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활용 방안에 대하여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증명된 사실 (작가: 이산화, 작품정보)
리뷰어: BornWriter, 17년 12월, 조회 322

매우매우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매우매우 스포일러 함유합니다.

매우매우 매우매우 매우합니다(?)

 

이 작품을 다 읽고나서 나는 좀 멍했다. 그리고는 “와, 정말 잘 쌓았다.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감상은 거의 즉각적이었다.

나는 소설을 쓸 때 두 가지 발상을 뒤섞는 것을 좋아한다. 전혀 다른 두 발상이 뒤섞일 때는 대체로 특이하고 새로운 것이 튀어나온다. 이 작품도 나는 두 가지 발상이 뒤섞여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좌표계’이고 다른 하나는 ‘영혼과 중력’이다.

우선 영혼과 중력에 대해 이야기부터 해볼까. 이 작품에서는 ‘영혼이 중력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거기에 어떠한 수학적 과학적 근거가 따라붙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이전 연구의 성과에서 결론이 난 것으로 소개된다. 덕분에 독자는 작가가 내민 설정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다. 싸구려 설명으로 구구절절 덧붙이는 것보다 훨씬 멋지고 깔끔했다. 나는 만족스러웠다.

작가는 작품 내내 ‘영혼은 어디로 가는 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데 거기서 그쳤으면 아쉬웠을 뻔 했다. 다행히 작가는 독자들의 감정이입을 위해 멋진 장치를 준비해두었다. 소녀와 무당 할머니가 바로 그것이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죽어서 어디론가 가버리는 것은 그저 ‘사실’만이 남을 뿐이다. 그렇지만 소녀와 돌아가신 무당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독자 주변의 죽음을 글 내부로 끌어들인다. 이렇게 꾸준히 독자는 자신이 살아오면서 겪었던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떠올리고, 이러한 반복을 통해 독자는 사실 뿐만 아니라 감정까지도 결말로 가져오게 된다.

 

좌표계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내 자의적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여기서부터는 감상이나 비평이 아니라 오롯이 추측일변도임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나의 위치는 내 존재만으로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위치에는 반드시 고정된 기준이 필요하고, 기준이 없으면 위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가령 태양계의 경우 태양과 그 밖의 모든 행성의 위치는 태양을 중심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공간을 바깥으로 더 넓히면 기준이 모호해진다. 우주 공간은 유한하지만 아직 인류는 그 공간의 크기를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고, 태양계는 은하의 중심을 기준으로 도는데, 우리 은하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태양을 한 바퀴 돌았다고 해서 지구의 절대적인 위치가 1년 전과 동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혼은 중력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다. 우주 공간에서 영혼만큼 훌륭한 좌표 기준이 또 없다는 것이다.

나는 상상해보았다. 만약 주인공이 들어갔던 연구소에서 연구를 거듭해서 특정 영혼의 특정 위치를 알아낼 수 있다면? 그것을 통해서 좌표계를 짤 수 있다면? 천문학은 당연하고 그 밖의 많은 학문에서 경이적인 속도로 논문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은하간 우주여행도 영혼 좌표계를 통해 항로를 개척한다!

 

나는 이 작품을 읽고 신나게 천문학적 상상을 펼친 다음 현실로 돌아와 자괴감에 빠졌다. 사람의 영혼을 고작 좌표계 기준점 정도로 써먹으려 하다니…. 그렇지만 어차피 죽은 사람인데! 써먹을 수 있으면 오히려 좋은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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