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진입하시는 분들을 위한 2부 줄거리] (요약은 아닐지도)
「Sapere Aude」
「Sapere Aude」는 1부에서 억눌러온 헥토르의 신학적·존재론적 의문이 처음으로 언어화되고 공동체를 얻는 전환점이다. 에미르라는 무조건적 사랑의 존재를 잃은 자리에, 이번에는 “함께 의심하는” 또래 집단이 들어서며 헥토르의 성장은 이제 ‘애도’에서 ‘질문’과 ‘반항’의 국면으로 넘어가게 된다. 제목 자체가 이미 이 화의 주제를 압축한다. 신들의 뜻에 순종하는 것만 알던 존재가, 처음으로 “감히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배우기 시작하는 이야기. 실상은 말 그대로 ‘사춘기’의 방황이다.
에미르가 떠난 지 석 달, 헥토르는 이제 중학생이 되어 전 과목 A와 영재(GT) 프로그램 추천을 받는 우등생으로 지낸다. 그는 이 사회에서 “상식”이라는 것이 지식보다 앞선 토대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사고방식이 이곳 사람들과 근본부터 다르다는 것을 절감한다. 에미르가 남긴 회중시계와 말 조각을 소중히 간직하며, 그가 죽기 전 남긴 “네 시간을 살아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계속 곱씹지만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하던 중, 도서관에서 우연히 데이빗 존슨이라는 소년과 마주치는데, 그는 헥토르가 빌린 종교·신화·철학 책들을 흥미롭게 살피며 “재미있는 곳에 가보지 않겠느냐”는 의미심장한 제안을 건넨다.
결국 그는 칼 톰슨, 에머슨 무어, 데이빗, 헨리 밀러 네 명의 소년과 어울리게 된다. 이 소년들의 정체는 “이단자들(The Heretics)”이라는 비밀 클럽. 그들은 헥토르에게 니체의 “신은 죽었다” 구절이 담긴 책을 건네며 소리 내어 읽으라고 요구한다. 심장이 터질 듯한 두려움 속에서 헥토르는 그 구절을 읽어내려가고, 신들의 침묵이 이어졌던 자신의 지난 10년과 겹쳐지며 깊이 동요한다. 클럽의 암호는 라틴어 “Sapere aude”(감히 알려고 하라 — 칸트의 계몽 표어)이며, 소년들은 종이를 흩날리며 “신은 죽었다!! 감히 생각하라!!”를 외친다.
「금지된 질문들」
「Sapere Aude」에서 이단자 클럽에 발을 들인 헥토르가, 그 안에서 던져지는 질문들에 진짜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단자 클럽이 던지는 세속적이고 거침없는 질문들(신의 선함, 신앙의 필연성, 명예와 삶의 가치)이, 헥토르가 평생 억눌러온 “왜?”라는 질문을 강제로 끄집어내는 에피소드다. 동시에 트로이아 시절 회상(카산드라의 저주, 폴리다마스의 맹세)은 그가 지금 겪는 균열이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 두려움을 두려움이라 말하지 못했던 그 순간부터 — 이미 예비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명예로 지어졌던 헥토르라는 존재의 뼈대가, 이제 소년들의 질문 하나하나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차고에서 소년들은 “신은 정말 선한가”, “같은 신을 믿는데 왜 서로 다른 종교로 갈라져 전쟁을 하는가” 같은 질문들을 스스럼없이 주고받는다. 헥토르는 “선함이란 결국 인간의 기준 아니냐”며 신에게 인간의 도덕을 적용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지만, 에머슨은 “그렇다면 신은 그저 공포정치를 펴는 독재자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헨리는 한 발 더 나아가 “왜 신은 하찮은 인간이 자길 믿는지 안 믿는지에 그렇게 집착하냐”며 냉소하고 결국 헥토르는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진짜 두려움 — “너희는 어떻게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거지?” — 를 토해내지만, 소년들은 오히려 “왜 두려워해야 하는데?”라고 되묻는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다가 무너진 헥토르는 꿈에서 아내 안드로마케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떠올리려다, 정작 그녀에게 할 말이 트로이아의 언어로 나오지 않는 끔찍한 순간을 겪는다. 언어를 — 자기 자신을 — 잃어가고 있다는 공포에 그는 에미르의 (이제는 타메르가 청소만 하고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공방으로 달려가 목소리가 돌아올 때까지 필사적으로 옛 노래를 부른다.
