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하늘 아닌 곳 의뢰(감상)

대상작품: 비천(非天) (작가: KRimmer, 작품정보)
리뷰어: cedrus, 2시간 전, 조회 16

<비천(非天)>은 불변하는 세계 속에서 실패를 반복하는 인물들의 이야기입니다. 작가님 말씀을 빌려서 소개하자면 ‘전체적인 정서가 조금 무겁고 어두운 신화 판타지 군상극’이라고 합니다. 군상극을 지향하는 만큼 18화로 구성된 이야기를 여러 인물들의 시점에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의도가 무엇이었을지, 그것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찬찬히 살펴볼까요. 우선 저는 <비천>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었습니다. 33천-아수라계를 배경으로 하는 1부(1~9화)와 인간계를 배경으로 하는 2부(10~18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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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를 먼저 보겠습니다. 천신과 아수라는 수억 년 동안 전쟁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어느 한쪽이 완전히 승리하거나 패배하지 않은 채 두 집단이 미묘한 균형을 이루었던 것인데요. 저는 이후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보며 이곳이 고정불변의 세계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세계 자체가 고정된 상태를 유지하려 하기에 그 안의 인물들은 필연적으로 변화에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화를 모티브로 한다는 점에서 자연 법칙처럼 느껴지는 구조이기도 하네요. 

정면으로 붙어선 이길 수 없는 상대요. 그것을 알면서 수억 년을 버텨온 건 그들도 마찬가지기 때문이지.

우리와 33천이 전쟁을 해온 지가 수억 년 됐습니다. 쳐올라가고, 밀려나고, 다시 쳐올라가고. 그 사이에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일까요? 

어머니가 왜 그런 말을 하시는지 알아요. 전쟁이 끝나지 않으면 아수라계도 평화가 오지 않는다는 거. 이기는 것도 지는 것도 없이 그냥 영원히 이 불행하고 불안한 상황이 계속된다는 걸. 

33천과 아수라계는 적대하고 있으나, 전쟁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인물들이 여럿 있습니다. 싸움이 이어지거나 잠시 멈춘 상태만이 반복되고 있으니까요. 싸움을 반복할수록 죽는 천신과 아수라가 늘어나기만 할 뿐입니다. 그러나 수억 년 동안 쌓여온 원한이 있어 이들은 멈추지도 못하고 계속 싸우고 있습니다. 변화를 외치는 목소리도 잠깐에 불과하지요. 그 끝에 있는 건 33천-아수라계의 완전한 소멸일까요? 창조에서 멸망으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흐름인가요? 야마의 말마따나 거스를 수 없는 카르마의 법칙일지도요. 

이렇게 반복되는 세계 안에서 인물들은 마찬가지로 고정된 역할을 반복적으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천주 인드라, 장인신 비슈와카르만, 군신 수자타, 전신 아그니, 전령 마탈리 등등. 적어도 수천 년 동안 이들은 똑같은 역할을 이어왔습니다. 아수라계라고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왕과 귀족, 장군이 교체되긴 하나 33천과 싸운다는 똑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1부 끝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한 가지 드러납니다. 아라 천후가 독살당하자 분노한 베마 왕이 군대를 이끌고 33천을 공격했지요. 치열한 전투 끝에 이들이 궁전까지 도달하자 ‘인드라는 곧바로 항복을 선언했고, 다시는 33천의 천신들이 아수라의 여인들을 탐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맹약에 도장을 찍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왕 비로차나가 이런 말을 해요. ‘천 년 전이었지. 인드라가 샤치를 강제로 납치했을 때. 나는 직접 전군을 이끌고 33천을 쳤지. 그리고 그 전쟁에서 이겼어. 33천을 밀어붙였고 인드라로부터 확약을 받았지.’라고요. 드디어 아수라계가 유효한 승리를 거두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과거의 반복에 불과했다니, 33천-아수라계가 얼마나 변함 없는 세계인지 놀랍습니다. 

