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눈에 비친 ‘붉은 눈에 비친 세계’… 공모 공모채택

대상작품: 붉은 눈에 비친 세계 (작가: 시엘의꿈, 작품정보)
리뷰어: 후더닛, 17년 12월, 조회 28

‘붉은 눈에 비친 세계’는 ‘판타지’입니다. 얼른 ‘반지의 제왕’을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주된 배경도 ‘반지의 제왕’의 ‘미들어스’처럼 ‘미들랜드’이니까요. 이 곳 역시도 ‘반지의 제왕’만큼이나 엘프, 드워프, 반인반수등 다종다양한 존재들이 혼종하고 있습니다. 그런 곳인데도 주인공 시엘을 어딜가나 눈에 띄는 독특한 존재입니다. 외형은 인간이나 눈은 붉고 머리는 눈처럼 새하얗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아주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가졌습니다. 십대의 여자 아이인데도 어른 병사 서넛쯤은 단번에 날려버립니다. 그것도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잔혹함으로 말이죠. 사람의 목을 부러뜨리는 게 나무젓가락 부러뜨리는 것만큼이나 그녀에겐 쉽다는 얘기입니다. 인간적인 감정을 도무지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그녀는 마치 무자비한 병기 같습니다. 이런 그녀를 두고 사람들은 이렇게 입을 모아 말합니다. 괴물이라고.

 

네. 제목의 ‘붉은 눈’은 시엘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녀의 눈에 비친 세계는 과연 어떤 곳일까요?

그런 세계를 시엘이 처음 기사단에 소속되어 치르게 되는 데로드 공방전에서 시작하여 미들랜드 제국의 수도 유피테르에서 당한 로렌츠의 숲에 거주하는 반란까지 소설은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그려나갑니다. 그러면서 원래 검은 머리, 검은 눈이었던 시엘이 어쩌다 지금처럼 하얀 머리에 붉은 눈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 사연을 들려줍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알게 되지요. 이 이야기의 근본에 시엘이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는 ‘나이프’와 똑같이 하나의 <병기>에 지나지 않는 존재에서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느끼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것으로 존재의 사명을 삼는 <인간>으로 나아가는 것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말이죠. 한 마디로 시엘의 성장이 주가 되는 판타지인 것입니다. 그 때문에 작가는 미들랜드의 통치자를 아주 어린 여자 아이로 설정한 게 아닐까 합니다. 이게 스포일러일 지도 모르기에 말하기가 좀 조심스러운데, 시엘이 지금과 같은 존재가 된 것은 다섯 살에 노예로 팔려가 인간다움을 아예 잊고 살았던 그녀에게 처음으로 따스한 인간애를 느끼게 해 준 주인집 딸 엘리자베스가 어떤 집단의 습격으로 인해 무참하게 살해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의 힘이 모자라 그녀를 지켜주지 못하는 죄책감이 지금의 그녀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미들랜드의 어린 여제 ‘카테리나’는 이런 엘리자베스와 너무나 유사한 존재입니다. 다시 말해 시엘에겐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 것이죠. 카테리나를 보호함으로써 자신의 트라우마가 된 비극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렇게 자신을 괴물로 만드는 사슬에서 놓여나는 두 번째 기회 말이죠.

 

