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만 사용하여 적은 것 같은 스포일러투성이의 글입니다. 부디 본편을 먼저 읽으신 뒤에 참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각주가 이렇게 많은 글을 접하는 것은 처음이군요. 다양한 각주들이 길고 지루한 부분 없이 해당 용어를 독자에게 설명해줍니다. 각주를 꼭 눌러 확인하세요. 그러지 않으면 점점 더 혼란스러워집니다. 저처럼요……. 다시는 각주를 무시하지 않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글을 조금 빠르고 건성으로 읽는 것이 습관인 독자입니다. 어려워서 집중해야 하는 글이 아니라면 일을 하면서 짬짬이 읽다 보니 생겨난 못된 버릇입니다. 최근에 읽은 동양풍의 글, ‘낙원과의 이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그러나 동양적이라는 수식어를 뗄 수 없는 독특한 느낌의 글입니다. 사실은 한국적이라는 느낌이 조금 더 강하게 들기도 해요.
이 글을 정의하면서 조금 어려웠는데, 현재까지는 구름이의 모험기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구름이는 뜬금없이 산 제물로 선택되어-미르에게 납치되었다가-도깨비 마을도 들르고-그녀의 물건이 된 여우 구슬을 도둑맞아 그것을 찾으러 사방팔방 뛰어다녔다가-여우들에게 돌아가 목숨을 바칠뻔하고는-진상을 알게 되자 분노하여 구슬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는데요. 꽤 모험기 같거든요. 배경이 휙휙 변하고 구름이에게 낯선 장소투성이인 데다 평범한 사람은 섣불리 들어갈 수 없는 장소들이기에 더더욱 그래요.
시작부터 횡설수설이 길었습니다. 배경으로 가뭄이 든 고을이 먼저 보여야 하는데 미르가 물을 다루기도 하고 구름이가 물에 첨벙첨벙 적셔지는 탓에 뭔가 습기 가득한 느낌의 글로 다가왔답니다. 처음 모길이가 등장할 땐 한 시간대에 두 시점을 동시에 보여주고 싶으신 탓에 사용하신 연출에 조금 어리둥절했어요. 모길이 나타난 것도 너무 뜬금없게 여겨지고요. 시점 선택을 거마설에게 쫓길 때부터가 아니고 모길이가 뭔가 일을 저지르고 도망치던 때, 로 잡아주시면 아무래도 구름이가 뒤통수를 맞겠구나 싶은 추측을 하는 건 쉬워지겠으나 모길의 존재를 인식하고 상황이 어떻게 흘러왔다는 것을 짐작하기가 어렵지는 않을 거거든요. 혼자 툭 튀어나와선 모래알처럼 데굴데굴 굴러 제가 보기에는 약간 어리둥절한 등장이었답니다. 이것도 꼼꼼히 읽지 않아서일 확률이 조금 있는데, 쫓기다가 갑자기 미르가 평범한 사람을 소도에 데려가는 등의 연출에서는 조금 어리둥절한 것이 사실이었고요.
만약 동 시간대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갈라 구분하여 짧게 보여주신다고 하면 아주 혼잡스러워질 것 같다는 소소한 예상도 남겨봅니다. 그런 연출은 급박한 상황에서는 괜찮은 것 같은데, 일단 ‘비를 내리는 소녀’에서는 흐름을 끊는 연출로 보였어요. 당장 구름이도 낯선 상황에 떨어져서 급한데, 뭐하는 놈인지도 모르겠는 놈팽이가 자꾸 슬쩍슬쩍 얼굴을 내밀잖아요. 이건 제가 그냥 모길이가 마음에 안 드니까 눈 속 티끌처럼 거슬려서 그러는 거일 수도 있기는 하지만요. 이놈이 뭐하는 놈인데 귀하다는 살살이꽃을 가지고 있으며, 살살이꽃이 어떤 물건인지 다른 인물이 귀하다고 설명하지 않으면 그 중요도를 알기 어렵다는 것 정도가 설명되어야 할 부분 같은데. 살살이꽃이 처음 나올 때도 각주를 넣어서 어떠어떠한 물건 하고 알려주시면 좋겠네요. 이걸로 간지럽히면 사람이 살살 기게 되는 꽃 이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고요!
또 헛소리가 나왔네요. 모길이놈한테 너무 시간을 할애해버렸습니다. 이놈이 여우 구슬의 영험함을 알아보고 도깨비나 미르를 비롯한 신령한 존재들에게 쫓길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추적자 거마설이 자기를 노리고 있을 것이 뻔한 소도 밖으로 여우 구슬을 훔쳐 달아나는 상황 자체가 저에게는 납득가지 않는 장면이었답니다. 살살이꽃까지 내놓으면서 들어왔는데, 물건까지 훔쳐서 죽이겠답시고 따라오는 놈 아가리로 돌아가는 꼴이잖아요. 얘가 여우 구슬을 다룰 줄 알면 몰라. 그래서 모순적인 느낌이 드는 인물이었답니다. 한 번 생각해주셔요!
