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어려움. 그래도, 잘 살고 있나요? 감상

대상작품: 잘 살고 있나요?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노말시티, 17년 10월, 조회 46

휴안님의 작품을 여럿 읽어 보았습니다. 이미 리뷰를 받으신 글도 많더라고요. 리뷰가 없는 이 글, <잘 살고 있나요?>를 골랐습니다. 감상을 적기 전에, 다른 글들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 할까 해요.

가장 처음 읽은 글은 <이것은 꿈이 아니다>였습니다. 감상은… <무녀>에 대한 리체르카님의 리뷰와 비슷해요. 초반에 여러 의문들이 던져지는데 답은 주어지지 않고, 주인공이 움직이는데 목표도 목적도 흐릿하네요. 4장부터는 본격적인 사건들이 시작되는데, 3장까지의 템포가 너무 느려서 아쉬웠습니다. 연재 회차가 쌓이면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반면에 <월하가인>은 흥미로왔어요. 사건들이 착착 진행되는 느낌입니다. 단편을 장편으로 개작하신 건데, 이처럼 연재 회차 하나 하나가 단편이라고 생각하시면 글이 훨씬 박진감 넘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못 지키는 걸 지적하려니 부끄럽지만, 원래 리뷰란 게 그런 거 아닌가요. ^^;;;

<나는 오늘 사람을 죽였습니다>도 괜찮았어요. 어떻게 결론이 날까 궁금하더라고요.

플롯을 먼저 짜지 않고 써나가면서 만드는 스타일이 아니신가 생각이 들어요. 아니면 있는데 보여주지 않으시거나. 독자들은 보지 않으면 모르니까요. <무제>, <무녀>, <이것은 꿈이 아니다>라는 제목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듯이요. 대신에, 작품 전반을 흐르는 신비로운 분위기는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조금만 템포를 빨리 가져가시고 짜임새와 꼼꼼한 퇴고를 더한다면 독자 입장에서 훨씬 즐겁게 읽어나갈 수 있을 듯해요.

 

사설이 길었습니다. 그럼 제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잘 살고 있나요?>에 대한 감상을 적어 볼께요.

사람을 대하는 행위는 언제나 제게 어려운 주제입니다.

이 글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쇠사슬과 끈, 실로 상징되죠. 쇠사슬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씌워진, 끊을 수 없는 인연입니다. 가족이죠. 반면에 끈과 실은 내가 부여잡은, 언제든지 끊어질 수 있는 인연들입니다.

가족은 우리에게 무엇인가요. 어렸을 때는 세상의 전부입니다. 자신의 목에 쇠사슬이 걸려 있다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그 쇠사슬에 의지하죠. 그 관계에 맹목적으로 의지하는 게, 나에게 필요한 모든 관계의 전부입니다. 결국엔, 환상이지만요.

아이의 몸에 깃든 성스러운 잎사귀는 그 아이가 환상을 부정하는 순간 바스라집니다.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흙을 밟은 새 신발은 다시 하얘지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언젠가 우리는 쇠사슬을 벗어나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목에 감긴 쇠사슬은 영원히 끊어지지 않습니다. 영원히요. 우리가 흙길을 걸으며 각양각색의 실타래들을 새로 잡는다 해도 목에는 여전히 쇠사슬이 남아 있죠.

한때 유행했던 새끼손가락의 붉은 실은 이미 끊어진 지 오래입니다.

어느 날, 문득 펼쳐 본 손바닥에는 단 세 가닥의 실만 남아 애처롭게 저를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전자는 연인, 후자는 아이들이겠지요. 목에는 여전히 녹슨 쇠사슬이 걸려 있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세 가닥의 실을 그러쥡니다. 실들이 나를 무시하고, 경멸하고, 힐난해도, 내키는 대로 나를 대해도, 최선을 다한 도움을 무시당해도요.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 쇠사슬 대신, 언젠가는 놓쳐버릴 실에 집착하죠.

그러다 결국, 허공 속에서 껍데기만 흩날리게 됩니다.

관계란 무엇일까요. 왜 어떤 관계는 실처럼 사그라져 버리고, 어떤 관계는 쇠사슬처럼 옭매는 걸까요. 왜 우리는 단단한 쇠사슬을 붙잡지 않고 결국에는 놓쳐버릴 실을 그러쥐려 애쓰는 걸까요.

상징을 다시 돌아봅니다. 나의 목에는 부모와 형제가 채워 준 쇠사슬이 걸려 있는데, 왜 나는 아이들의 실만 쥐고 있는 걸까요. 그 둘은 결국 같은 게 아니었을까요. 나의 가족이 쥐고 있던 것도 실이었고, 내가 아이들에게 채워 준 것도 쇠사슬이 아니었을까요. 나의 부모도 사그라질 실을 잡고 있고, 나의 아이들도 녹슨 쇠사슬을 목에 걸고 있는 건 아닐까요.

관계는 중요합니다. 어쩌면 존재의 전부죠. 그걸 빼고 나면 우리는 정말 허공 속의 껍데기일 뿐인지도 모릅니다. 그 관계는 동등하지 않습니다. 한 쪽에서는 쇠사슬이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실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관계의 비대칭에서 비극이 시작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관계에 상처 받지 않으면서 그 관계를 놓지 않을 수 있을까요. 답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모르겠어요.

휴안님의 섬세한 묘사들을 따라가며, 한 번 생각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다들, 잘 살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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