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소설을 쓰겠다고 굳은 다짐을 하고 크리스마스 날 아침부터 카페에 나와 앉았지만, 패드 펼치자 마자 딴 짓을 하고 있는 견월입니다.
제 연말 휴가에 니르젠베르크라는 특이한 공간에서 흥미진진한 경험을 하게 해주신 리체르카님께 감사드리면서, 한편으로는 이 체험을 그냥 끝내기가 아쉬워서 리뷰라기 보다는 두서 없는 메모 같은 것이라도 남기고 싶었습니다. 말 그대로 독자 메모, 그러니까 드라마 팬들이 막무가내로 남기는 댓글 같은 것이니 작가님께서는 부담 없이 이런 독자들도 있구나, 라고 읽어 주시길 기대합니다.
우선, 독자로서의 저를 소개하자면, 저는 장르 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습니다. 아니, 거의 문외한이라고 할 수도 있을 듯. 이것 저것 종류 가리지 않고 읽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한때 라마나 스페이스 오딧세이 시리즈 같은 SF 판타지에 빠진 적도 있고 스티븐 킹에 심취한 적도 있지만(저는 여고 괴담은 너무나 무서운데 스티븐 킹은 안 무섭더군요…), 판타지의 고전이라고 부르는 톨킨이나 이영도님 작품은 아직 읽어보지 못 했습니다. 따라서, 판타지 문학의 세계관이나 문법 같은 것에 익숙치 않아서 놓치거나 이해하지 못 하는 부분들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정통 문학 뿐 아니라 뭔가 환상적인 이야기들을 좋아라 합니다. 이누야사나 베르세르크를 통해서 왠만큼 알고 있는 부분도…(퍽!)
* 문득 리뷰 작성 안내를 보니 스포일러를 가리는 것을 권하네요. 리뷰를 읽는 분들은 당연히 작품을 읽은 분들일 거라고 생각하고 썼는데 생각해보니 아닐 것도 같아서 뒤늦게라도 감춥니다. 그런데 내용이 전부 스포라 실수를 한 건 아닌지 걱정이…-_-
슐러의 이야기는 우선, 재미있었습니다! 걸인이 기이한 고성에 들어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부터 고성에 잠든 마녀를 잠재우는 유일한 무기가 그림이라는 것까지! 기본적으로 들려주는 이야기가 새로우면서도 뭔가 아주 어릴 적 꿈꾸던 환상을 일깨워주는 느낌? 제가 칼을 든 용사가 될 확률은 희박해도(수련 시작하자마자 죽을 듯…-_-) 그림을 그려서 뭔가 할 수는 있을 것 같았거든요. 어쩌면 다음에는 글로 마녀를 잠재우는 이야기를 제가 쓴다면 표절이 되려나…으음…
그리고, 그 이야기로 저를 끌고 들어가는 디테일이 정말 감탄할만 했습니다! 연재에 대한 댓글에도 잠깐 비췄지만, 저는 한국 사람이 쓰는 외국 배경의 소설에 약간의 거부감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뭔가 부자연스러워 보여서요. 그런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선입감이 깨졌습니다. 작가님의 이야기는 저를 그대로 옛날 유럽의 마녀에게 홀린 어느 마을로, 낡은 고성으로 데려다 놓은 듯 했으니까요. 아마도 제가 이런 장르의 글을 많이 읽지 않아서 그렇지 다른 필력 좋은 작가님들의 글들도 그렇겠지요?
그럼 큰 감상은 여기까지, 이제 두서 없이 이런저런 감상에 들어갑니다! 미리 말씀드렸듯이 어디까지나 독자로서의 설익은 감상이라(심지어 딱 한 번밖에 안 읽어 본 것입니다!) 꼼꼼이 분석한 리뷰나 소설 작법에 대한 비평처럼 받아들이시면 곤란합니다.
슐러가 칼스텐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설득력이 좀 떨어져 보입니다. 칼스텐이 그가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결국은 슐러도 죽고 마을 사람들도 모두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는 했지만, 슐러는 어차피 여기저기 굴러먹은 인물. 웰링스를 그냥 떠나는 것이 더 쉬운 선택일 텐데요. 차라리 슐러가 디트마일이나 엘렌에 대한 애정이 굳어져서 그들을 살리려고 했다면 더 설득력이 있을까요? 하지만 작가님이 이야기 후반 이전까지는 슐러를 충심의 인물이라기 보다는 평범한 걸인으로 그리려 했던 것 같으니(맞나요? ^^;) 그러지 않으셨던 것도 이해는 갑니다. 여하튼 슐러가 그림을 그리면서 마녀와 맞서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이야기가 너무 박진감 넘쳐서 그런 건 다 잊어버리고 읽었습니다.