분명 변화를 원하는 자들이 있었는데, 수천 년 수억 년 동안 똑같은 현상이 이어지고 오히려 반복되기까지 한다니, 어떻게 된 일일까요. 변화하려던 이들은 왜 항상 실패하고 말았을까요. 고정불변의 구조 속에서 33천-아수라계 인물들의 유형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변화를 원하지 않는 인물, 2) 변화를 원하지만 구조에 저항하지 못하는 인물, 3) 변화를 원하며 구조에 저항하는 인물. 세 번째 유형의 인물은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두 가지 결과를 불러올 수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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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시 1부의 중심이 되었던 아라와 수자타의 관계를 살펴봅시다. 천주 인드라의 아내, 샤치 천후가 승하하면서 <비천>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지요. 천신들은 천후의 자리를 비워놓을 수 없다, 아수라계를 견제해야 한다며 인드라에게 천후를 새로 맞을 것을 종용합니다. 그런데 이들의 바람과 달리 인드라는 다시 한 번 아수라계 출신을 천후로 세우겠다고 했습니다. 아라의 눈이 샤치 천후의 눈과 같았다는 이유로 사랑에 빠졌거든요. 

아라의 눈, 그리고 샤치의 눈. <비천>에서 눈은 중요한 요소입니다. 33천-아수라계의 인물들은 모두 눈에 많은 것을 담았거든요. 상대의 눈에 적의나 계산, 거짓이 있는지 다른 무엇보다도 눈을 보고 판단하더군요. 그렇다면 아라와 샤치의 눈이 유독 특별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눈에서 인드라는 샤치를 떠올렸다. 무언가를 갈구하는 게 아닌, 있는 그대로를 직시하는 투명한 눈. 내면에 자리한 심지가 단단하게 버텨서 어떠한 외부의 충격과 공격에도 중심을 잃지 않는 강인한, 인드라가 찾던 눈빛이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맑고 깨끗한 눈이었다. 운해를 보고 바람을 보는 눈. 그 시선이 지나간 자리에는 무엇도 집착하거나 붙들지 않고,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샤치 이후 처음 보는 눈빛이었다. 

샤치의 눈이 떠올랐다. 그 맑은 눈이. 무엇도 원하지 않는 눈이. 

인드라가 본 아라의 눈, 그리고 그로부터 떠올린 샤치의 눈에 대한 표현입니다. 이것은 인드라만의 생각이 아니었던 듯한데요. 아라를 마주한 수자타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아라의 눈이 수자타를 보고 있었다. 악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 악의에는 악의로 답하면 됐다. 계산이 있었다면 계산으로 받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저 눈에는 그게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수자타가 ‘절대 순수’라고 표현한 것이 아라에게는 있었다고 해요. 그 눈에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요. 솔직히 재미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라 역시 33천-아수라계에서 살아가는 인물인데 그 안에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을까요? 아라는 욕망이 없는, 깨끗하게 비어 있기만 한 인물이었나요? 글쎄요, 저는 아라와 소하를 제외한 33천-아수라계의 다른 인물들이 아라의 눈에 비친 것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몰랐다고 봅니다. 

활을 쏠 때만 생각이 멈추었다. 시위를 당기면 세계가 그 선 하나로 좁아졌다. 표적과 나, 그 사이의 거리와 바람만 있었다. 

이 아이는 괜찮을 것이다. 무엇이 와도, 어디를 가도 멈추지 않는 한 괜찮을 것이다.  

저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아라는 다른 인물들에 비해 아직 어렸습니다. 가족과 아수라계를 사랑했지만 더 넓은 세상을 꿈꾸었고, 활을 쏘지 않는 동안에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지요.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천후가 되는 것을 승낙하지 않았나요. 아라에게는 아라만의 욕망이,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수자타를 비롯한 33천-아수라계의 다른 인물들이 가진 욕망과 달랐을 뿐이지요. 오직 적과 싸우는 것만을 목표로 살아온 이들에게 아라의 눈은 전혀 다른 것을 품은 것처럼 보였을 겁니다. 그 ‘다른 것’을 뭐라고 이름 붙여야 하는지 몰라서 아라의 눈이 향하는 곳에 아무것도 없다고 판단했고요. 

