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과학을 좋아했던 이유는 그것이 ‘증명된 사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세상은 어디서 왔고 어떻게 돌아가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꽤나 명료하게 설명해주는 검증된 학문에 아주 매료되었습니다. 원리만 알면 백발백중 들어맞는 것만 같고, 각종 교양서적으로 얻은 잡지식들을 설명하며 잘난체하는 재미도 쏠쏠했죠. 하지만 커가면서 인간이 하는 학문들의 한계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믿었던 과학으로부터 배신당하게 됩니다.
‘패러다임(Paradigm)’은 토마스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처음 등장한 단어입니다. 한 시대가 갖는 세계에 대한 인식의 틀이나 체계를 말하죠. 이 패러다임은 시간이 지나고 지식이 축적됨에 따라 필연적으로 전환을 겪게 됩니다. 이는 발전이나 보완보다 과격합니다.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이동했던 것처럼, 과학 혁명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때 만난 화학 선생님은 책에 나오는 과학 이론들을 맹신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특히 눈에는 보이지 않는 원자의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되어온 원자 모형들을 배울 때 그러셨죠. 건포도가 섞인 플럼 푸딩에서 오비탈이 되기까지의 역사를 배우다보면 오늘날의 최신 모델마저도 언젠간 과거의 것이 되리라 생각하게 됩니다. 교과서에 실려 정규 교육과정으로 배우는 내용조차도 이론이고, 모델에 불과했습니다.
동시에 이 사실은 상상력에 대한 열망에 불을 지폈습니다. 꿈속에서 꼬리를 문 뱀을 보고 동그란 벤젠(C₆H₆)고리를 그려낸 일화는 유명하죠. 고대로부터 상상되어온 우로보로스가 생각납니다. 자로 잰 듯 맞아떨어지는 학문인줄만 알았던 과학은 사실 인간의 상상력을 양분으로 자라왔습니다. 진공의 연구실에서 탄생한 실험 결과들은 객관적인 듯하나, 뜯어보면 연구자들의 편견이나 선입견에 큰 영향을 받기도 하고요. 과학은 사실, ‘증명된 사실’이 아니라 ‘증명된 상상’이라고 볼 수도 있을런지요.
<증명된 사실>을 읽자마자 저는 <인터스텔라>를 떠올렸습니다. 2014년 흥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SF 영화, <인터스텔라>는 말 그대로 픽션입니다. 그러나 작업에 실제 이론물리학자가 자문위원으로 참여하였고, 그 과학자는 최근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죠. 첨단 과학 이론을 통해 완성된 픽션은 아주, 증명된, 상상이 됩니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실제로 일어난 일도 아니고, 그러니까 배경도 미래로 설정되어 있죠. 하지만 그럴싸하잖아요.
제가 여전히 과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증명된 상상’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간 뒤집어질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기발한 상상이, 치밀한 검증을 거쳐 과학이 되었다는 사실에 아주 매료되었습니다. <증명된 사실>은 지극히 상식적인 과학지식을 기반에 두고 거침없이 상상력을 펼쳐나갑니다. 오컬트로 여겨졌던 유령의 존재는 순식간에 물리법칙의 도마 위에서 난도질당하고, 독자들은 그 전시를 통해 ‘증명된 상상’과 조우하게 됩니다.
전 마지막에 소름이 쫙 끼치면서 눈물을 흘렸을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3달 전쯤에 처음 읽고도 계속해서 문득문득 생각나는 것이, 꼭 리뷰를 작성하라고 그런 것이었나 봅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여러분들이 있다면, 곧, 믿게 되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