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차 리뷰 비평

대상작품: TRAP (작가: 민주한, 작품정보)
리뷰어: stelo, 17년 2월, 조회 158

(이 글은 작가님이 피드백을 반영해 수정하시기 전 내용을 바탕으로 쓰였습니다.)

스스로에게 “이 소설을 왜 읽어야 할까?”하고 물어보았습니다. 나오는 답이 “추리 습작들은 왠만하면 읽어 보고 하나하나 평을 써드리고 싶다”는 것 뿐이더군요.

반면에 제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작품을 읽는다면 “훌륭한 장면 연출과 묘사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겠죠. 반 다인이나 엘러리 퀸이라면? 일본 사회파의 마쓰모토 세이초는? 요즘 작가로 치면 2년 연속으로 3관왕을 받은 요네자와 호노부를 읽는 이유는 뭘까요? 찬호께이의 [13.67]은? 제가 설명하지 않아도 추리/스릴러 장르를 쓰려 하신다면 스스로 답을 내실 수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추상적인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저는 도입부를 읽고, 뒤로가기를 누를지 고민했습니다.

TV너머로 예쁜 아나운서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퇴근 후 시간을 즐기는 부부는 그 앞에서 제 오빠와 뛰어다니는 여자 아이를 말리며 뉴스를 경청했다…

하지만 끝까지 읽긴 했습니다. 사실은 사실일 뿐입니다. 편하게 받아들여주세요. 저도 추리 소설 습작을 하는 아마추어니까요. 매번 비슷한 고민을 하거든요. “내가 봐도 이건 아무도 안 읽겠다.”하고요.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문제가 무엇인지는 알고, 고쳐야겠죠.

구체적인 묘사? : 단어들부터 애매합니다. ‘예쁜’ ‘낭랑한’ ‘퇴근 후 시간을 즐기는’ ‘오빠’ ‘여자아이’ ‘뉴스를 경청했다.’

미스터리와 서스펜스 : 독자가 뒷부분이 궁금할 이유가 설득력 있게 제시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물론 아나운서는 곧바로 뉴스를 이야기하죠. 하지만 추리 독자들은 이미 왠만한 사건들에 면역이 되어 있습니다. 추상적인 단어로 나열되는 ‘끔찍한’ 사건은 이미 차고 넘치죠. 하물며 남의 이야기인데요. 심지어 기다란 설명이 줄줄 나열되어 있습니다. 뉴스를 보는 가족들처럼, 저도 아무런 관심이 가지 않더군요.

그렇다면 읽고 싶어지는 작품들은 어떨까요? 당장 제 주위에서 책 3권을 꺼내서 옮겨 봤습니다.

셜록 홈즈는 항상 그녀를 ‘그 여인’으로 불렀다. 다른 호칭으로 일컫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그의 눈에 그녀는 어떤 여성보다도 뛰어났고 우월하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홈즈가 아이린 애들러에게 애정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는 것은 아니다. [셜록 홈즈의 모험] 아서 코난 도일, 송성미 옮김, 더 클래식

야스다 다쓰오는 1월 13일 밤, 아카사카에 있는 요정 ‘고유키’에서 손님을 접대했다. 손님은 ㅇㅇ성의 부장이었다. -[점과 선] 마쓰모토 세이초, 김경남 옮김, 모비딕

뤄 독찰은 병원 냄새를 싫어했다.

공기 중에 흩어져 물컥대는 소독약 냄새 말이다. 병원에 무슨 좋지 못한 기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병원 공기는 종종 냄새가 비슷한 시체 보관소를 떠올리게 했다. 27년간 경찰로 일하며 무수한 시체를 봤지만 그 냄새에는 익숙해지지를 않았다. – [13.67] 찬호께이, 강초아 옮김, 한스미디어

구체적인 묘사 처음부터 이야기의 주인공이 제시됩니다. (홈즈,야스다,뤄 독찰) 구체적인 지명들이 사실감을 더하기도 하죠. (아카사카 고유키 ㅇㅇ성) 감각적인 묘사들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보통은 시각이나 청각에만 의존하기 쉬운데, [13.67]은 시작부터 후각을 씁니다. (소독약 냄새) 그리고 시체라는 불쾌하고 불안한 이미지로 연결되죠.

미스터리와 서스펜스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사건의 핵심으로 바로 연결됩니다.

질문1 “셜록 홈즈는 왜 아이린 애들러를 그 여인이라고 부르는가? 왜 어떤 여자보다 뛰어나고 우월한가?” 보헤미아의 스캔들의 결말이 바로 그 답이죠.

질문2 “야스다 다쓰오는 누구길래 ㅇㅇ성 부장을 접대하고 있나? ㅇㅇ성 부장은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차근차근 질문에 답해나가죠. 이야기를 읽다 보면 왜 이런 도입부를 쓸 수 밖에 없었는지 답을 찾게 됩니다.

질문3 “뤄 독찰은 병원 냄새를 왜 싫어하나?” 바로 답이 나오죠. 하지만 아마 병원에 있는 것 같은데요. “뤄 독찰은 ‘냄새도 싫어하는’ 병원에 왜 와 있는 걸까?”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역시 바로 답이 나옵니다. 시체와 다름 없는 상태인 스승을 보러 온 것이죠.

물론 작품마다 도입부를 시작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뻔한 공식에서 벗어나서 독창적이어야 할 필요도 있죠. 극적인 사건에서 시작하는 작품도 있지만, 일상적인 배경에서 시작하는 작품도 있을 겁니다. 장르에 따라서, 작가의 성향에 따라서도 다르겠죠. 이건 아직 일상 파트일 뿐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후반에 가면 제가 이야기한 문제들이 좀 나아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여전히 단어는 상투적이고, 매일 싸우는 연인과 능글맞은 남자라는 것 밖에 모르겠지만요. 질문을 부르는 상황이긴 합니다. “왜 저 여자는 화를 내며 들어오려는 걸까?”

하지만 어떤 도입부라도 흥미를 끌긴 해야 합니다. 2회 3회를 읽을 이유를 보여줘야 한다는 거죠. 제가 예시로 가져온 3작품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아니 대부분의 티비 드라마들만 봐도 이건 기본기입니다. 시청자는 채널을 돌리고, 독자는 뒤로 가기를 누르니까요.

저는 여기서 딱 두 가지 이유만 말했지만, 이게 전부도 아닙니다. 저는 이 1화를 보고 주인공이 뭘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사건에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도요. 반면에 저 3작품은 곧바로 그걸 보여줍니다. 왠만한 드라마들도 그렇고요. 여기서 제가 직접 분석해볼 수도 있지만, 글만 길어지겠지요. 직접 읽어 보시고, 분석도 해보시고, 따라서 연습도 해보시면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어려우실 때는 작법서를 읽어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제 결론은 “TRAP의 도입부가 형편 없다”가 아닙니다. 단지 제가 어떤 느낌을 받았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할지 예를 들어드린 것이죠. 읽고 싶어지는 작품을 써주세요. 앞으로 성장하신 모습을 기대합니다. 제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기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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