제목은 아마도 일이 중점적으로 벌어지는 배경, 마을이나 장소 이름을 따 와 붙이시는 것 같아요. 이렇게 구분해두시니 어디에서 일어나는 일이로구나 하는 것은 알겠는데 나중이 되면 아주 헷갈릴 것 같아요! 이건 이의제기같은 것이 아니옵고 의견이오니, 소소히 참고해주십사…….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처음에는 호의적인 존재인 것처럼 비추어지던 존재들의 이면이 조금씩 드러납니다. 미르는 처음부터 구름을 깡철이를 이기기 위한 무기로 사용하기 위하여 시종삼기로 한 것 같고, 도깨비들도 거리낌 없이 여태 어울려 온 그녀를 여우들에게 넘기며, 여우들은 구름의 목숨을 취하려 들고, 인간들이 사는 마을에 정체를 숨기고 숨어들어 그들이 키우는 짐승과 인간 모두를 해치거든요.
이렇게 보니 인간에게 이로운 이종은 아무것도 없는 것 아니냐는 자조적인 물음마저 떠오릅니다. 사실 인간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해로운 것이니, 하늘도 신경 쓰지 않는 인간들은 그냥 죽은 목숨 아닌가 싶어서요. 맨 처음에 가뭄 든 고을에서 삯을 거두어 가는 낛꾼만 봐도 그렇지요. 이제와서 구름이한테 사람들 잘 먹고 살게 논밭에 비 뿌려주고 하는 소원이 다 무슨 소원인가 싶어지는 차가움입니다. 고작 열 네 살짜린데요! 옛적이야 어릴 때에 결혼한다고는 하지마는, 그래도 모두를 위해 자진해서 죽겠다 한 것도 아니고 네가 죽어야 우리가 사네 마네 하며 끌려 나와 죽게 된 처지로서는 대단히 잘 참은 것 아닙니까!
여태 도깨비들 말 따르면서 얌전히 있던 것만도 아주 기특합니다. 최근에는 친구가 된 도깨비의 입을 빌려 사실은 얼구슬을 만들기 위해 미르에게 바쳐진 존재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몸을 다친 까닭에 얼구슬이 될 수는 없었다는 것도, 그리고 여우 구슬로는 그런 짓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여기서 구름이가 할 수 있는 게 반항과 비뚤어짐 외에 또 뭐가 있겠습니까? 이 세계의 어른들이란 참으로 무책임하고 잔인하고 이기적이고, 하여간에 애들 교육에는 좋지 않은 어른들이 틀림없습니다.
그래도 당장은 단단여의 엄마였던 여우 구슬 우불여를 사용할 줄도 알게 되었고, 모두 죽여버려야겠다고 빌런 각성도 하였어요. 천성이 착한 사람이라지만 이쯤 되면 다 쓸어버리고 모두 없애는 게 솔직히 새로 태어날 이 땅의 아이들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겠냐는 생각이 듭니다만……. 그렇게 진행하면 글이 이상해지겠죠. 아무튼, 제목대로 구름이는 비를 내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소녀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도깨비들이 바랐던 바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깡철이랑은 맞짱을 뜰 수 있겠군요.
사실 여기까지 오고 나서는 구름이가 자기 자신의 살길을 개척하러 여우구슬을 가지고 멀리 떠나가고 그녀의 고향과 그 고장의 미르는 깡철이와 나티에게 당하였다 요런 식으로 끝나는 게 굉장히 권선징악적인 느낌이지만, 좀 과격하지요. 그래도 여태 한 게 헛짓거리 되는 건 작가님 보기에 조금 아까우실테니 약간 정도는 그 고장의 일을 해결해주고 물 뿜으며 히어로처럼 하늘 날아 떠나가는 건 어때요……. 바보처럼 그렇게 당하고도 다른것들 도와주겠다고 하면 답답해 속이 터질 것만 같은 이 기분…….
크흠. 시선을 돌려서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거마실’이라는 아실은 무엇이건대 길타니라는 넋을 데리고 있나요? 일단 선악을 판별해주는 모종의 존재인 것 같기는 한데 수수께끼네요. 저도 아실에 관해 좀 더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징벌을 내리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만 확실해 보이네요. 지역 담당 경관 같은 느낌인가? 모길놈의 목을 따주었으면 정말 좋은 캐릭터가 되었을 텐데, 하는 소소하고 개인적인 감상 포인트도 있었습니다.
모험기를 좋아하기에 이 글은 꽤나 흥미로웠어요. 구름이가 씩씩한 소녀이고, 글 분위기상 큰 위험에까진 빠지지 않을 것 같고, 악을 징벌하는 존재 자체는 따로 있는데다 그가 구름이를 벌할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보이며, 도깨비들도 농담을 좋아하고 유쾌하여 중반까지는 즐거운 기분으로 읽었습니다. 이후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네요! 하루에 한 번씩 작가님을 독촉하러 찾아뵈어야겠습니다. 작가님, 다음편은요?
다소 횡설수설하던 감상기를 마칩니다. 블루스크린을 세 번이나 만나고 체념하여 적은 리뷰라서 빠진 게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중요한 건 어찌 다 적은 모양입니다. 감상문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모쪼록 모길을 편히 죽이지 않으실 거라고 굳게 믿으면서……. 깡철이와 나티들이 나오는 본론을 기다리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