아라는 전쟁을 바라지 않고, 다른 인물들처럼 명예와 힘을 갈망하지도 않습니다. 아라가 천후가 된다면 33천-아수라계는 마침내 변하기 시작할지도 몰라요. 활을 연습하는 장면에서 몇 번이고 강조했듯 아라에게는 잠재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정불변의 세계는 인물이 변화하는 것을 원하지 않죠. 아라 천후와 세계의 불화는 예정된 일이었을 겁니다. 아수라계 출신을 반기지 않는 천신들과 대립하거나, 아라를 사랑하지만 아라의 뜻을 절대적으로 들어줄 수는 없는 인드라와 갈등을 빚었을지도 모르지요. 아라는 힘겨운 싸움 끝에 성공했을 수도 있고, 결국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고 실패했을 수도 있어요. 33천-아수라계의 질서를 뒤흔드는 장대한 서사시가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만, 세계가 아라의 실패를 원한다면 더 손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수자타의 질투와 분노를 이용하는 거죠. 고전적이고,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는 방법이군요. 인물들 사이의 첨예한 갈등을 그릴 필요도, 행동 원리를 드러낼 필요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시간을 오래 끌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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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수자타의 분노가 아라보다는 인드라를 향한다는 점을 눈여겨 봅시다. 수자타가 원한 것은 사랑보다 변화였다고 짐작하게 되거든요. 수자타는 샤치에 이어 아라가 천후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불만이었지만 대놓고 반감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군신이자 인드라의 충직한 신하이니까요. 그러나 인드라가 다음과 같이 답하자 수자타는 분노합니다.  

비록 나라와 백성을 지키기 위해 싸운 것이었지만 수없는 아수라들을 도륙한 살업으로 얼룩졌고 내가 부덕한 천주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오. (…) 수자타는 아름답고 용맹하고 또 충직한 신하요. 나와 함께 수많은 전쟁에서 적과 싸웠던 전우이기도 하고. 살업이 많은 죄인은 이 옥좌에 나 하나로 충분하오. 

인드라가 대신 답했다. 수자타는 그 대답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알 것 같았다.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를. 

수자타는 수천 년 동안 군신으로 싸우며 인드라의 곁을 지켰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고정된 역할에 영원히 머무르는 대신 천후가 되어 인드라와 나란히 서기를 바라게 되었죠. 그러나 인드라는 단칼에 그 가능성을 부정했는데요. 이때 인드라의 발언은 자조적인 면이 있습니다. 수억 년 이어진 싸움에 지쳤고 아수라계와 우호적인 관계를 쌓아가기를 원하는 것처럼도 보입니다만, 살업과 살기로 가득한 자신이 변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죠. ‘자애롭고 순수한 여인’이 그것을 식혀주기를 바랄 뿐이라네요. 샤치에게도, 아라에게도 같은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뒤에서 다시 다루기로 하고, 다시 수자타의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수자타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 믿고 희망을 품었습니다. 그런 수자타에게 천후가 될 수 없다는 말은, ‘너는 변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33천-아수라계는 수자타의 변화를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분노하여 수자타는 아라를 독살합니다. 천후가 된 지 불과 일주일 만에요. 수자타의 이어지는 행동들 또한 실패의 연속입니다. 분노에 차 아라를 죽였지만 그 결과를 마주할 자신이 없습니다. 수천 년 동안 군신으로서 싸웠지만 처형의 고통이 미치도록 두렵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소하에게 죄를 고백하는 일이죠. 자기혐오를 동력 삼아 수자타의 실패는 더욱 빠르게 치닫습니다. 

그 여인이라면 들어줄 것이었다. 자신의 말을. 자신이 한 죄를 끝까지. 그리고 그 앞에서 죽음으로 속죄하는 게 수자타의 생각이었다. 자신이 선택한 죽음의 방식으로.

결국 자백서를 남긴 수자타는 소하의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자신의 행동이 불러온 결과를 마주하지도 못하고, 속죄하지도 못했습니다. 이걸로 상황이 종결되리라 믿고 도망친 것이니까요.