슐러가 현실에서 정원 꿈으로 빠져들고 다시 빠져나오는 과정이 초반에는 좀 혼란스러웠습니다. 나중에 전후 사정을 이해하고 나서는 자연스러웠지만요. 어쩌면 일부러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려는 의도였을 수도? 아니면 저만 혼란스러웠을 수도..
작가님의 그림 그리는 법에 대한 집요하고도 장대한 설명이 저는 너무 좋았습니다. 그림에 대한 문외한인 저로서는 무슨 이야기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고 가끔은 지겨워져서 빠른 스크롤로 훑어보기도 했지만, 중세의 안료 제조법, 캔버스 사용법 같은 것을 상세히 설명해 주시니 아, 정말 그런가 보다, 이래서 그림이 중요하구나, 하고 작가님에게 압도되는 느낌이(다 뻥이라도 믿었을 겁니다. 설마… 정말로 다 뻥?).. 이야기에서 그림이 중요한 모티브인만큼 그만큼 비중을 실는 것이 합당했다고 생각합니다. 여하튼 지겨운 독자들에게는 스크롤이라는 권리(?)가 있으니까요!
지하 겨울 방의 사제가 처음 마녀가 사랑에 빠져서 파국에 치닫게 된 그 사제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마녀가 디트마일을 너무나 사랑하는 것을 보면서 디트마일이 사제였나? 그럼 겨울 방의 사제는? 하고 혼동이… 아마 제가 한 번 더 소설을 집중해서 읽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야기 결말 부분에서 칼스텐과 엘렌, 특히 제가 좋아했던 캐릭터인 칼스텐의 비중이 너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칼스텐은 왠지 선과 악을 모두 가진 인물일 것 같고, 가끔씩 나타나는 천사의 날개도 과연 무엇일지 궁금했는데, 나중에 칼스텐은 그냥 디트마일과 슐러의 대화에서만 존재했던 것 같아서 좀 아쉽… 정말로 순전히 팬심에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칼스텐 더 보여줘요!(우긴다)
나중에 디트마일이 밤에만 존재하는 인간이라는 것이 밝혀졌을 때에도 제게는 디트마일은 낮에도 쌩쌩하게 돌아다니는 인간일 것 같은 느낌이 여전히… 어쩌면 디트마일이나 칼스텐 등 저주에 걸린 인물들을 뭔가 좀 더 신비롭게 만드는 장치 같은 것들이 좀 더 있었으면 어땠을지..(뭔지는 모르겠지만…)
마녀입니다! 마녀의 잔혹함과 강력한 파워는 웰링스 사람들을 괴롭히는 과정에서 충분히 느껴졌습니다. 한데, 작가님도 밝히셨지만 마녀는 불타오르면서 사라지거나 하지 않고 계속 악담만 하다가 그림이 완성되자 쓰러져 버리는. 작가님 의도대로 마녀가 헐리우드 식으로 거창하게 죽을 필요는 없어 보이지만 마녀가 끝까지 뭔가 좀 더 신비에 쌓이던가, 아니면 마지막에는 좀 더 인간적인 실체를 드러내던가(엘렌의 모습으로만 나타난 것 같아서요. 맞나?) 하면 좀 더 인상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메모를 끝까지 읽어 주셨다면 감사드리고, 혹시 끝까지 읽지 않으셨다고 해도 실망하진 않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어설픈 독자 감상일 뿐이고 결국 결론은,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고, 아직까지도 그 여운을 간직하고 있는 독자로서 작가님께 감사하고 다른 독자님들과 그 뒷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일 뿐이니까요!
이젠, 정말로 저도 제 글을 써야 하겠습니다. 저는 슐러 정도의 작품을 쓰지는 못 하니까, 제가 이런 메모를 남겼다고 제 소설에 너무 심하게 뭐라고 하시면 안 됩니다! 정말로요!!!(울부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