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사탕님의 이 작품 전반에는 열쇠가 등장한다. 그러므로 열쇠를 중심으로 분석을 해가려고 한다. 하지만 그 전에 이 열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는 과정은 꽤나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생각했을 때 열쇠는 무언가를 여는 도구이다. 정확히는 잠금장치를 해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잠금장치를 단 무언가는 뭘까? 여기서 난 사람을 떠올렸다. 그럼 사람이란? 그냥 사람 모양의 고깃덩어리를 보고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혹은 하나의 개체? 나는 사람이란 하나의 세계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나’는 외형뿐만 아니라 사고방식, 습관, 판단 기준, 행동 양식 등 아주 복잡한 규칙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우리가 세계라면, 몸과 마음은 그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그 문에 잠금장치가 달려있다. 다른 사람이 들어와서 함부로 짓밟지 않도록.
결론적으로 열쇠는 자신을 누군가에게 연다는 상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인 ‘나’는, 처음에 열쇠란 타인의 손에 들어가게 해서는 안되는 것 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작중의 ‘나’는 누군가가 서로에게 열쇠를 줘서 일어난 아주 일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만나 망가지는 일을 주인공은 살면서 부모님을 통해 숱하게 보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울적한 일이지만 특히 ‘나’의 아빠는 종종 나의 세계마저 직접 할퀴고 집어 뜯는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나’가 어리고 부모님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아직 어른이 아니기에 꼴보기 싫은 사람들과 장소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아빠를 견디지 못하고 집밖으로 무작정 걸음을 옮겼다. 길을 잃었다. 그리고 Y가 보였다. 빨간 원피스, 빨간 구두의 Y. ‘내’가 길을 잃었다고 하자 Y는 시크하게 ‘나’를 인도한다. 자신이 갖지 못한 자유로움과 어른스러움. ‘나’도 모르게 열쇠를 잃어버렸다. 그러니까 어떤 모르는 사람이 그 열쇠를 갖고 있고, 어쩌면 자신의 마음에 들어올 수 있다는 말이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주인공은 당장에 열쇠를 새로 마련했다. 잠금장치를 바꿨다.
Y는 정말 빛이 났다. 첫 만남 이후에 ‘나’는 Y의 피아노 실력을 동경하고 어른스러움을 상징하는 빨간색을 동경하고 안정된 가정에서 비롯된 자유로움을 동경한다. 순수한 동경은 사랑이다. ‘나’는 너를 닮아가고자 노력했다. 그런 자신의 감정을 잘 알지는 못했지만. 그냥 자꾸만 열쇠를 잃어버렸을 뿐이다.
그리고 다시 어느날. 맨날 열쇠를 잃어버리기만 했던 주인공은 빨간색 열쇠를 주웠다. 아직 ‘나’는 그게 뭔지 잘은 몰랐지만.
평소처럼 Y를 만났다. Y는 평소같지 않았다. 아주 불안해보였다. 그건 아마도 ‘나’가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날 Y의 집엔 빨간색의 주인이 있었고, 언니가 거실을 차지했으며, ‘나’는 이제 Y 없이도 연탄곡을 잘 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더이상 자신이 ‘나’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건 더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게다가 자신의 열쇠까지 잃어버린 뒤여서 ‘나’에게 성질을 낸다. Y는 자신이 ‘나’를 좋아한다는 걸 안다. 잃어버린 열쇠를 모았던 건 자신이니까. 하지만 자신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것도 주인공일까. 극도의 불안감 속에서 자신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 먼저 주인공을 문다.
눈치 없는 주인공은 Y가 왜 저럴까 곰곰히 고민해봤다. 그러다 상자를 발견하고 자신의 열쇠를 발견했다. Y를 보고 ‘나’는 웃었다.
그러니까 열쇠야 말로 이 소설의 최고 묘미다. 주인공의 사정. 그리고 Y의 심리와 주인공이 Y를 좋아하는 이쁜 마음…. 마지막에 퍼즐처럼 그 모든 것이 이해된 순간에 공감이 되었다. 나도 동경으로 사랑을 시작하는 편이라, 좋아하는 사람의 멋진 모습을 보고 있으면 샘나는 게 아니라 그냥 너무 멋있고 따라가고 싶고 조금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드니까. 그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하게 큰 행복이고 열쇠를 자꾸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그 표현이 정말 멋있다.
한편 자신이 상대방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부터 끊임없이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나는 좋아하는데, 너는 좋아하는 게 맞는지…. 내가 상대방이 될 수 없기에 벗어날 수 없는 의문. 확신이 점점 사라지는 순간이면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상대방에게 못되게 굴게 될지도 몰라. 너는 나를 너무 힘들게 하니까. 차라리 정말로 싫어한다면 내가 덜 아플 것 같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난 Y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정당화 될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지만.
마지막으로 주인공의 사정. 사람이 사람을 받아들이는데 생기는 공포는, 어린 시절부터 보았던 풍경과 겪었던 경험이 큰 기여를 할 것이다. 말하고 나니 되게 프로이트 같은데, 이론적인 부분까진 모르겠고 난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날 돌아봤을 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여기 주인공은 Y를 만나고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었으니까 정말 다행이다.
내용적인 부분에서 아쉬웠던 부분은 하나가 있었다. 작중에서 Y와 ‘나’는 어느날 거리에서 처음 만난 것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어쩌다 한 학교 사람인 걸 알고 친해졌는 지에 대한 부분이 빠져있다. 어떻게 보면 필요한 장면은 아닐지 모르지만 궁금했다. 사소한 다른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조사가 안 맞았던 문장 정도?
이 작품에서 취하고 있는 조각난 장면을 보여주는 듯한 형식은 꼴라주 같다. 혹은 추상화. 혹은 한 편의 영화. 이렇게 했을 때 가장 좋은 점은 깔끔하다는 것 아닐까? 표현하고자 하는 것만 보여줌으로써 독자가 좀 더 의도에 맞는 해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으니까. 또 이건 취향이 꽤나 갈리겠지만, 퍼즐을 맞추거나 추리하는 재미가 있고. 개인적으로 두 특징을 잘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처음 읽었을 때보다 두 번 읽었을 때 더 좋았고, 리뷰를 쓰면서 한 구절 한 구절 뜯어보았을 때 더 진한 여운이 남는 작품이었다. 구름사탕님의 다른 작품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