소년들과 함께 쇼핑몰에 놀러 간 헥토르는 낯선 인파와 거대한 건물 속에서도 침착하게 방향을 파악해 소년들을 놀라게한다. 데이빗은 “짧고 유명하게 살래, 길고 평범하게 살래?” 늘 명예로운 삶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온 헥토르는 처음으로 “……모르겠어”라고 답하며 스스로도 당황한다.
과거회상에서 카산드라는 갑자기 리라를 떨어뜨리며 무너져 울고, “왜 자꾸 슬픈 것들만 보이는지 모르겠다”며 예언자로서의 저주를 처음으로 암시한다. 그녀는 “오라버니는 운명이 두렵지 않았어?”라고 애원하듯 묻지만, 전사이자 왕자로서 두려움을 말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 헥토르는 끝내 진심을 감춘 채 대답한다. “나는, 그걸 위해 태어났지 않니.”
「아이스크림 상자 속의 헤라클레스」
몰에서의 하루가 계속되며, 헥토르가 이단자 클럽 소년들과 맺는 관계의 진짜 의미가 드러난다. 그는 정보나 해답을 얻으려는 게 아니라, 이미 저주받았다고 믿는 자신이 죄책감 없이 완전히 무너질 수 있는 은신처, “안전한 죄악의 늪”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스크림(구유통 모양의 “Pig’s Trough”)을 먹던 중, 헥토르는 주변에서 백인 소년들 사이의 “이물질”을 보는 듯한 노골적인 시선을 느끼고, 헨리가 무심코 “홍수 때 구한 애들이랑 안 친해졌냐”고 묻자, 헥토르는 억눌러온 죄책감—자신을 구하려다 다리를 절게 되고 결국 죽음에 이른 에미르에 대한 죄책감—이 터져 갑자기 눈물을 쏟는다. (아 또 운다 이 아저씨 ㅠㅠ)
아케이드에서 격투 게임을 하던 헥토르는 화면 속 캐릭터(대리자)들이 죽었다 되살아나기를 반복하는 것을 보며, 신들이 인간을 이렇게 바라보았을지도 모른다는 소름 끼치는 생각에 빠진다. 잔혹한 게임과 영상에 열광하는 이곳 사람들이 실은 진짜 죽음을 몰라서 그것을 동경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자신에게 남은 생전의 기억은 오히려 사소하고 평범한 것들(아내의 머리카락, 온기)임을 깨닫는다.
학교 안팎에서 전혀 다른 얼굴을 쓰는 소년들의 이중생활이 그려지고, 그들은 총기 소지, 어린 시절 곤충을 잔인하게 싸움 붙이던 기억(제목의 유래: 헤라클레스 풍뎅이를 아이스크림 통에 넣고 싸움을 붙였던 헨리의 고백) 등을 통해 “인간은 본래 선한가”를 두고 격렬한 토론을 벌인다.
헥토르는 자신이 소년들과 함께 있는 진짜 이유를 직시한다. 처음에는 에미르의 신을 이해하기 위해서였지만, 이제는 그들과 나누는 “금지된 죄악”의 공범 관계 자체가, 완전히 타락한 죄인이 되어 구원의 희망조차 놓아버리고 싶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있다는 것을. 홀로 방에서 기도하며(신이 아닌, 잊혀가는 생전의 언어와 감각을 붙잡기 위해) 그는 파리스가 술에 취해 자신에게 매달려 울던 기억, 그리고 더 오래된 기억 — 트로이아 멸망의 예언 때문에 갓난아기였던 막내 동생을 내다버려야 했던 것, 아버지 프리아모스가 “그 아이를 죽인다면 우리의 파멸을 며칠이나 늦출 수 있겠느냐”고 물었던 참혹한 순간을 떠올린다.(파리스 같은 놈은 그냥 죽였어야지)
「Do ut des」
라틴어로 “네가 주니 나도 준다”—신에게 바치는 제물과 그 대가로 받는 은총이라는 고대의 거래 원리를 뜻하는 제목이다. 그리고 헥토르가 평생 신봉해온 “신실함=보상”이라는 믿음이 완전히 무너지는 파트다. 트로이아 시절 회상은 그의 영웅적 명성 이면에 숨겨진 끝없는 증명 강박과, 형제의 죽음을 홀로 짊어진 채 침묵해야 했던 왕자로서의 고독을 드러내며, 지금 그가 겪는 정체성의 붕괴가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 예비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헥토르는 신을 향한 자신의 헌신—두려움이기에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관계—을 회상하며, “너는 나를 시험한다”는 아폴론의 알 수 없는 말들을 순종으로 받아넘겼던 과거를 떠올린다. 현재로 돌아와 홀로 방에서 기도하던 헥토르는 극심한 해리 상태에 빠진다. 자신이 정말 그 “헥토르”가 맞는지, 얼굴조차 희미해져가는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고 있다는 공포에 짓눌리며, 극도의 자기혐오와 파괴적 충동에 휩싸여 미친듯이 자신의 살을 잡아뜯고 얼굴을 긁는 자해를 한다.