‘변할 수 없다’는 사실에 반발한 수자타는 화려하게 실패합니다. 그리고 2부에서 아마노 시오리라는 이름으로 두 번째 기회를 얻게 되지요. 이때 수자타가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는 행동은 두 가지 방향일 것입니다. ‘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수용하고 체념하거나, 변화함으로써 그 사실을 반증하거나. 수자타가 아라의 눈에서 보았지만 이름 붙이지 못했던 것을 인간계에서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나아가 수자타가 지금껏 가지지 못했던 행복을 찾아낼 수도 있지요. 그런 기대를 품으며 1부가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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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펴본 아라와 수자타라는 인물들은 33천-아수라계의 세 번째 유형에 속하게 되겠죠. 아라는 세계와 맞설 기회 자체를 박탈당했고, 수자타는 아라의 독살과 전쟁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불러오며 실패했습니다. 다른 두 유형의 인물들로는 누구를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저는 첫 번째 유형으로 바유와 아그니, 두 번째 유형으로 인드라와 비슈와카르만을 떠올렸습니다. 특히 바유, 아그니, 비슈와카르만은 2부에서도 등장하죠. 수자타를 포함해 세 유형의 인물들은 1부(33천-아수라계)에서 2부(인간계)로 넘어오며 다시 한 번 기회를 얻게 됩니다. 다만 1부에서 수자타의 개성이 강하게 표출되면서 상대적으로 다른 인물들의 인상은 희미해지고 마는데요. 특히 장인신의 역할에 머무르며 확고하게 선을 긋던 비슈와카르만의 변화가 돌출되고 말았습니다. 

2부, 인간계의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다른 인물들의 상황을 마저 검토해 봅시다. 수자타의 독단과 대전쟁 이후 33천-아수라계에는 무엇이 남았을까요. 

폐허가 되고 수많은 천신들이 죽은 33천에는 인드라가 남았습니다. 조금 전, 인드라가 샤치와 아라에게 기대어 변화를 원했다는 말을 했었지요. 천신들에게 우리는 수억 년 동안 전쟁을 해왔다고 말하는 장면으로 미루어 볼 때, 인드라는 전쟁과 살육이 반복되는 상황에 지친 것 같습니다. 그러나 33천의 천주로서 적극적으로 화친을 주장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보였어요. 스스로 전쟁을 멈출 의지도 딱히 보이지는 않았지만요. 그런데 1부 끝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이 밝혀집니다. 

샤치를 강제로 데려간 것은 자신이었다. 수천 년 동안 33천의 천신들이 아수라의 여인들을 납치해 겁탈하고 그들의 남편이나 오빠, 남동생들을 죽이고 강제로 빼앗아온 것을 천주로서 암묵적으로 눈감아왔던 것도 모두 사실이었다. 그 더러운 33천 역사의 중심에는 자신이 있었다. 

인드라 역시도 실패를 반복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반복되는 전쟁에 지쳤지만 샤치 곁에서 평온을 누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했던 것 같죠. 베마에게 전쟁을 멈출 기회가 있었다면 인드라에게도 같은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아라와 샤치가 죽기 전에요. 그러나 인드라는 전쟁을 막는 대신 천후의 곁에서 잠시 휴식하기를 택했습니다. 천주 인드라로서 정해진 역할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행복을 누릴 수단이라고 볼 수 있겠군요. 천주의 역할, 반복되는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휴식처에 가깝습니다. 샤치의 죽음 이후에는 아라에게서 같은 것을 발견했고요. 

드디어 샤치의 이야기로 돌아왔습니다. <비천>의 시작이 되었던 인물이지요. 인드라는 샤치를 깊이 사랑했고, 아라에게서 샤치의 모습을 보았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샤치는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합니다. 인드라가 샤치를 사랑했고, 33천의 천신들이 샤치를 천후로 받들었다고요. 

인드라가 샤치를 아꼈다고 하셨습니다. 전쟁에서 돌아오면 샤치를 먼저 찾았다고. 33천의 천신들이 샤치를 천후로 받들었다고. 처음엔 낯선 눈들이 없지 않았으나 오래가지 않았다고. 

천신들은 처음엔 저를 낯설게 보았어요. 아수라의 딸이라고. 그러나 인드라가 저를 대하는 방식이 그들을 바꾸었어요. 

처음엔 시기하고 경계하는 이들이 없지 않았어. 적국인 아수라계의 연인이었으니까. 그런데 천후께선 그런 이들의 시선까지 바꾸셨어. 

