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접리뷰] 세 가지 문제와 두 곡의 플레이리스트 감상

대상작품: 세 가지 문제 (작가: 사피엔스, 작품정보)
리뷰어: 아침은삼겹살, 2시간 전, 조회 6

일단 고백부터 하나 하겠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읽는 데 거의 3주가 걸렸습니다.

230매가 넘어서만은 아닙니다.

중간중간 제가 딴짓을 엄청 했습니다.

읽다가 다른 글 보고, 뭐 하나 검색하고, 또 읽다가 다른 작품 들어갔다가, 갑자기 냉장고 문 한번 열어보고, 다시 돌아오고…….

저는 원래 오독이 일상화된 집중력 바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제가 지금부터 이 작품 230매 전체를 완벽하게 분석하겠다고 하면 그 순간부터 이 리뷰가 SF가 됩니다.

그런 미래 기술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세계관도  설정도 어마어마합니다.

워프가 있고, 토르카라는 이상한 생물이 있고, 감응관이 있고, 블랙홀이 있고, 별난 물질이 있고, 전쟁이 있고, 함대가 있고, 가족 문제가 있고, 정부와 조직 이야기도 있습니다.

읽다 보면 마치  장편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처럼 설정들이 장면 뒤로 계속 스쳐 지나갑니다.

저기 뭔가 지나갔는데요?

아, 세계관 설정이군요.

저기 또 지나갔는데요?

아, 그것도 중요한 설정이군요.

잠깐만요.

좀 천천히 가시면 안 됩니까?

대충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걸 제가 전부 설명할 능력은 없습니다.

미리 알려드립니다. 이건 제 능력 밖이고  다른 능력자  작가님들이 다른 리뷰로 써 주셨습니다.

다만 신기한 건 그렇게 제가 3주 동안 끊었다 붙였다 하면서 읽었는데도

다시 펼치면 읽혔다는 겁니다.

설정이 이만큼 들어갔는데도 문장이 걸리지 않고, 다시 들어갈 때마다

“그래서 얘가 누구였지?”

“우리가 지금 어디 우주였지?”

하면서 앞부분으로 구조 요청을 보내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저 같은 집중력 바보도 끝까지 데려갔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상당히 유려하게 쓰였고  작가님의 엄청난 능력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작품 전체를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제목이 「세 가지 문제」잖아요.

저도 딱 세 가지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첫번째 문제.

토르카입니다.

우주선이 워프하는 방법은 SF에서 참 많이 봤습니다.

무슨 상전이 엔진도 있었고,

초공간 항법도 있었고,

블랙홀을 어쩌고저쩌고 하는 엔진도 있었고,

제가 어릴 때 봤던 「기동전함 나데시코」나 「무책임함장 테일러」 같은 작품에도 별별 괴상한 장치가 다 나왔습니다.

그래서 저도 압니다.

우주선은 원래 뭔가 어려운 걸 달아놓고 날아가는 물건입니다.

이해하지 못해도 됩니다.

작동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조금 다릅니다.

인류가 워프 엔진을 발명한 게 아닙니다.

워프할 줄 아는 애를 잡았습니다.

저는 여기서 이마를  탁  쳤습니다.

아니.

그 방법이 있었습니까?

토르카라는 생물인지 존재인지 아무튼 그런 녀석이 있고,

인간은 그 녀석을 데려다가 블랙홀에서 나오는 어떤 물질에 담가놓고 워프를 시킵니다.

그러니까 이 우주선은 버튼 누르면 기계가 알아서 날아가는 게 아닙니다.

토르카가 해줘야 합니다.

인류는 워프의 원리를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워프하는 애의 비위를 맞추는 방법을 익혔습니다.

이것도 기술 발전이라면 기술 발전이겠지요.

아무튼 갑니다.

그리고 읽다 보면 이 토르카가 은근히 귀엽습니다.

떼도 씁니다.

취향도 있습니다.

비위를 잘 맞춰주면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이쯤 되면 워프 엔진인지 반려동물인지 헷갈립니다.