타메르의 식당에 걸린 소송이 데이빗 아버지(변호사)의 도움으로 해결되고, 동네 사람들은 여전히 “영웅 할아버지의 가족”을 든든히 지지한다. 학교에서는 헥토르를 놀리는 아이들에게 오히려 헨리가 격분해 폭발하고, 그 모습에 정작 헥토르가 당황한다.
트로이아 시절 회상에서는 동맹국 사절(코온, 아게노르)의 방문을 맞이하는 헥토르의 모습을 통해, “신과 같은 헥토르(Ἕκτωρ θεοειδής)”라는 명성이 대륙 전역에 퍼져 있었음이 드러난다. 아폴론은 끝없이 그에게 증명의 압박을 하고, 폴리다마스는 헥토르의 치솟는 명성을 걱정하며 “너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고 직언하지만, 헥토르는 자신의 신이 함께할 것이라 확신하며 이를 흘려듣는다.
「오만의 대가」
가장 많은 이야기들이 다뤄진다. 이단자 클럽이 학교 과제로 『일리아드』를 읽기 시작하면서, 헥토르는 자기 자신의 삶과 죽음이 “그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 해체되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
아내 안드로마케와의 다정했던 새벽 기억이 이어지고, 현재의 헥토르는 수영 후 들르는 목장에서 아무도 다가가지 못하는 사나운 말(과거 학대와 부상으로 사람을 물어뜯는)과 유일하게 교감하는 모습을 보이며 ‘말을 잘 다루는 사람’ 이라는 생전 별명을 재현한다. 손가락을 잃고도 헥토르에게 “형님”이라 부를 자격을 얻어 기뻐했던 이복동생 케브리오네스에 대한 회상도 등장한다.
클럽은 영문학 AP 과제로 『일리아드』 전체를 읽기 시작한다. 소년들은 여느 때처럼 거침없는 태도로 트로이 전쟁의 원인을 냉소적으로 해체한다. 파리스의 심판은 사실상 제우스가 책임을 떠넘긴 것, 헬레네의 구혼자 서약은 처음부터 정치적 담합, 전쟁의 진짜 목적은 트로이라는 무역 요충지 확보라는 식으로. 헥토르는 자신이 아는 진실(명예, 손님 접대의 신성함, 왕의 위신)을 필사적으로 설명하지만, 소년들은 그마저도 “결국 다 돈과 체면 문제”라며 가볍게 웃어넘긴다.
소년들은 농구(불스 대 로켓츠)에 빗대어 “아킬레우스=조던, 헥토르=제독”이라 농담하다가, 마침내 가장 핵심적인 통찰에 도달한다. 헥토르라는 존재 자체가 아킬레우스에게 “영원한 명예”를 안겨주기 위해 처음부터 죽도록 설계된 장치였다는 것. “헥토르가 죽지 않았다면 아킬레우스는 영원한 명예를 얻지 못했을 것”이라는 데이빗의 말에 헨리는 한층 더 냉정하게 정정한다. “정확히는, 아킬레우스가 영원한 명예를 택한 순간 헥토르의 죽음이 결정된 거야. 헥토르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지.”
“우리 게임에서 보스전할 때 생각해봐. 아까 아슬아슬한 게 재밌다고 했었잖아. 이것도 똑같은 거지. 헥터는 그리스군 입장에서 보면 최종 보스인 거 아니야. 근데 또 보스가 너무 약하면 안되잖아? 무시무시하게 강한 놈이어야 쓰러뜨렸을 때 이야아!! 하는 거지.”
“처음부터 헥터는 아킬레스가 멋지게 죽이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거야. 말하자면 그게 ‘존재의 의의‘인 거지.”
“안녕? 넌 원래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남의 이름이나 빛내주고 뒤지기 위해 태어났단다! 기쁘지? 씨발…세상에서 제일 좆같은 소리네.”
이 모든 대화를 들으며 헥토르는 소리 없이 무너져간다. 집에 도착한 헥토르는 극심한 해리성 발작에 빠진다. 목에 청동 창이 꿰뚫리던 죽음의 순간의 고통이 실제처럼 되살아나고, 안드로마케가 자신을 붙잡던 마지막 애원, 그리고 마침내는 그가 살아있을 때는 결코 목격할 수 없었던 장면 — 늙은 아버지 프리아모스가 자신을 죽인 아킬레우스의 무릎을 붙잡고 “그대의 아버지를 보아서라도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오,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돌려주오”라며 애원하는 환영이 그를 덮친다. 헥토르는 정신을 잃을 때까지 비명을 지른다.