일관된 진술이지만 저는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풀로만 공작의 회상, 샤치의 편지, 마탈리의 증언.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있으니까요. 저마다 샤치라는 인물의 일부를 보고 그것을 전했을 때, 각기 다른 증언의 결과가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키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요. 그러나 모두가 정해진 대사처럼 똑같은 말을 한다면 조금 다른 뉘앙스가 생겨 버립니다. 잘 모르거나,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고요. 모든 게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독살 사건의 전모를 잘못 파악한 인드라의 모습이 겹쳐 보입니다. 모든 증언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아떨어진다니, 이 역시 진실을 감추고 있는 건 아닐까요? 실제로 이 대사들은 샤치의 ‘실패’를 은폐하고 있습니다. 

자애로운 천후 샤치는 33천과 아수라계를 동시에 마음에 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드라는 샤치의 의중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하고요. 그렇다면 의문이 생깁니다. 샤치는 천신들이 ‘아수라의 여인들’을 납치한다는 것을, 인드라가 그것을 묵인한다는 사실을 몰랐을까요? 무려 천 년을 모르지는 않았겠지요. 그러나 샤치에게 33천을 바꿀 정도의 힘은 없었습니다. 바꿀 수 있었다면 진작 변화가 생겼을 테니까요. 몰랐다면 샤치는 끝끝내 33천의 일부가 될 수 없었던 것이고, 알았다면 샤치도 33천에 동화되었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인드라를 사랑했기 때문에 다른 것들을 묵인하고 그의 곁에 머무르기로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네요. 두 세계를 동시에 사랑했던 샤치는 전쟁이 멈추기를, 33천과 아수라계가 새로운 관계를 맺기를 누구보다 원했을 것입니다. 결과는 우리가 아는 것과 같습니다. 샤치가 원하는 것을 불변하는 세계가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샤치의 바람은 이름을 가지지 못하고 샤치는 ‘무엇도 원하지 않는 눈’으로 기억되어야 했습니다. 

아마도 작가님의 의도는 달랐겠지요. 샤치가 인드라의 곁에서 행복했다는 ‘결과’를 전달하려고 했으니까요. 그러나 구체적인 이름과 행동, 사건 없이 각 인물들이 내린 결론만 전달한 결과는 모호합니다. 베마와 소하는 궁금하지 않았을까요? 처음에 샤치를 낯설게 본 이들이 누구였는지, 어떤 식으로 배척했는지, 결과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나아가 이들이 현재 아수라계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33천의 천신들은 저마다 다른 과정을 거쳐 샤치를 받아들였을 테니까요. 그리고 이런 사실들이야말로 실질적으로 아라에게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샤치가 행복했다고 모두들 말하지만, 33천과 아수라계 사이에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모두가 간과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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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길어졌네요. 다시 1부 이후 남은 이들의 상황으로 돌아갑시다. 아수라계는 33천보다 상황이 나은 것 같습니다. 베마는 전쟁을 멈추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라후에게 왕위를 넘깁니다. 아수라계가 더 나은 곳이 되기를 바라면서요. 복수만을 바라보던 라후도 대전쟁 이후 심경의 변화를 겪었으니, 라후가 왕이 된 미래는 조금 달라질 것 같습니다. 

33천과 아수라계의 적대적 관계는 수억 년 동안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싸움은 찬드라와 마탈리에게 결정적으로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었죠. 이전까지 이들의 세상에는 나 아니면 너, 천신 아니면 아수라라는 적대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내 사람을 상처 입히는 것은 언제나 내가 아닌 저들이었어요. 그런데 찬드라와 마탈리의 상황은 다르지요. 나의 일부가 나의 연인을 상처 입혔습니다. 절대적으로 나와 너 사이를 분리하던 장벽에 균열이 생긴 것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겐 비극으로 끝났지만 두 인물의 비극이 훗날 희망을 불러올 가능성이 남습니다. 

안타깝게도 33천-아수라계의 변화가 당장은 찾아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슬프지만 이런 결론에 도달한 이유로 두 가지를 들어보겠습니다. 첫째, 인드라는 샤치를 천후로 맞은 후로도 천신들의 폭력적인 행위를 묵인했습니다. 천신들은 샤치를 천후로 인정했지만 아수라를 향한 시선이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아닙니다. 둘째, 야마는 비슈와카르만을 이용해 왕위 찬탈을 노리고 있습니다. 33천에서 무력에 의한 권력 관계의 역전이 일어난다면 다시 한 번 혼란이 찾아올 것이고, 아수라계와의 관계를 신경쓰기는 어려울 테지요. 

