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또 하나의 나 공모(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따뜻한 세상을 위해 (작가: 해도연, 작품정보)
리뷰어: Ello, 17년 11월, 조회 49

0.

따듯한 풀빵같은

 

하늘의 바람을 불게 하는 자는 누구인가

누군가 운명을 주고 누군가 운명을 건네받는다

이 운명은 누가 주는 것인가

따듯한 풀빵같은 그러나 끝내

먹지는 않고 손에 쥐고 있을

따듯한 풀빵 같은 이 운명은

누가 내게 주는 것일까

 

1.

다른 분들의 리뷰를 봐버렸으므로 중복되지 않는 선에서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리뷰가 훌륭해서 굳이 보탤 필요가 있나 고민했지만 리뷰는 많으면 많을 수록 좋지 않을까요.

과연 누구에게 따뜻한 세상일까요. 따뜻하다는 말을 참 좋아해서 열어보지 않을 수 없는 글이었습니다. 제목에 중의성과 모호성을 심어 놓는 건 ‘뱀을 위한 변명’에서부터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뱀을 위한 변명’에서는 감탄의 아하!가 절로 나왔다면 ‘따뜻한 세상을 위해’에서는 뒷맛 씁쓸한 여운만이 맴도네요.

어떤 따뜻한 세상을 원한 것일까요. 안드로이들과는 다르게 체온이 따뜻하다는 점과 연구원과는 다르게 마음 씀씀이가 따뜻하다는 점에서 주인공은 따뜻한 사람이 되었지만 그래서 주인공을 위한 따뜻한 세상일까요.

 

2.

내용의 씁쓸함과는 별개로 전개에 높은 점수를 드리고 싶습니다. 중간 중간 복선이 깔려있기에 두 번 째 읽으면서는 더욱 감탄했어요.

솔직히 첫 줄의 ‘시계’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기 전까지 고개를 갸우뚱거려야 했죠. 바퀴달린 차로 연결되는 선상에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을 많이 만나지도 않는 주인공이 (실제로 업무도 차에서 하고 말이죠. 미팅은 한 건이 있었고)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멈춘 시계를 차는 행위가 조금 어색해 보였습니다. 시계에서 바퀴달린 차로 급작스러운 확장이 이뤄진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하지만 그렇죠, 멈춘 시계는 꼭 필요합니다. 반드시 차고 있는 편이 좋겠어요.

다른 리뷰에서 다룬 비상정지리모컨에 대해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그렇게 될 줄이야. 게다가 비장정지리모컨 말고도 안드로이드의 체온이나 미소, 그 남녀의 대화에서도 의미심장한 부분이 있었죠. 비장정지리모컨을 주인공이 썼다는 점이 많이 슬프네요.

그리고 어투에 대해서도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주인공에게 주어진 설정은 종이책 시안을 디자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종이값이 비싸지면서 책에도 세금을 메기고, 종이 팸플랫을 만들정도라면 본래 주인공으로서는 만나지도 못할 부자인 걸 유추해 볼 수 있고 말이죠. 그렇다면 주인공은 바퀴달린 차를 사고 부자들을 상대하기 위해 멈춘 손목시계를 차는 어느 정도는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것도 부자들만 상대해야 하는.

그런데 말입니다. 주인공의 말투가 매우 이상합니다. “때려 박다.”라거나 “아무리 좆같은 물건이라도”, “안드로이드에 주다스를 박아 넣은 고급형은”이라거나 하는 상스러운 어투를 구사합니다. 이 부분을 작가님께서 의도하셨을거라 짐작합니다. 주인공의 직업과 동떨어져 있죠. 주인공은 종이책 시안을 디자인하는 사람으로 상당히 수준높은 고급 어휘를 구사해가며 대화를 해도 충분할텐데 말투만 봐서는 디자인의 ‘ㄷ’자도 떠올리기 어렵네요.

이것도 나중을 위한 복선이라 생각합니다. 초경량 격투기 선수가 본업인 주인공은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자아로 유지하고 있었네요.

 

3.

조금은 상스러운 말투를 썼지만요. 그래도 주인공은 본래 매우 선한 사람이란 생각이 듭니다. 나중에 밝혀지는 죽어가는 연인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미래형 신체포기각서(뇌포기각서가 더 맞을 것 같지만)를 쓰기도 하고, 도망칠 여지가 있었음에도 기억도 나지 않는 연인을 위해 다시 실험체로 돌아갈 생각을 하죠. 연인을 보고 나서 생각은 나지 않더라도 눈이 충혈되기도 하고. 또 있어요. 식당에서 ‘바퀴벌레를 봤다고 할까?’ 라고 해놓고는 ‘그러면 식당에 피해가 간다.’ 고 합니다. 그저 밥 한끼 먹은 장소일 뿐인데 자신에 대한 의심을 지우기 위해 이용 할 수 있으면 이용해도 될텐데 말이에요.

이런 사람에게 “너보다 더 너같다든가.” 라거나 “아가사는 완벽한 나 자신이었다.”같은 논리를 지속적으로 강조하다니. 글의 바닥에 숨은 잔인한 면이 있어요.

실제로 저는 이 글을 처음 읽을 때 중간까지 읽고 나서 “무섭다.”고 적고 한 숨을 쉬고 난 후에야 다시 읽을 수 있었죠. 섬찟한 느낌이 등골을 타고 내리더라니까요. 쥐가 손톱을 훔쳐먹고 나인척하는 우화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 내 일을 대신 해주면 좋겠지만 내 자릴 빼앗길까봐 두려워졌어요.

 

4.

싸구려 감수성과 권위적 감수성

공중부양차와 바퀴차

안드로이드와 인간

글 속에서는 대립되는 항을 보여주며 어떤 항목에 손을 들어줄지를 확실히 하고 있죠. 독자는 그 생각을 따라가게 됩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따라가야죠. 공중부양차와 안드로이드는 버리고 권위적 감수성에 따라 바퀴차와 인간이 승리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안드로이드를 버리는 순간 인간은 인간에게 권위를 찾아야만 해요. 그러니 주인공에게 “이거”라고 부르는 연구원이 등장했겠죠.

조금 더 자연스럽고 조금 더 섬세하고 조금 더 따뜻한 인간에게 안드로이드의 절대 복종을 심어 넣는다니. 거 참 따뜻한 세상이겠네요.

정말 씁쓸하고 머지 않은 미래에 있을 법한 이야기였습니다.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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