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던 포도대장이 나이들어 은퇴하고 고향집으로 낙향합니다. 총기있던 분이 눈치없고 체신머리 없고 양반답지 않게 상스런 욕설을 하시긴 합니다만, 흔한 노망이겠죠. 자식들도 늙은 아내도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믿고 싶었습니다. 하인들이 주인영감에게서 피비린내를 맡고, 며느리들이 악몽을 꾸고, 가축들이 피를 빨려 죽은 걸 보면서도 애써 흉한 예감을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영감님의 아들이 부정청탁을 하려고 애써 모셔온 자O보O 스님(비슷한 언어유희로 제갈공O 참모도 나옵니다. 직접 작품을 읽어보시면 낄낄댈 수 밖에 없을 겁니다.)이 살해당하고 영감님의 시회에 참석했던 이억상이란 선비와 말그대로 ‘죽지도 않고 또 온’ 각설이(다른 시리즈에서 나왔던 인물이죠!알아차리시면 아이고, 하실 겁니다)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면서 체면치레하는 양반가 자제들이 아닌, 머슴들이 분주하고 용감하게 영감님의 정체를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묘사가 너무 생생해서 원린자(외계인)의 외양이나 살육장면이 끔찍하고 그로테스크하기 그지없지만 탈춤놀이의 말뚝이처럼 해학 넘치는 문장들(소통은 없고 두통만 있었다, 처럼 롸임마저 살아있습니다!) 덕에 무섭다가 웃기다가 미친년 널뛰듯 하는데…그게 희한하게 짜릿한 재미가 있어요. 양반이건 머슴이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협상이고 뭐고 없이 무조건 인간을 도륙하는 외계인(원린자)가 우주적인 공포를 자아내지만 풍자와 해학을 장착하고 일말의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지구정복’을 하려는 원린자와 대결하는데 과연…잔혹한 원린자와 그들의 존재를 경고하는 선각자들, 탐욕에 희생된 사람들, 원린자에 맞서는 인간들이 조정이 금지한 금서 ‘귀경잡록’을 두고 벌이는 조선의 아수라장에 독자님들도 뛰어들어 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