「Fatality」
이단자 클럽이 무심코 던진 통찰(헥토르는 아킬레우스를 빛내기 위해 죽도록 설계된 장치였다는 것)에 완전히 무너진 헥토르가, 마침내 자신의 죽음과 그 이후 트로이아의 멸망 전체를 직접 읽어버리는, 1부 2부 통틀어 가장 파괴적인 에피소드다. 자신의 죽음이 신의 뜻이 아니라 순전히 아킬레우스라는 한 인간의 분노 때문이었다는 자각이 그가 평생 믿어온 질서 전체를 무너뜨린다. 또한 그는 자신이 마침내 손에 넣은 “영원한 명예”의 진짜 대가가 무엇이었는지 깨닫는다. 신들에게 바친 것으로는 부족했기에 결국 자신의 목숨을, 그리고 그 이상 — 가족과 전우와 백성, 그가 사랑한 모든 것, 나라 전체 — 을 대가로 치러야 했다는 것을.
결혼 초야, 아직 어리고 수줍었던 안드로마케와의 다정한 기억, 그리고 파리스의 심판을 둘러싼 외교적 위기(스파르타의 사신들, 헬레네의 몸값 협상)에 대한 회상이 이어진다. 폴리다마스가 던진 불길한 경고 — “그들은 우리가 결코 내줄 수 없는 것을 원할 것이다” — 가 다시 떠오른다. 현재의 헥토르는 완전히 무너져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접시를 깨고 정원을 망치며, 잠도 자지 못한 채 유령처럼 집을 배회합니다. 나탈리와 함께 간 교회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 그는 결국 에머슨의 집으로 달려가 “일리아드 이후”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구해달라고 부탁한다.
가장 깊은 전쟁 회상 — 안티마코스가 그리스 사절을 죽이자고 주장했다가 안테노르에게 저지당했던 일, 파리스가 신들 앞에서 맹세하자 불꽃과 흰 비둘기, 장미향이 나타나 신들이 그의 증인이 되었음을 모두가 확신하게 된 사건. 그리고 전쟁이 9년째로 접어든 시점, 폴리다마스가 “지금이 헬레네를 돌려줄 적기일지도 모른다”고 조언하지만 헥토르는 단호히 거부한다. 폴리다마스가 “나는 두렵다, 헥토르. 너는 신이 아니다”라며 처음으로 두려움을 인정하지만, 헥토르는 끝내 듣지 않고 함대를 불태우겠다는 맹세를 한다. 이는 『일리아드』에서 헥토르의 몰락을 초래하는 실제 결정적 순간 — 그가 성 안으로 후퇴하지 않고 전장에 남기로 한 오만한 선택이기도 하다.
헥토르는 일리아드 이후의 기록(트로이아 멸망, 가족들의 비참한 최후)을 끝까지 읽고 극심한 발작을 일으킨다. 피를 토할 때까지 모든 걸 게워내고 급기야 피눈물을 흘리다 쓰러져 2주간 의식불명에 빠진다.
「한없이 고결한 노예」
헥토르가 신에게 바쳤던 “고결한 노예”로서의 헌신이 실은 무엇이었는지 완전히 드러나는 동시에, 이단자 클럽 소년들이 처음으로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에피소드다.
헥토르는 극심한 고열과 정신착란 속에서 거의 죽음의 문턱까지 간다. 사경을 헤매는 와중 에미르가 죽은 아내를 그리며 부르던 아르메니아 연가가 환청처럼 들리고, 그는 물에 비친 자신의 두 모습—청동 갑옷을 입은 전사와, 겁에 질려 울고 있는 현재의 소년—을 마주하며 그 어린 자신을 끌어안는 환상을 본다. 깨어나서 그는 처음으로 내티와 타메르를 엄마와 아빠라고 부른다.
몸이 회복되자 헥토르는 자신을 찾아온 소년들을 매몰차게 밀어내며 “질렸다”고 거짓말을 하고, 격분한 헨리와 몸싸움 끝에 거의 목을 졸라 죽일 뻔 한다.