물론 나중에는 주인공 말을 더럽게 안 들어서 발암 포인트가 생기기도 합니다만,

말하는 게 대체로 귀엽습니다.

왜 이 녀석이 귀엽게 느껴지는지는 세 번째 문제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복선입니다.

저도 가끔 이런 걸 깔 줄 압니다.

두 번째 문제.

유성과 혜성입니다.

자매입니다.

그리고 사이가 콩가루가 났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저는 부모님이 늘 하시던 농담이 생각났습니다.

“어쩜 한자리에서 나왔는데 성격이 이렇게 정반대냐.”

저와 제 동생 이야기입니다.

정말 안 맞았습니다.

같은 집에서 자라고, 같은 부모 밑에서 크고, 비슷한 밥을 먹고, 비슷한 일을 겪었는데도

대체 왜 저 인간은 저렇게 생각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아마 형제나 자매가 있는 분들은 조금 아실 겁니다.

남이면 그냥

“아, 저 사람은 나랑 다르구나.”

하고 지나가면 됩니다.

그런데 형제자매는 이상하게 그게 잘 안 됩니다.

같은 집에서 컸으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나랑 같은 기억을 공유하니 알 것 같고,

그러면서 정작 서로 제일 이해가 안 됩니다.

우리 집에서 같이 자란 저 생명체는 대체 왜 저런 결론에 도달했는가.

가끔 생물학부터 의심하게 됩니다.

유성과 혜성도 그렇습니다.

혜성에게 유성은 자기 꿈을 짓밟은 언니고, 책임도 제대로 지지 않고 사라져버린 사람입니다.

인수인계도 안 하고 사라진 전임 사수입니다.

직장인 입장에서는 이것만으로도 이미 중죄입니다.

그런데 작품이 진행될수록 혜성이 알고 있던 유성의 모습에 조금씩 다른 정보가 붙습니다.

그렇다고 갑자기 둘이 사이좋은 자매가 되는 건 아닙니다.

이미 생긴 상처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요.

다만

“대체 저 인간은 왜 그랬나.”

라는 질문을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저는 그 정도가 좋았습니다.

가족이라고 무조건 완벽히 이해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오해가 더 많을 수 있습니다.

성간 어디든 데려다줄 수 있다는 토르카 할애비가 와도 이 거리는 줄이기 힘들었을 겁니다.

몇 광년은 토르카가 접어버리는데,

같은 집에서 자란 자매 사이 몇 미터는 그렇게 쉽게 안 접힙니다.

우주보다 가족이 어렵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두 번째 교훈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문제.

음악입니다.

저는 이 설정이 제일 좋았습니다.

주인공 혜성이 맡는 역할은 감응관입니다.

말이 거창한데 아주 거칠게 설명하면

“토르카와 사이좋게 지내십시오. 그래야 우주선이 갑니다.”

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굉장한 직업입니다.

성간항해의 운명이 인간과 우주생물의 친목 상태에 달려 있습니다.

옆집 리트리버나 치즈고양이라면 쉬울 겁니다.

먹이를 바치면 됩니다.

간식 좀 사주고, 머리 긁어주고, 비위 잘 맞추면 어느 정도 성공하겠죠.

저라면 일단 츄르부터 들고 협상에 들어가겠습니다.

문제는 토르카에게 그 역할을 하는 게 음악이라는 겁니다.

작품 뒤에서 설명이 붙긴 합니다만, 이 음악은 거의

“나라가 허락한 합법적 마약”

같은 역할을 합니다.

 저는 그냥  음악이라는 선택 자체가 좋았습니다.

음악은 언어 신호는 아닙니다.

가사가 없는 음악이라면 더 그렇습니다.

그런데 같은 음악을 듣고 있으면 묘하게 같은 공간이 펼쳐지고  같이 들어온 느낌이 생깁니다.

말이 안 통해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같은 곡을 좋아하면 잠깐 같은 곳에 서 있는 느낌이 듭니다.