시엘의 성장에 맞춰 본다면 이런 설정들은 잘 제자리를 잡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달리 말해 이 소설은 적어도 독자로 하여금 캐릭터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에 있어선 성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저자 자신도 이미 알고 계신 듯 한데, 뭔가 그 이상의 것이 없습니다. 이를테면, 시엘이 거의 광전사 같은 캐릭터이고 전투와 반란이 연속으로 일어나는 지라 특히 이 소설에서 느껴져야 할, 박력 같은 것 말이죠. 그건 아마도 일단 규모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한 달 이상이나 지속되었다고 하는 데로드 공방전의 경우, 양 쪽의 기사단이 많은 희생을 내면서 맞붙는 전투임에도 불구하고 시엘이 ‘로렌츠의 숲’에 한 번 활약을 보여주자 맥없이 끝나 버립니다. 그걸 보고 있으면 내가 지금 읽고 있는 데로드 공방전이 과연 규모가 큰 전투인가에 대해 아무래도 의심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 RPG 게임을 하다보면 나라의 명운을 건 전투인데도 병사의 숫자가 참 소소합니다. ‘뭐, 게임이니까’ 하고 넘어가지만 그래도 나라의 흥망을 좌우하는 게임인데 고작 이 정도 숫자라니 하면서 실웃음이 나는 걸 어찌할 수 없습니다. 제게 ‘붉은 눈에 비친 세계’에서 벌어지는 전투가 다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로렌츠 숲에 거주하는 자들의 반란 또한 규모가 현저히 약하다는 게 어쩔 수 없이 느껴졌습니다. 저자가 좀 전쟁의 볼륨을 키웠으면 좋겠습니다. 규모가 작다보니 시엘만 너무 활약하게 됩니다. 때문에 다른 캐릭터들이 그냥 소비되는 감이 없지 않습니다. 판타지의 핵심은 ‘파티’에 있습니다. 여러 명의 다종다양한 구성원이 하나가 되어 임무를 완수하는 것. 이것은 ‘반지의 제왕’부터 판타지 장르에 도도히 흐르는 강물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판타지는 주연 못지 않게 조연들의 활약을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주연에게서 발견할 수 없는 매력을 조연에게서 발견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여기의 좋은 예가 바로 조지 R.R 마틴의 ‘왕좌의 게임’ 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인물들이 저마다 활약을 하게 되면 이야기도 풍성해지고 깊어집니다. 종으로 시엘의 성장드라마를 추구한다면 횡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성장 스토리를 발전시키는 것도 이 소설을 더욱 가치있게 만드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로렌츠의 숲 거주자들의 반란 말인데, 저는 그 과정이 잘 납득되지 않더군요. 시엘이 처음 그 숲으로 들어갔을 때, 그들은 우호적이었기 때문에 더욱 이들의 반란이 너무 갑작스럽게 다가왔습니다. 또 아무리 미리 유피테르에 있던 하얀 사자 기사단의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성이 그토록 쉽게 반란자의 손에 넘어가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앞서도 말했듯 ‘미들랜드’는 제국입니다. 그런 제국의 최고 상층부가 규모가 별로 크지도 않은 반란자의 손에 쉽게 넘어갈 수 있을까요? 일단 성문을 지키는 병사부터 잠자는 약으로 재운다는 것 역시 말이 안된다고 봅니다. 어디 시골 지방의 성도 아니고 제국 통치자의 성인데 성문을 지키는 병서가 두 명이라면 모를까 술에 약을 타 재우고 침입한다? 반란자들의 계획이 너무 안일해 보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언급한 문제점은 하나로 모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핍진성의 부족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그럴듯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이죠. 제국이면 제국답게, 전쟁이면 전쟁답게, 반란이면 반란답게, ‘아, 이런게 정말 제국이고 전쟁이며 반란이구나!’ 하고 느껴질만하게 써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이 소설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은 리뷰를 쓰려고 들어와 보니 작가님이 일부러 부족한 부분을 정확히 알려달라고 언질을 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작가님 본인도 이 소설이 너무 무난한 걸 알고 계시더군요. 제 생각에 그 무난함은 바로 이러한 핍진성의 부족과 캐릭터가 시엘 하나밖에 부각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시엘과 어쩌면 로맨스 관계가 될 지 모를 에스페르도 뭔가 입체적인 캐릭터가 될 만한 갈등 관계가 필요하고 아직은 응석만 부리는 것 같은 여제 카테리나도 과거와 현재의 고통이 잘 부각될 에피소드가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 생각으로 다른 분들은 또 다르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재밌게 잘 읽었는데, 리뷰의 반 이상을 문제점 지적으로 채우자니 괜히 작가님에게 미안해 집니다. 아직 연재 중이니 이런 저의 모든 지적질이 언젠가는 그저 오해와 기우에 지나지 않음으로 판명되길 바라면서 부디 좋은 작품으로 잘 완성하시라는 응원의 말을 마지막으로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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