“그럴 리 없다”며 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 다시 도서관으로 가 이번엔 한 글자도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로 책을 정독한 헥토르는 마침내 전쟁의 진짜 기원—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가 받아야 했던 “보상”을 위해 트로이아 전체가 희생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도서관 바닥에서 반쯤 실성한 듯 미친 웃음을 터뜨리다가 결국 오열한다. “나는 펠레우스의 아들을 위한 제물로 태어났다. 정성껏 길러진 황소였다.” 소년들은 그를 안고 달래며, 처음으로 그의 완전한 붕괴를 목격한다.
에머슨의 집 벽난로 앞에서, 소년들은 각자의 상처를 처음으로 온전히 털어놓는다. 칼은 고통받는 할머니를 위해 죽음을 기도했던 죄책감을 고백하고, 헥토르는 그에게 “잘못하지 않았다”고 진심으로 위로한다.
존슨 우주센터 견학에서는 인간이 하늘과 우주까지 정복했다는 사실 앞에 헥토르가 압도되고, 이후 소년들이 “심해와 우주 중 뭐가 더 무섭냐”는 농담 섞인 토론을 벌이는 가운데, 헥토르는 진짜 두려움의 정체를 말한다. “알지 못하는 게 두려운 게 아니야. 이미 안다고 여긴 것이 무너지는 순간이 두려운 거지.” 데이빗이 장난스럽게 그를 외계인이라 부르자 에머슨이 화답한다. “헥터는 우리와 다른 별에서 왔을 뿐이야. 별들의 바다를 건너 여기 와 있는 거지.”
「the end of the millennium」
시간축이 크게 도약한다. 10대 중반의 헥토르에서, 마지막에는 가족과 절연한 채 홀로 로스앤젤레스에서 소방관 훈련을 받는 청년 헥토르까지. 제목 그대로 “세기말”(Y2K)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헥토르라는 존재가 한 번 더 완전히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는 상징적 종말이 겹쳐진다.
일상으로 돌아온 헥토르는 여전히 나탈리에게 “미안해요, 전부 다요”라고 속삭이면서도 속으로는 “차라리 나를 저주해줬으면” 하고 바란다.
말이 다른 목장으로 옮겨진다는 소식에 손톱이 살을 파고들 만큼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는 헥토르. 그날 밤 그는 “영원한 악몽”(트로이아 함락의 꿈)에 빠져, 불타는 왕궁을 뛰어다니며 카산드라와 어린 폴릭세네를 발견하지만 카산드라가 불길에 휩싸이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본다. 꿈은 뒤틀려 에미르와 나탈리, 타메르, 어린 데니즈와 에네스가 불 속에 있는 환영으로 이어지고, 헥토르는 “나를 태워!! 그들은 죄가 없어!!”라며 절규한다.
이어지는 환시에서 여동생 일리오네의 비극적 말로가 드러난다. 트라케의 왕비가 된 그녀는 남편이 막내 동생 폴리도로스를 살해하자, 자신이 몰래 키운 “아들” 데이필로스(실은 감춰 키운 또 다른 동생)에게 복수를 명하고, 그를 살려 보낸 뒤 자신은 “일리온의 여인으로 죽겠다”며 홀로 남는다. 이 잔혹한 환영 끝에 “노예여, 망령이여, 너는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헥토르를 짓누른다.
목장으로 뛰쳐나가려던 헥토르는 자전거에서 크게 넘어져 다치고도 계속 걷다가, 잠시 행복했던 트로이아 시절 연회의 기억(온 가족이 모여 춤추고, 아내와 함께 손을 맞잡고 화로 곁에서 춤췄던 드문 순간)으로 도피한다.
가장 다정한 트로이아 회상 — 신방에서의 대화, 아내가 자신의 큰 키에 대한 세간의 말을 걱정하는 것, 헥토르가 에에티온 왕의 일곱 아들을 모두 꺾고 그녀를 아내로 맞았던 이야기, 그리고 그가 헥토르에게 남긴 말(“그대는 이제 그 애의 아비이며 어미이고 오라비이네”)이 애틋하게 그려진다.
정신을 놓은 채 헥토르는 진짜 불(농장 화재)을 향해 걸어간다. 불은 그에게 “신성한 정화의 불”로 보였고, 그자신의 더러움을 씻어내기 위해 그 불 속으로 뛰어들려 하는 것을 소방관 딜런이 붙잡아 구하고, 이웃집에 도움을 청해 화재 진압을 성사시킨다.
몇년 후, LA. 헥토르는 이제 가족과 완전히 절연한 채(타메르의 “이제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라는 말, 에네스의 경멸이 암시됨) 로스앤젤레스의 빈민가에서 홀로 살아가며 소방/응급구조 훈련을 받는다. 그는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해부하듯 뜯어보며 “머리 없는 몸”을 상상하는 등 여전히 극심한 해리 상태를 겪고 있다.
