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세상의 여자들이 남자가 된다면?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10개월 – 1 (제1회 종말 문학 공모전 대상작) (작가: 종말 문학, 작품정보)
리뷰어: , 17년 1월, 조회 396

이런저런 공모전을 통해서 만났던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그 시작에서부터 새롭다는 느낌이 든다.

신선한, 색다른, 기상천외한, 발칙한, 통통 튀는 등의 표현에 어울리는 상상력이 바로 그 핵심에 있기 때문이다. 비록 -적어도 그 시점까지는…-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아 투박한 면이 있을지 몰라도, 그것을 뛰어넘는 상상력이 존재하기에 기존의 작가들이 선보이는 작품들과는 다른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특히나 그 공모전이 특정 장르-가령, 좀비를 다루거나 종말을 이야기하는…-에 한정되는 것이라면 그 상상력이라는 것은 더더욱 빛이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 그런 빛나는 상상력을 기대하게 하는 한 권의 책을 만났다. ‘종말문학 공모전’과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수상작을 모아놓은, 『10개월 종말이 오다』가 바로 그 책이다.

여기서 잠깐!! ‘종말문학’이라면 말 그대로 인류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고, 조금 생소하다 싶은 것이 ‘신체강탈자문학’인데, 그 역시 종말문학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단지 종말문학에 인간의 신체를 점령하고 조종하는 생명체의 이야기가 더해진다는 정도라고 이해하는 편이 나을 듯하다. 뭐, 외계인의 지구 침공을 다룬 이야기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어쨌거나 지금은, 종말문학 공모전과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에서 선택받은 작품들을 만날 시간이다.

『10개월 종말이 오다』는 앞서 말했듯이 ‘종말문학 공모전’과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수상작 일곱 작품을 모아놓았다. 세상의 모든 여자가 점점 남자로 바뀌어 간다면, 이라는 발칙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풀어내는 《10개월》, 이유도 모르는 자살 증후군이 점점 퍼져나가는 세상을 다룬 《베르테르 증상》, 우주를 둘러보라고 보낸 탐사선이 멸망한 지구를 돌아보게 된다는 내용을 담은 《귀환》, 태어나는 아이가 모두 외계인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해 그 아이의 놀라운 성장과 그 이후를 보여주는 《미래도둑》, 근대 소설 〈운수 좋은 날〉을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소설로 바꿔버린 《운수 나쁜 날》, 담배를 무기로 하는 어느 직장인의 외계인과의 외로운 사투를 보여주는 《금연 클럽》, 그리고 걸 그룹이 세상을 지배하는 세상을 그린 《HOOK》까지 비슷한 듯 하면서도-당연하게도 기본적으로 종말을 다루고 있으니 그렇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물론 모든 작품들이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었다. 어느 작품은, 구체적으로 그것을 풀어내는 과정들에 있어서-앞서 언급했던 투박함에 관한 부분이라고 할까?!- 우려했던 아쉬움이 남기도 했고, 또 어떤 작품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계속해서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했다. 하지만 몇몇 작품들은 아주 놀랍게 느껴졌다. 그 중에서도 특히나 첫 작품, 《10개월》을 읽는 동안, 그리고 읽고 난 후까지 그 놀라움은 감출 수가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의 여자들이 남자가 된다면 어떨까, 라는 설정하나에서 시작된 다양한 이야기들이 정말 실감나게 다가왔다. 누군가의 애인이 남자가 되고, 누군가의 아내가 남자가 되고, 어떤 아이들의 엄마가 남자가 되는 순간들이 계속되고, 그것을 피하기 위한 노력들과 여자들이 사라지게 되면서 더더욱 커지는 남자들의 욕망, 그리고 그 다양한 혼란들이 뒤섞인 수많은 현실화된 우려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나름의 상황에서 흥미롭게 펼쳐지면서 그 흥미로움만큼의 수많은 감정들이 내 마음속을 휘젓고 다녔다. 《10개월》외에도 《운수 나쁜 날》과 《미래도둑》은 흥미로움 이상의 많은 생각들까지 안겨주는 놀라운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이처럼 『10개월 종말이 오다』를 통해서, 한 번쯤 상상해봤던 -하지만 그냥 스쳐지나갔던- 이야기가 현실이 되어 다가오는 경험도 해봤고, 평소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가 눈앞에 펼쳐지는 놀라움도 경험했다. 역시나 다양하게 펼쳐지는 놀라운 상상력은 나에게 기대만큼의 큰 즐거움을 줬다.

즐거움……. 즐거움이라고 하긴 했지만, 이런 장르 대부분이 그렇듯이, 그 내용에 있어서는 결코 행복하다거나 즐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어둡고 무섭고 두려운 순간들이 계속되는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뭐 그리 즐겁겠나. 오히려 그 내용만으로 따지자면 불편함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계속 이런 글을 쓰고, 또 누군가는 계속해서 이런 글을 읽는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10개월 종말이 오다』처럼, 그저 가만히 앉아서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불편하게 만드는 영화나 소설들이 있다. 이런 건 모르고 살거나 혹은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으며 살아도 괜찮을 텐데, 내가 왜 이런걸 보고 있나 싶기도 한 작품들이다. 극장이라면 그 어느 때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 되는 것이고, 소설이라면 이것저것 잴 것도 없이 당장 책을 덮으면 되는데, 신기하게도 나는 그 불편함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다. 어쩌면 그 불편함을 계속해서 지켜본다기보다는 그 이후에 있을 어떤 희망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끝없이 내려가서 더 이상의 바닥은 없다고 생각이 들만큼의 커다란 절망에서 다시 일어서는 모습이 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 결국에는 그 마지막 희망을 위해서 불편함을 끝까지 참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르게 보면 단순히 그 순간의 카타르시스를 위해서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모르게 또 다른 생각들을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극한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은 어떤 것인가를 보면서, 인간을 그런 극한의 상황으로밖에 몰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들의 시작은 무엇이었나를 생각하게 되고, 그런 모습들을 현실에서 마주하지 않기 위해서 또 어떻게 살아가야하나, 라는 생각들까지 도달하게 된다. 말 그대로 편함과는 반대로 누군가를 괴롭게 만드는 것이 불편함이라지만, 그를 통해서 오히려 편함을 꿈꿀 수 있다면 충분히 이런 작품들도 가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는 불편하다는 이유로 전혀 보지도 못하고, 읽지도 못하겠다고 한다. 그저 불편함만을 바라본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불편함 뒤에 감춰진 또 다른 면을 보게 된다면 그 불편함 이상의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작품들이 아닐까 싶다. 불편하지만, 즐겁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충분히 가치도 있는 이런 작품들을, 잠깐의 거부감으로 인해 피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며, 또한 이런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의 시장이 좀 더 커져서 보다 수준 높은 작품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계기로 이런 공모전이 거듭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리뷰 대상 전체 작품 목록:
베르테르 증상
귀환
미래도둑
운수 나쁜 날
금연 클럽
HOOK

*리뷰어: 아나르코 님
*아나르코 님의 동의를 얻어 게재하는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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