이제 인간계로 넘어간 인물들의 행적에 기대를 품어 볼까요. 그들이 33천-아수라계에 무엇이 없는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찾아낼 가능성이 있습니다. 1부의 핵심이 아라의 독살과 수자타의 자살이었다면, 2부의 핵심은 비슈와카르만과 수자타의 재회입니다. 수자타는 아마노 시오리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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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드라의 마음을 들여다 보기를 거부하고 수자타의 충동을 외면한 장인신, 비슈와카르만이 2부를 이끌어 갑니다. 자신의 일은 구조를 보는 것이지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이 아니라고 그는 줄곧 말했지요. 그러나 자신이 만든 극독으로 수자타가 아라를 독살했습니다. 위험을 예감했으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았던 일을 후회했을까요. 비슈와카르만은 죽음을 관장하는 야마를 만나 거래를 하고 직접 수자타를 만나러 떠납니다. 마치 수자타가 그랬던 것처럼 주위의 일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충동을 따릅니다. 이때만큼은 그가 야마의 욕망을 바로 읽어낸다는 것이 흥미롭죠. 그는 인물의 마음까지도 충분히 읽어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계속 피해 왔습니다. 수자타의 일이 있기 전까지는요. 이유가 무엇이건 그는 결국 정해진 역할 바깥으로 나가 보기로, 변화하기로 결심합니다. 

수십 억 명이 사는 지구에서 수자타를 찾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편으론 기대가 생기는 지점입니다. 누구보다 구조를 분석하는 일에 탁월한 장인신이니까요. 33천-아수라계와 인간계의 구조를 비교하는 일에 최적화된 인물이 아니겠습니까. 그의 여정을 통해 33천-아수라계에 ‘없는’ 것이 무엇인지 밝혀질 거란 기대가 생깁니다. 

걱정이 무색하게 비슈와카르만은 손쉽게 목적을 달성합니다. 우연과 호의를 통해서요. 배가 고파 들어간 편의점에서 우연히 친절한 사람을 만나고, 사람들이 연결해준 덕에 만난 사람이 우연히도 옛 전우였어요. 게다가 그의 전우는 야쿠자 오야붕이라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오야붕의 말 한 마디에 모든 일이 잘 풀리기 시작합니다. 모처럼 전왕 비로차나의 조언을 받아 수자타의 채찍을 챙겼는데 말이죠. 그의 여정이 압축되면서 구조를 탐색할 시간마저 사라집니다. 그렇다면 다른 인물들을 통해 인간계의 구조를 그려볼 수 있을까요. 

충실하게 33천-아수라계의 일부를 담당했던 바유와 아그니는 인간계에서도 잘 적응했습니다. 전생에 그들을 지배했던 힘의 논리가 인간 사회에서도 재현된 결과이지요. 야쿠자 조직의 일원으로서 뒷세계를 주름잡았던 모양입니다. 오야붕이 아마노 시오리를 찾는다는 말에 먼저 시오리에게 접근한 바유가 전생의 기억을 되찾습니다. 아름답고 강한 수자타를 이번 생에서라면 곁에 둘 수 있으리란 희망에 잠시 빠지기도 하고요. 바유에게는 아쉬운 일이지만 아그니의 힘이 더 강했습니다. 바로 굴복하고 수자타-시오리를 포기합니다. 죽을 때까지 싸우던 천신들이 인간계에 다시 태어나서도 동일한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니, 그야말로 비극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수천 년이 지나고 인간으로 환생했어도 달라진 건 없었다. 아무것도.’라는 바유의 말이 이들의 운명을 관통하고 있어요. 1부에서나 2부에서나 잠시 스쳐지나가는 인물 정도로 그려졌고요. 1부에서는 수자타의 미모를, 2부에서는 시오리의 미모를 칭송한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군요.  