세기말(Y2K) 밤, 소방 아카데미 교육생들은 전면 대기 상태로 소집된다. 도시 전역이 종말론적 공포와 광란의 축제가 뒤섞인 채 들끓고, 자정 카운트다운이 흐르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때처럼.” 방으로 돌아온 헥토르는 완전히 탈진한 채 쓰러져, 절대 입에 담아서는 안 될 어떤 말(아마도 트로이 말로 god damn 같은 것일듯)을 토악질하듯 반복해서 뱉어내다 잠이 든다.
1부가 상실과 애도, 그리고 뜻밖의 구원(에미르)을 다뤘다면, 2부는 그 구원마저 잃은 자리에서 헥토르가 마지막으로 붙들고 있던 것 — “나는 적어도 신들과 같은 영원한 명예를 얻었다”는 자기 확신 — 마저 산산이, 영혼 레벨로 부서지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파괴는 신에 의해서도, 운명에 의해서도 아니라, 우연히 도서관 책장에서 발견한 활자들, 그것도 자신을 전혀 모르는 열네 살 소년들이 아무렇지 않게 던진 몇 마디 농담에서 시작된다. 말 그대로 소년이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는 광경이 서른 살 먹은 개구리(……) 입장에서 매우 처참하게(ㅠㅠ) 서술된다.
[복선은 이미 1부에 있었다]
돌이켜보면 이 붕괴의 조짐은 1부 「무가치한 명예」에서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제목조차도…). 형 아이사코스와의 회상 속에서, 헥토르는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정성껏 길러지는 흰 송아지들을 바라보는 아이사코스의 눈빛을 마주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눈빛이, 자신을 바라볼 때의 그것과 같다는 것을 어린 헥토르는 어렴풋이 느꼈다. 당시에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불길한 예감 정도로 읽혔던 그 장면이, 2부에 이르러서는 문자 그대로의 진실이었음이 밝혀진다. 헥토르는 정말로 “정성껏 길러진 흰 송아지”였다. 다만 그 제단이 신들의 것이 아니라, 아킬레우스와 그 어머니 테티스를 위한 것이었을 뿐이다. 이 소설이 복선을 다루는 방식이 얼마나 잔인하고 정교한지 보여주는 지점이다. 독자도, 헥토르 자신도 그 의미를 뒤늦게, 완전히 무장해제된 상태에서 깨닫게 되니까.
[이름이 아니라 수식어로 쌓아 올려진 사람]
2부를 읽으며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 소설이 헥토르를 하나의 이름이 아니라 여러 겹의 수식어로 그려낸다는 점이다. 트로이아 시절 회상 속에서 그는 끊임없이 다른 얼굴로 불린다. “말을 잘 다루는 자”—호메로스가 헥토르에게 붙였던 바로 그 수식어처럼, 그는 목장의 사나운 말을 유일하게 길들이는 사람이고, 죽은 말들(람포스, 아이톤, 포다르고스, 크산토스)의 이름을 몇 번이고 되뇌는 사람이다. 동시에 그는 “사람을 죽이는 헥토르”이기도 하다—전장에서 피 냄새가 가시지 않던 손, 그리고 학교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를 가차없이 제압해버리는 순간마다 되살아나는 그 다른 자아. 그리고 무엇보다 “빛나는 투구의 헥토르”, 성벽을 지키는 존재로서의 위엄, 안드로마케 앞에서 스스로를 지칭할 때 쓰던 그 이름.
2부는 이 세 가지 수식어를 현재의 장면들과 정교하게 겹쳐 보여준다. 목장에서 아무도 다가가지 못하는 말과 교감하는 소년은 “말을 잘 다루는 자”의 현재형이고, 헨리의 목을 거의 조를 뻔했던 격투는 “사람을 죽이는 헥토르”가 여전히 그 안에 잠들어 있음을 보여주며, 이단자 클럽에서 소년들이 그를 “장군”이라 부르는 것은 어쩌면 무의식중에 “빛나는 투구의 헥토르”가 새로운 언어로 번역된 호칭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로스앤젤레스로 떠난 뒤에는 “Güerito”라는 낯선 별명으로, “나는 어디에서도 온 자가 아니다”라는 자기소개로 다시 한번 이름을 잃는다.
