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곡차곡 다가오는 현실적인 공포와 광기 감상

대상작품: 아들에게 (작가: 번연, 작품정보)
리뷰어: 노말시티, 17년 10월, 조회 49

좀비물입니다. 전국에 좀비가 창궐하고 한 가족이 아파트에 고립됩니다. 집 주변을 둘러 싼 좀비떼의 공포와 기약없이 길어지는 고립에 가족들은 서서히…

새롭다고는 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도입부에 <로드>라는 소설이 인용되는데 읽어보지 않아서 그런지 아버지가 <로드>의 아버지인지 이 소설의 아버지인지 혼란스러웠어요. 네. 그렇습니다. 저는 종말을 다룬 대표적인 소설 조차 읽어 보지 않은 채 이 글에 대한 감상을 적고 있습니다. 그 점 감안해서 지나가는 독자1이 하는 말로 가볍게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어가면서 저도 모르게 소설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나’는 흔한 좀비물이 비현실적이고 과학적이지 않다고 믿는 사람이에요. 독자와 같은 입장에서 시작합니다. 뭐, 좀비물이 별 거 있겠어?, 라는 게 독자의 생각이라면, 좀비라는 거, 실제로 있다고 해도 별 거 아냐, 라는 게 ‘나’의 입장입니다. 그런 주인공이 서서히 주변 상황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구체적으로 표현되면서 읽는 독자도 함께 자연스럽게 설득되고, ‘나’의 공포와 불안에 동화됩니다.

“좀비 영화들 외모 묘사 싸그리 다 틀렸네.”

작가는 아예 기존 좀비물과는 다른 걸 보여줄 거라고 당당하게 선언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사건에 대한 복선이기도 하죠. 문장 하나하나, 상황 하나하나를 쌓아가면서 ‘나’를 서서히 옥죄어 갑니다. 그 과정이 너무 치밀하고 빈틈이 없어서 뻔한 전개라는 불만 조차 갖지 못하게 만듭니다. 알면서도 당하는 꼴이랄까요.

남편의 말을 듣지 않는 아내, 감정 교환이 어려운 아들, 그 속에서 ‘나’는 서서히, 정말 서서히 극단적인 상황으로 밀려갑니다. 좀비물이지만 좀비보다는 아내가 답답하고, 아들이 괴롭고, 미쳐가는 ‘나’에게 공감된다는 사실이 두렵습니다. 어찌보면 좀비물과 종말물을 정공법으로 공략한 건데 그 공격이 너무도 완벽해서 어이없이 뚫리는 데다가 예상 못하는 지점까지 밀려 나갑니다. 정말 거기까지 밀어 붙일 줄은 몰랐어요.

아쉬웠던 점을 조금 말해 볼께요. 어디까지나 저에게 해당하는 거고 다른 분들은 다르게 느끼실지도 모릅니다.

글을 읽다 보면 정말, 어? 어? 하면서 계속 쭈욱 뒤로 밀려 나가는데 제게는 한 점의 불연속점이 있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부분에요. 너무 갑자기 훅 들어와서 오프사이드라는 느낌이었어요. 밀어 붙인 종점이 너무 멀리 있어서 어쩔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 부분까지 정말 치밀하게 밀고 왔던 걸 생각하면 복선을 좀 더 넣는다거나, 해당 부분의 묘사를 늘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그 지점을 부드럽게 이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그리고 마지막 결말. 법적인 부분도 선뜻 동의가 어렵지만, 끝까지 화자로서 냉정함을 유지하는 듯한 아버지의 모습과 유언의 광기에서 모순이 느껴져요. 유언의 광기를 유지해야 했다면, 결말부의 화자를 바꿨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

아쉬움을 구구절절 늘어 놓은 건 이 소설이 좀비물, 종말물로서 그만큼 굵직하면서도 매끈했기 때문이에요. 다른 부분이 워낙 깔끔해서 몇 안 되는 부분이 눈에 띄었나봐요. 혹시 아직 안 읽어 보셨다면, 강력하게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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