 엄마, 아빠, 아빠의 친구 정현철 씨의 거울상이기도 하지만, 나래, 친구인 유나, 그리고 놀이터에서 만난 소년의 거울상이기도 합니다. 제 나름대로 상상한 결론이 있기는 하지만 굳이 여기에 쓰진 않으려구요. 아마, 읽는 사람마다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쨌든 엘 문도를 여행하고 돌아온 나래는 ‘여느 날과 같지 않은 오후’를 맞이합니다.

지금 막 긴 낮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그와 나, 우리를 둘러싼 이 세상에 그 어떤 특별한 사건도 벌어지지 않았다는 듯.

안녕, 누군지 모를 당신. 그럼 지금부터 저와 함께 영원히 끝나지 않을 여행을 떠나볼까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나래는 달라졌습니다. 아마 자신만의 ‘아빠’를 갖게 된 거겠죠. 그리고 나래는 엄마가 엄마의 행복을 찾아 메리 셜리 호를 타고 떠날 수 있도록 놓아줄 용기를 얻게 됩니다.

그 용기는 또 다른 세계, ‘엘 문도’에서 얻었습니다. 나래의 상상으로 만들어 낸 세계, 하지만 현실보다도 더 단단한 그 상상의 세계가 나래에게 아빠의 기억을 쥐어 줍니다. 그리고, 미래의 누군가에 대한 설레임도요. 나래가 찾아낸 수수께끼의 원고 ‘엘 문도’. 아빠의 유작이라고 생각했던 그 원고는 사실 미래의 나래가 쓴 원고가 아닐까요.

감상을 쓰면서 몇 번이나 이야기 속의 문장을 가져왔어요. 그러고 싶을 정도로 글 속에 멋진 문장들이 가득합니다.

‘이 소설을 다 읽은 다음에는 당신은 아마도 저라는 사람에 대해, 하나 이상의 비밀을 알게 됐을 거예요.’

작가님이 공지에 쓰신 말이에요. 이것보다 매력적인 작품 소개가 있을까요. 과연 장아미님이 ‘엘 문도’에서 그려낸 자신의 비밀이 무엇일까, 궁금하시다면 주저하지 말고 지금 여행을 떠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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