이렇게 과거의 수식어와 현재의 별명들이 계속 포개어지면서, 이 소설은 정체성이란 하나의 진짜 이름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겹겹이 쌓인 호칭들 속에서 그때그때 임시로 발견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헥토르는 3000년이 지나도록 단 한 번도 “그저 나 자신”으로 불려본 적이 없다. 그는 늘 무언가를 하는 사람으로서만, 즉 말을 다루거나, 사람을 죽이거나, 성벽을 지키거나, 이제는 사람을 구하는 사람으로서만 이름을 얻는다. 2부의 진짜 잔인함은 어쩌면 여기에 있다. 그 모든 수식어를 다 걷어냈을 때 남는 “헥토르”라는 존재는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그가 도서관에서 눈으로 직접 확인해버렸다는 사실.
[몸으로 앓는 진실]
2부의 가장 참혹한 장면은 헥토르가 일리아드 이후의 기록, 즉 자신의 죽음 이후 가족들의 비참한 최후를 직접 자신의 눈으로 낱낱이 읽어내는 순간이다. 아버지의 시신에서 나온 피가 제단을 적시고, 동생들이 개들의 먹이가 되고, 아내가 원수의 아들 앞에 무릎을 꿇는 장면들. 이것은 단순한 “슬픈 소식”이 아니라, 그가 평생 지켜야 한다고 믿어온 모든 것이 결국 지켜지지 못했다는 확인사살이다. 그는 이 진실 앞에서 피눈물을 흘릴 정도로 모든 것을 게워내고, 피를 토하고는 2주 내내 혼수상태에 빠진다.
이 신체화(somatization-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몸이 대신 비명을 지르는 현상, 홧병)는 이 소설 전체의 문법과 정확히 일치한다. 헥토르에게 감정, 특히 슬픔은 언제나 몸으로 먼저 온다. 목이 찢어지는 환상통, 토악질, 고열. 그는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는 사람이기에, 그의 몸이 대신 절규한다. 2주간의 혼수상태는 문자 그대로 혼이 나간 상태, 그의 영혼이 육신을 버리고 도망치려 했던 시간처럼 읽힌다.
그러나 이 소설이 진짜 잔인해지는 것은 그 다음이다. 겨우 회복한 헥토르는 “그럴 리 없다”며 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 다시 도서관으로 걸어 들어가 이번에는 한 글자도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로 처음부터 다시 읽는다. 그리고 그 정독 끝에서, 소년들이 농담처럼 던졌던 말이 — “헥토르는 아킬레우스를 빛내주기 위해 태어난 장치”라는 — 문자 그대로 진실이었음을 완전히 확인한다. 그는 도서관 바닥에서 반쯤 실성한 듯 웃어댄다. 그러다 그 웃음은 오열로 뒤바뀐다. 웃음과 울음의 경계가 없어지는 이 장면은, 이 소설이 그동안 쌓아온 “명예”라는 개념 전체에 대한 최종 판결문과도 같다. 헥토르를 지켜본 것은 신들이 아니라 그를 안고 등을 쓸어주는 열네 살짜리 소년들뿐이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흔한 설정이 아니다. 보통 신화나 역사를 다루는 이야기에서, 인물이 자신의 사후를 알게 되는 경우는 예언이나 환영을 통해서다. 그러나 이 소설은 훨씬 더 잔인한 방식을 택한다. 헥토르는 자신이 죽은 뒤 무엇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3천 년이나 지난 뒤에, 그것도 도서관에 얌전히 꽂힌 “책”이라는 형태로, 세세하게 활자 하나하나를 따라가며 직접 확인한다. 예언이라면 흐릿하고 상징적인 여지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책은 이미 확정되고 문헌학적으로 고증된, 반박할 수조차 없는 과거형의 사실이다. 그는 부정할 방법이 없다. 이미 수천 년간 학자들이 연구하고 각주를 달아온 “역사”를 상대로, 그가 대체 무엇을 반박할 수 있겠는가. 이 절망의 형태—예언이 아니라 이미 완결되어 박제된 기록으로서의 진실—야말로 이 소설이 다른 신화 재해석물과 결정적으로 갈라지는 지점이다.
[안드로마케라는 안식처]
이렇게 파괴적인 현재 서사와 대조적으로, 2부는 유독 트로이아 시절 회상—특히 아내 안드로마케와의 장면—에 많은 파트를 할애한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의도된 균형처럼 느껴진다. 헥토르가 현재에서 무너질수록, 과거의 그는 유일하게 안온했던 시간, 즉 가장 사랑했던 사람과 함께였던 순간들로 도피한다.