말로 “저와 감응해주십시오”라고 부탁하는 것보다 음악 한 곡 같이 듣는 게 훨씬 그럴듯합니다.

토르카와 인간은 아예 종이 다릅니다.

그런데 음악을 통해 감응합니다.

이 작품에서는  구체적으로  두 곡이 나옵니다.

유성의 「민들레처럼」.

그리고 혜성의 「핑갈의 동굴 서곡」.

저는 「민들레처럼」은 듣지 않아도 알았습니다.

유명한 민중가요니까요.

그리고 혜성이 왜 그 노래를 극혐하는지도 바로 이해했습니다.

저도 대학교 새내기 때 수천만 번 들은 「바위처럼」은 지금 들어도 약간 헛구역질이 나는 느낌이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죄송합니다.

노래가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정말 많이요.

제가 바위가 될 때까지 들었습니다.

그래서 혜성에게 약간의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그래. 싫을 수 있어.”

그런데 「핑갈의 동굴 서곡」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읽다가 중간에 검색해서 직접 들어봤습니다.

그리고 알았습니다.

아.

왜 이 두 노래였는지를

「민들레처럼」과 「핑갈의 동굴」은 아예 사람이 다릅니다. 취향도 사는 방식도 꿈도

유성과 혜성이 다른 만큼 음악도 다릅니다.

이건 곡 제목만 보고 넘어가면 조금 아깝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을 생각이 있으시거나, 다시 한번 읽으실 생각이 있으시다면

제가 감상법을 하나 제안하겠습니다.

우선 유튜브 뮤직을 켜십시오.

광고가 나오면 알아서 처리하십시오.

유성이 나오는 회상이나 추측 장면.

특히 초반부터 중반까지 인수인계도 없이 사라진 본인의 전임 사수이자 언니를 혜성이 떠올릴 때는

「민들레처럼」을 틀어보십시오.

그리고 혜성이 자기 꿈을 생각할 때.

후반부 첫 함대 전투.

그리고 이 주인공이 다소 나이브하게 애처럼 굴 때.

「핑갈의 동굴 서곡」을 틀어보십시오.

왜 그러냐고요?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그냥 한번 해보세요.

저는 중간에 우연히 그렇게 해봤다가

“아.”

했습니다.

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작품 안에서는 감응관과 토르카가 음악을 통해 감응하고 공감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독자인 저도 음악을 틀어놓고 읽으니 잠깐 그 공간에 들어간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제가 제일 재미있게 읽은 설정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블랙홀 안에 숨긴 은신처는 실제 구현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럴듯해서 웃었습니다.

아니, 블랙홀 안에 토르카를 보호할  은신처가 있다는데 읽는 저는

“음.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비밀결사 이야기로  이야기가  드리프트를 하는 건 제 취향에는 맞지 않더라고요.

그 설정으로  「민들레처럼」이 선곡된 게 이해는 되었습니다만, 왠지 아쉽다는 점은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너무 길어졌네요.

세 가지만 이야기한다고 해놓고 세 가지를 왜 이렇게 오래 이야기했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그만 돌아가야겠습니다.

끝으로 제 최애 음악은 매일 바뀌긴 합니다만, 대체로 시끄럽고 머리 흔드는 취향임을 알려드립니다.

좋은 음악을 들으면 고개부터 움직입니다.

품격은 나중 문제입니다.

아.

그거 말고 소싯적에 한번 듣고 뇌리에 박힌 클래식은 「진노의 날」입니다.

왜냐고요?

당시에 오락실에서 하던 격투게임 최종보스 BGM으로 들었습니다.

보스의 개간지 카리스마에 그냥 넘어갔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부터

“아, 이분은 지금부터 저를 조지실 생각이시구나.”

라는 의지가 음악에서 느껴졌습니다.

굉장히 정직한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약 감응관에 임관한다면 이 노래를 들려줄 겁니다.

토르카의 취향이요?

효과적 항해를 위해…

저한태  적응해야죠.

저는 카리스마가 넘치니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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