봐줄 만합니다. 아직, 한참이나. 공모(감상)

대상작품: 봐줄 만 하던가요? (작가: 사사일, 작품정보)
리뷰어: 윤휘, 1일 전, 조회 24

어른이 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언제나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였으리라 생각한다. 시대와 동서를 막론하고, 그 구체적인 명칭은 달랐을지언정, “어른” 비슷한 것으로 불려야 할 순간이 찾아오는 것은 누구에게나 말이다.

 

누군가는 저 물음 속의 “어른”을 두고, “성숙함”이나 “철듦”으로 바꾸어 읽을 수도 있다. 또 다른 누구는 너무나도 간단히, “나이를 먹음”으로 대치할 수도 있겠다.

 

과연 그러할까. 우리가 나이를 먹었다고 하여, 어른이 되었다고 자신할 수 있었나. 고작 세월을 몇 모금 더 벌컥거렸다 한들, 아직 덜 자란 마음씨가 부끄럽다 여긴 적이 과연 없어졌는가. 그러니 고작 시간을 삼켜왔다는 것만으로는, 어른스러움을 담아내지 못한다 할 것이다.

 

성숙함이나 첢듦은 어떠한가.

이루어지고(成) 익은(熟) 상태.

절기와 계절(철)이 몸에 밴(든) 상태.

살피고 살피면, 어느 쪽이건, 단지 시간만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으로 말미암아 무언가를 이루거나 익힌 모양이 된 것을 가리키는 듯싶다.

 

왜 그러한가. 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른이 아니었을 때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 상태가 되어야 하는가.

 

아니, 이 둘의 뜻을 보아하니, 애초에 질문이 잘못된 듯하다. 질문을 바꿔 보았다.

 

 

왜 “어른이 됨”은 무언가를 꼭 의미해야만 하는가.

 

 

지키기 위해. 그것도 다음 세대를 지키기 위해.

나는, 내가 스물넷이 되었을 즈음부터, 그리 생각하기로 했었다.

 

 

이유는 다소 간단했다.

 

 

어른이라는 것이 있다면, 응당 어른이 아닌 것이 있을 뿐이기에.

 

 

생의 시작도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가 없듯 어른으로 내몰리기만 하는 우리에겐,

마치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책무를 짊어져야만 하는 듯한 우리의 뒤엔,

아직 그 경계를 넘어오지 못한 자들만 남아 있을 뿐이기에.

언젠가 등 떠밀려 우리를 따라올 그들이 있을 뿐이기에.

 

 

그러니 그들이 잘 따라올 수 있도록, 어른이 아직 되지 못한 새싹들을 위하여 걸어나가야 한다.

그런 이유라도 떠올리지 못하면, 그저 내몰리기만 했다는 무상감에 휩싸여 무너지는, 언어를 사용하는 한낱 짐승으로 끝을 맺고야 말 것이기에.

 

 

따라서 우리는 어른이 된다는 것을,

철이 든다는 것을,

성숙해진다는 것을,

그 아주 무거운 책임을 지는 것을,

아주 달갑게 받아들일 때에야 비로소 먼저 걸어왔음이 텅텅 비어있지 않다고 만족하며 갈 수 있을 것이다.

 

 

생의 시작이 피투적인 폭력이었으므로,

어른으로 내몰리는 것도, 내몰렸지만 내면 깊이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도 모두 폭력이리라.

먼저 가는 것이 순리겠지만, 그러한 끝마저도 폭력으로 얼룩진 것이,

그만큼 무상하다거나 몰가치하다고 돌아볼 법한 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마치 인생이란, 아무 의미 없는 세계에, 갖은 빛깔의 의미를 덕지덕지 칠해가는, 원치 않는 예술이 아니던가.

 

 

그러니 그 예술의 목적을, 나는 그렇게라도 잡아 놓아야 한다고 믿기로 했다.

 

 


 

 

그러니 작품 속의 “뒤따라올 이”에게, 나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나이가 찼다 하여, 사회나 법제가 책임을 묻는다 하여, 그것이 어른이라 생각지 말자고.

오로지, 다음에 뒤따라올 이를 위해 얼마나 똑바로 걷고 있는지 신경이 쓰일 때.

그때 비로소, 자신을 어른이라 생각하자고.

 

 

아마 추측건대, 당신도 알고 있지 않느냐고.

짧은 인생 그간 살아오며 어리광부리고 기댈 어른이 하나 없었던 당신이라면,

어른이 아닌 것들의 어리광을 받아야 하고, 기댈 수 있게 곁을 내주어야 하는 게 어른임을 당신도 알고 있지 않느냐고.

 

 

다른 이를 속여도 보았고, 자신을 내팽개쳐도 보았고, 곯아도 곪아도 보았고, 딱지가 붙어도 보았고, 누군가를 흘려보내도 보았고, 움푹 찔려도 보았던 당신이라면.

아직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이 부족하다 걱정하는 당신이라면.

더 부족할 누군가를 위해, 곁을 더 많이 내어줄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음을, 당신도 알고 있지 않느냐고.

 

 

그러니, 어른이 되는 순간 여태껏 추레했던 모습을 보이지 않겠노라 다짐하기보단,

추한 눈물을 흘렸으니, 눈물샘을 굳히려 하기보단,

마음껏 추레한, 까닭 없이 울음을 터뜨리는 “따라올 것들”을 누구보다 먼저 감싸 안아주는 어른이 될 수 있음을.

당신도 알고 있지 않겠느냐고.

 

 

 

그러나 나는 한 가지를 더 전하고 싶습니다.

 

 

 

나는 일찍 철이 든 아이들을 떠올리면,

너무 이른 때에 앞으로 넘어져 선을 넘어버리면,

그래서 아직 그 그림자가 선 뒤편에 그대로 남아 있으면.

나는 그런 아이들을 보면, 괜스레 그러나 너무나도 분명히,

가슴이 찡-하곤 합니다.

 

 

그러니까,

아직 열흘 남짓 남은 당신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렸다는 어리광은,

봐줄 만합니다.

아직, 한참이나.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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