신방에서 첫날밤을 함께 보내고, 아내가 서투르게 다른 여자가 있는지 묻던 순간에 소리 내어 웃었던 기억. 그녀의 머리를 서툴게 풀어주던, 유일하게 왕자도 전사도 아닌 한 사람의 남편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시간들. 에에티온 왕의 일곱 아들을 모두 꺾고 그녀를 얻어냈던 무용담,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가 헥토르에게 건넨 말 — “그대는 이제 그 애의 아비이며 어미이고 오라비이네.” 연회에서 마지못해, 그러나 결국 아내와 손을 맞잡고 춤을 추었던 장면은 이 소설 전체를 통틀어 가장 순수하게 행복한 순간 중 하나로 남는다.
이 회상들이 특별한 것은, 그것이 그저 “그리운 과거”로 소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안드로마케는 헥토르가 유일하게 명예도 의무도 내려놓고 그저 한 인간으로 있을 수 있었던 존재였다. “당신은 침상에서 아내를 정복하는 게 아니라 정복당하는 게 아니냐”는 세간의 말을 걱정하는 그녀 앞에서, 헥토르는 굳이 위엄을 세우지 않는다. 그 다정함, 그 사소함이야말로 진심이 깃드는 자리라는 이 소설의 오랜 원칙(1부 리뷰에서도 다뤘던, “진심은 작고 구체적인 것에 있다”는것)이 2부에서는 안드로마케라는 인물을 통해 가장 아름답고 애틋하게 완성된다.
그렇기에 그녀가 훗날 원수의 아들 앞에 무릎 꿇는 장면이 그토록 잔인하게 다가온다. 헥토르가 지켜야 했던 것은 명예도, 도시도 아니라 바로 이런 사소하고 다정한 시간들이었다는 것을, 그는 이제야, 모든 것이 끝나고도 3000년이나 지난 뒤에야 깨닫는다.
[성장통이라는 표현에 대하여]
이 리뷰의 제목에 “성장통”이라는 단어를 붙인 것은, 이 파괴가 결국 헥토르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데서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2부의 끝에서 그는 가족과 절연하고 홀로 로스앤젤레스로 떠나, 소방관이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누군가를 구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자신을 쌓아올린다. 신도, 명예도 아닌 방식으로 사람을 지키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이것은 회복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탈피에 가깝다. 3000년간 붙들어온 정체성의 외피를 찢어내는, 피를 토할 만큼 고통스러운 과정.
성장통이라는 말이 흔히 그렇듯, 이 고통에는 성장이 약속되어 있지 않다. 다만 그것을 통과해야만 다음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완전한 파멸에서 건져 올리는 것은 결국 에미르가 남긴 그 말이다.
“네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나는 너를 용서할 것이다. 네가 원한다면 나는 언제든 네 곁에 있을 것이다.”
신들도 침묵하고, 자신이 붙들어온 명예마저 거짓으로 판명 난 자리에서, 이미 죽고 없는 한 노인의 약속만이 유일하게 그를 삶 쪽으로 붙들어 매어 놓는다.
2부의 마지막 문장 — “괜찮아…… 어차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 는 체념처럼 들리지만, 동시에 신들의 개입도, 벌도 없는 세계에서 오롯이 자기 힘으로 살아남겠다는 조용한 선언으로도 읽힌다. 3000년 전 신들의 총애 속에서 만들어진 영웅이, 이제는 신 없이, 그리고 자신을 규정해온 그 모든 수식어 없이도 사람을 구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소설이 말하는 진짜 성장일지도 모른다.
[작가로서, 솔직히 탐나는 것들]
나는 ‘내 글 구려병’은 없다. 내 글은 내 글이고, 남의 글은 남의 글이다. 잘 쓴 글을 보더라도 ‘와 진짜 잘 썼다’ 로 끝나지, ‘그에 비하면 내 글은…’ 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의 문체나 장면 표현, 그리고 100화를 넘기는 진득함은 정말 탐난다. 왜냐하면 나는 장편을 써도 90화를 넘기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이 소재를 썼다면 냅다 1화부터 헥토르가 소방관이 된 시점부터 쓰기 시작해서(인 메디아스 레스… 어쩌고), 어린 시절은 적당히 요약이나 회상 정도로 넣었을 것이다.
그러나 1부에서의 눈물나는 배경묘사, 2부에서 안드로마케와의 애틋한 회상들, 그리고 자신이 죽은 뒤 모든 것이 어떻게 불타 사라져 버렸는지를 확인하고 정말 문자 그대로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헥토르의 묘사는, 나로서는 도저히 따라할 수조차 없는 영역이다. 이렇게 느리게, 이렇게 오래 한 인물의 인생을 어린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심지어 환생 전부터) 붙들고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럼에도 지루하지 않은, 그 진득함 자체가 이 소설과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