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퓨전은 쉽다는 인식이 있다. 그저 전에 섞어본 적 없는 두 소재를 섞기만 하면 된다는 것. 그러나 그 퓨전의 결과물이 두 소재가 시너지를 일으킨 명작이 될지, 이도 저도 아닌 개밥이 될 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고구마와 김치처럼 찰떡궁합으로 어울릴 수도 있지만, 초콜릿 김치찌개 같은 희대의 괴식이 될 수도 있다.
‘도시사람에게 익숙하지 않은 농촌’이라는 테마로 문을 여는 이 소설은 필자로 하여금 철 지난 옛날 콩트를 떠올리게 한다. 미지를 여행하는 한 탐험가가 한 원주민 상인을 만나서 물건 값을 치르려면 조개껍데기를 채집해 와야 하느냐고 묻자, 원주민이 VISA나 마스터 카드로 결계하면 된다고 말했다던 콩트. 이 소설에 나오는 유머들은 대부분 이 전개방식을 따른다. ‘시골 사람들은 무식하고 우악스럽고 비인간적인 사고방식을 가졌다.’라는 편견이 머리에 박힌 도시사람 미호가 자기 나름대로 상황을 해석하고 행동하면, 주위의 시골 사람들은 ‘우리가 아무리 시골사람이긴 해도 그 정도로 정신 나가진 않았어!’라고 핀잔을 주는 식이다. 어쩌면 우리가 갖는 막연한 공포와 걱정은 전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한번쯤 돌아보게 하는 콩트들이 작품 안에 하나씩 삽입되어 있다.
필자는 이 소설을 일종의 어반판타지라 분류하기로 했다. ‘일종의’라 표현한 이유는 여타 기존의 어반 판타지와 차별성이 분명하게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보통 어반 판타지의 특징은 개방된 상황과 자유로운 통신에 있다. 독자들이 흔하게 접하는 일상이 비일상과 접촉하면서 비일상에 일상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드레곤이 도시에 불을 뿜기 시작하면 소방관들은 어떻게 대처할까 같은)를 즐기는 장르라고 해석했다. 이 소설 이계리 판타지아는 외진 시골이라는 장소의 특수성으로 극히 폐쇄적이며 경찰에 신고해도 한참 걸려 올 만큼 통신이 자유롭지도 못하다. 전통적인 어반판타지 장르보단 호러 장르에 더 어울리는 세계관이며 실제로도 콩트를 제외한 장면들은 호러의 성향을 띄고 있다. 호러와 콩트의 믹스라고나 할까. 다행히 콩트 파트와 호러 파트는 분명한 선을 그으며 나뉘어있기에 서로의 분위기를 해치는 일은 없다.
이 소설을 어반판타지로 분류해야 할지 신전기로 분류해야 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주인공 미호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평범한 인물은 맞지만, 극중에서 과거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으며 미호를 제외한 이계리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가 평범한 등장인물들이 아니기에 ‘일상을 침범해온 비일상’이 아니라 ‘비일상을 침범해온 일상’인 셈이다. 작가가 이미 규정했듯이 여지껏 유례없는 ‘시골판타지’로 정의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선택일 거라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