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토끼와 밤의 비밀 여행>을 읽으면서 어릴 적 읽었던 동화책들이 떠올랐습니다. 좀 더 나이를 먹은 후 읽게 되는 보통 소설책과는 다른, 납작반듯한, 가볍고 얇은, 매끈한 하드커버의 동화책들은 처음 펼칠 때 쩍쩍 소리가 나곤 했죠. 그렇게 같은 동화책을 여러 번 읽고 나면 책등은 햇빛에 바래서 생기를 잃고, 더 이상 새 동화책의 쩍쩍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죠.
딱딱 떨어지는 각각의 문단들은 각각 동화책 속의 한 장을 상상해보게 했어요. 이 장면은 이런 그림이 들어가지 않을까, 설탕가루가 등장할 때는 그림에 맨질맨질하게 반짝이는 코팅 처리를 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상상이요. 대신 그렇다보니 글이 어떤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하더라고요. 분명 동화책으로 만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계속 드는데, 그렇게 하기엔 짧은 기승전결로 끝나는 글이 아닌 연재작이죠.
그래서 그보다 조금 더 두꺼운, 아동 대상 도서라면 어떨지 생각해봤어요. 큼지막한 글씨에 가끔씩 삽화가 등장하고, 누구나 겪는 일상에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더해진 책. 그렇다면 그 나이 대 안경을 쓰기 시작한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소재를 더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저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안경을 쓰기 시작했었는데 가장 뚜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칠판의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던 것뿐이네요.
그리고 좀 더 토끼의 특징을 살려서 자세하게 묘사한다면 생생하게 다가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까지는 채소를 좋아한다는 것이나 매우 인간적인 속성밖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토끼의 털 색깔과 같은 생김새에 대한 추가적인 묘사, 소리에 민감하다는 것과 같은 성향, 토끼의 특징적인 움직임 등이 추가된다면 토끼가 더욱 입체적으로 느껴질 것 같아요. 귀가 쫑긋한 토끼가 과연 어떻게 생긴 안경을 어떻게 쓰고 있을지도 궁금해요.
마지막으로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똑똑한 안경토끼의 모습과 시계토끼가 겹쳐 보이는데, 안경토끼도 송이를 다른 세계로 이끌어갈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토끼는 대체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지, 이러한 동물들이 더 있는지도 궁금하고요. 또 토끼가 함부로 안지 말아달라고 했던 이유가 훗날 어떤 사건에서 밝혀질지도 기대됩니다.
굉장히 동화적이어서 재밌었어요. 어쨌든 이런 글은 브릿G가 아니라 종이책으로 볼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송이와 안경토끼가 다음엔 어떤 모험을 떠나게 될지 알고 싶습니다.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