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현대자동차가 우주비행사인 아빠에게 메세지를 보내려는 소녀를 위해 여러 대의 자동차에 특수한 장치를 달아 땅 위에 우주에서도 볼 수 있는 글을 새기는 작업을 한 적이 있지요. 그래서 그걸 감성광고로 써먹었는데, Namrats의 이야기에는 그런 극적인 로망이 없습니다.
이 작품은 기묘하다 싶을 정도로 평이한 이야기를 갖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설명 하자면 화성으로 향하는 1인 우주선에 고장이 났고, 주인공은 우연히 잡힌 지구로부터의 아마추어 단파 라디오 방송을 수신해 대화를 좀 하고, 고장은 수리되고 주인공은 다시 화성으로 갑니다. 끝.
이 작품은 아주 단단히 현실에 뿌리를 박고 서 있습니다. 물론 우주에서의 생활을 세밀하게 묘사했다거나, NASA의 통신코드에 맞춘 고증을 했다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 부분은 적당히 일반적으로 퍼진 우주에 대한 묘사로 그칩니다.
그보다는, 당연하고 상식적인 이야기의 전개가 이 작품에 현실감을 부여해주고 있습니다.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드라마틱한 일은 없습니다. 휴스턴 측의 대사에서는 적당한 관료주의로 굴러가는 조직의 전형적인 모습이 보이고 주인공의 태도에서는 상식적인 우주비행사의 전형적인 모습이 보입니다.
진실을 드러내지도 않고, 소녀의 꿈을 깨지도 않고, 그렇다고 딱히 이야기를 지어내지도 않고, 적당히 맞장구만 쳐주고, 마지막에 소녀와 연락할 수 있음에도 별 고민없이 거절하고 임무로 복귀. 등장인물들이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이나 발언 중 가장 상식적이고 보편타당한 것들만 선택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재미있습니다. 어쩌면 소녀는 아주 오래전 과거에 보내온 전파의 잔향이 아닌가? 라던가, 혹은 주인공이 정말로 외계인이나 미래에서 시간여행을 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여러가지 상상의 나래를 무참히 짓밟고, 이 이야기는 보편타당한 우주 비행사의 이야기를 그리면서도 그 안에 뭔가 아련한 로망을 심었습니다.
너무나도 있을 법한, 너무나도 뻔해서 그럴 듯한 이야기 안에 작은 소녀가 있습니다. 라디오 단파 너머로 목소리만 들리는 소녀의 순수함과, 그걸 지켜주려는 우주비행사의 심드렁한 배려는 그 당연한 이야기 안에 살아 있습니다. 그런 순수함이, 그리고 배려가 우리 안에 당연히 남아 있다 믿고 싶은 만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