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러브 크래프트 전집 1-크툴루 신화
오래 전부터 알았던 애드거 앨런 포와는 달리 러브 크래프트는 최근에야 알았다. 스티븐 킹의 작품은 거의 다-한국에서 번역된 작품들-읽었지만, 정작 러브 크래프트의 작품을 읽은 것은 최근이었으니 공포와 호러문학에 관한 나의 관심 영역은 많이 부족한 편이다.
최근 한국에 번역된 스티븐 킹의 소설 ‘리바이벌’을 비롯해 그의 많은 작품들이 러브 크래프트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으며, 심지어 러브 크래프트의 이 책 ‘크툴루 신화’를 새로운 방식으로 써보고 싶었다는 말을 했다. 그만큼 러브 크래프트의 소설들은 미국 공포문학은 물론 세계 공포문학의 원형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애드거 앨런 포의 전집이 ‘우울과 몽상’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 출간되었는데, 그의 소설 전집이 한 권인 반면, 러브 크래프트의 전집은 여섯 권이나 된다. 애드거 앨런 포가 19세기를 살았던 인물이었고, 그가 남긴 작품들이 이제 막 근대로 이행하는 역사의 과정에서 중세와 근대의 흔적을 남겼다면, 러브 크래프트는 애드거 앨런 포의 어깨 위에 앉아 근대에서 현대로 이행하는 족적을 남겼다.
공포의 근원은 ‘무지’에 있다는 러브 크래프트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과학문명이 발달했다는 현대에도 여전히 ‘공포’는 존재하는 이유도 우리가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인류가 축적해 온 지식을 통해 알아낸 사실은 매우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 지식의 전체라고 해야 겨우 작은 촛불 하나에 불과하다고 비교할 수 있다.
즉, ‘무지’가 거대한 어둠-그 크기를 알 수 없는 어둠-이라고 할 때, 우리는 이제 작은 촛불 하나를 켰을 뿐이다. 촛불의 불빛이 닿는 곳의 범위는 매우 좁다. 하지만 불빛이 존재한다는 그 자체가 어둠 속에서 새로운 지식과 진리를 찾아낼 가능성을 매우 높인다는 것이 중요하다.
러브 크래프트의 소설에 등장하는 ‘공포’는 많은 경우 작가의 ‘꿈’에 근거하고 있다. 물론 그는 여행도 좋아하고, 많은 책을 읽었으며, 친구들과 무려 10만 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 받았을 정도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그의 의식의 다른 면에서는 ‘공포’라고 부를 수 있는 씨앗이 생겼고, 어느 순간 발아되었다.
이 시기에 지그문트 프로이드라는 정신분석의 대가가 활동을 하고 있었고, 꿈에 관한 그의 해석은 ‘무의식’을 과학의 범주로 끌어들이는 획기적인 변화의 시기였다. 러브 크래프트는 단편 ‘데이곤’과 ‘인스머스의 그림자’의 원형이 자신의 꿈에서 비롯했다고 말한 바 있다.
작가에게 ‘꿈’은 작품의 모티프로 매우 중요하게 작동한다. ‘꿈’은 곧 상상으로 발전하고, 상상은 창작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러브 크래프트가 공포 소설을 쓰게 되기까지, 그가 꾸었던 ‘꿈’과 상상의 세계는 그가 살았던 20세기 초 미국사회와 개인적인 경험이 혼재된 결과물이며, 그가 느끼고 받아들인 감정의 변형된 모습으로 읽을 수 있다.
‘크툴루 신화’는 러브 크래프트 전집 1권의 제목이며, 이 1권에는 모두 13편의 단편 소설이 들어 있다. 차례는 아래와 같다.
1. <데이곤 Dagon>(1917)
2. <니알라토텝 Nyarlathotep>(1920)
3. <그 집에 있는 그림 The Picture in the House>(1920)
4. <에리히 잔의 선율 The Music of Erich Zann>(1921)
5. <허버트 웨스트 리애니메이터 Herbert West – Reanimator>(1922)
6. <벽속의 쥐 The Rats in the Walls>(1923)
7. <크툴루의 부름 The Call of Cthulhu>(1926)
8. <픽맨의 모델 Pickman’s Model>(1926)
9. <네크로노미콘의 역사 History of the Necronomicon>(1927)
10. <더니치 호러 The Dunwich Horror>(1928)
11. <인스머스의 그림자 The Shadow Over Innsmouth>(1931)
12. <현관 앞에 있는 것 The Thing on the Doorstep>(1933)
13. <누가 블레이크를 죽였는가 The Haunter of the Dark>(1935)
러브 크래프트가 글을 쓰던 시기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전후 복구, 미국의 호황과 뒤이어 온 강력한 경제대공황 등 사회적인 혼란으로 사람들이 고통을 겪던 시기였다. 사람들의 마음은 안정을 찾지 못하고, 전쟁의 공포와 상처를 안고 살아가다 어느 날, 경제공황이라고 불쑥 시작된 형체도 없는 괴물 때문에 사람들이 빌딩에서 비오듯 떨어지며 죽어가는 것을 보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 자체로 이미 ‘공포’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일렁이기 시작했으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거대한 ‘공포’의 체험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러브 크래프트는 이런 시기에 자신의 꿈과 사회의 혼란 속에서 사람들이 겪는 공포를 뒤섞어 창작을 했던 것이다.
고딕 양식의 공포와 호러를 만들어 낸 것이 애드거 앨런 포라면, 그것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확장한 것은 러브 크래프트라고 할 수 있다. 러브 크래프트는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책, 지역, 나라, 생물체 등-를 창조하고, 우리의 공포가 우리의 일상에서 가깝게 존재하지만, 그것의 기원은 우주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애드거 앨런 포가 풍선기구를 타고 달에 도착하는 정도의, 소박한 우주관을 보여주었다면, 러브 크래프트는 외계의 존재가 지구에 이미 오래 전부터 자리잡고, 인간과 동화되어 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국에서는 특히 장르 소설에 관한 반응이 싸늘하고, 소위 ‘정통 소설’ 쪽에서는 공포, 호러, SF 등 장르 문학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편견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세계의 문학 흐름도 이미 ‘정통 소설’과 장르 문학의 경계가 사라진 지 오래고, 그것을 일부러 구분하는 따위의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고 있다.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세계문학에 끼친 영향을 보라. 애드거 앨런 포의 공포 문학이 남긴 족적은 세계 현대문학의 거대한 줄기가 되었다. 아서 코난 도일이나 아가서 크리스티의 문학을 두고 장르 문학이라고 폄하하는 사람이 있을까?
게다가 현대 문학에서 ‘스티븐 킹’과 같은 공포, 호러의 대가가 세계 문학시장을 석권하고, 데니스 루헤인, 제임스 엘로이, 레이먼드 챈들러 등 하드보일드 소설은 또 어떻게 할 건가. 이런 장르문학들이 이제는 대중에게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은, 문학의 판도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러브 크래프트의 소설이 한국 독자에게 알려지는 것은 애드거 앨런 포와 스티븐 킹의 중간을 잇는 중요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