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김’은 농담거리다. 자신의 못생김을 개그기믹으로 삼는 개그맨도 있고, 대한민국 대표 예능 ‘무한도전’에선 ‘못친소’라는 이름의 콩트를 마련했다. 타인의 외모를 비하하는 것은 차별적 행위가 아니라 유쾌하고 즐거운 일이다. 모든 외모비하는 농담과 장난일 뿐이기에, 거기에 대응해 화를 내는 것은 적절치 못한 행위다. 못생겼다 놀림 당하는 연예인들도 하하호호 떠들며 즐거워한다. 그들에게 못생김은 현실이 아니라 그저 콩트의 일부니까.
그러나 현실에서도 그럴까? 그동안 미디어들은 못생김을 조롱하는 행위를 너무도 관대하게 표현해왔다. 흔히들 우리는 타인의 뒤에서 그의 외모를 비하하며, 심지어 당사자가 그 자리에 있을 때도 서슴없이 비난을 늘어놓는다. 이에 웃기는 사실은 조롱의 당사자로 하여금 그 조롱을 너그러이 받아들일 것을 강요한다는 사실이다. 모욕을 당했는데 화를 내면 이상한 사람 취급. 이상하지 않은가?
이에 단순한 조롱에서 그치지 않고 사람을 외모로 등급화하고 계급화 시킨다. 그 과정에선 당연히 차별이 발생하고 불공정한 거래가 오가기 마련이다. 기의한 점은 다른 요소로 사람을 차별하면 길길이 날뛰던 사람들이, 이 문제에선 입을 다문 채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앞서 사례와 다르게 실제 차별이 이뤄지는 중에도 그들에게 이 문제는 그저 단순한 ‘농담’에 불구하다. 심각하게 생각할 가치가 없는 그저 장난에 불과한.
이 소설은 우리가 장난이나 농담의 이름을 빌어 타인에게 얼마나 억압적인 폭력을 휘둘러 왔는지를 여과 없이 드러내는 작품이다. 실제로 작품에 등장하는 표현들은 실현되지 않았을 뿐이지 익명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현들이다. 현대의 외모지상주의는 나치즘과 다를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