그러는 동안 수자타는 무엇을 했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2부의 인물들이 수자타-시오리의 미모를 칭송하는 장면이 대부분이고 실제로 수자타-시오리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었는지 글에서는 알기 어려워요. 수자타-시오리는 아라의 눈에서 보았던 ‘없음’을 무엇이라 명명하면 좋을지 인간계에서 발견했을까요? 그가 전생에 가지지 못했던 것을 이번 생에는 손에 넣었을까요? ‘미모의 맹인 안마사’라는 표면만 드러났을 뿐입니다. 결말을 보면 시오리는 군신 수자타가 간절히 원했던 것을 얻은 것 같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얻었는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겨야 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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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 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지요. 베마와 소하입니다. 베마는 인드라처럼 변화를 원했지만 아수라 왕이라는 입장 상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소하는 아라와 유사한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혼자 힘으로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었기에 아수라계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 둘이 기적적으로 만나 10화에서 행복을 거머쥐기는 합니다만, 재회가 바로 행복/성공으로 이어지기에 독자를 성급한 결론으로 이끌 위험이 있습니다. 33천-아수라계를 벗어나니 바로 행복해졌다, 역시 33천-아수라계가 문제다, 라고요. 개인의 힘으로 바꾸기 어려운 구조를 벗어나 인물들이 행복을 얻는다는 건 저도 물론 좋아하는 결말이지만, 이대로라면 모처럼 만든 매력적인 구조가 아깝지 않나요. 결국 바꾸지 못할 구조였다면 인물들의 저항을 통해, 행복이 실현될 수 있는 구조와의 비교를 통해 불변성을 검토하는 것도 생각해 볼만하지요. 

온전히 군상극으로 이해하기엔 수자타라는 인물이 강렬하게 두드러지고, 수자타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로 받아들이기엔 여러 인물들의 시점을 오가는 동안 서사의 공백이 발생합니다. 군상극의 경우 여러 인물의 시점을 오가면서 시야의 사각이 발생하고, 한편으로는 공통된 구조를 의식하게 되면서 복합적인 재미가 만들어질 텐데요. 시야의 사각이 인물의 공백으로 대체될 위험을 반드시 고려해야만 하겠습니다. 특히 한 인물의 시련을 다른 인물의 시련으로 갈음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하겠죠. 

전체 분량 가운데 1부가 약 75%를 차지하며 그에 비례해 수자타의 비중도 커졌습니다. 이어지는 2부에선 한 인물의 시련이 오야붕의 호의 덕분에 손쉽게 풀리게 되었죠. 33천-아수라계라는 경직된 구조 속에서 실패했던 인물들이 인간계에서 새로운 행복을 찾아낸다는 것은 작가님에게는 당연한 귀결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설계한 세계와 인물들이니까요. 그러나 독자는 <비천>이라는 결과물을 통해 이 세계를 처음 접하게 됩니다. 작가님에게 당연한 결과이므로 생략하거나 요약한 과정들이 독자에게는 빈 공간으로 여겨질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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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서는 수자타가 실패에 이르게 된 과정을 비극적으로 그려내며 이야기의 중심을 잡았으나, 2부에서는 비슈와카르만이 오야붕의 권력에 의존해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면서 무게감을 걷어냅니다. 그 과정에서 비슈와카르만이, 수자타가, 그리고 18화에 스쳐지나가는 아라가 무엇을 깨달았는지 독자는 알기 어렵습니다. 짐작은 할 수 있지요. 글 속에 단서들이 흩어져 있으니까요. 

그를 보느라 옆에 있던 이들의 마음은 보려 하지 않았다. 

지금 사죄해야 한다. 세 사람 앞에서 제대로. 지금 아니면 영원히 기회는 없다.

언니, 난 다 잊었고 용서했어요. 그러니 이제 언니도 자신의 삶을 사세요. 

수자타는 죽음으로 회피한 것, 아마노 시오리라는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속죄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으로 보입니다. 타인의 인정에 매달리는 것이 자신의 행복이 될 수 없다는 것도요. 아라 역시 인간계에 잘 적응했는데, 아라가 33천-아수라계에서 미처 꽃 피우지 못했던 잠재력을 떠올리면 당연한 결과라고 봐야겠죠. 

33천-아수라계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인간계로 넘어온 인물들은 이럭저럭 행복한 결말을 얻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아쉬움이 남습니다. 고정불변의 구조 속에서 실패하기를 요구받는 인물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모처럼 이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매력적인 세계가 준비되었으니까요. 33천-아수라계와 인간계가 어떻게 같고 다른지 찬찬히 지켜보고 싶었지만, 무엇이 인물들을 이런 결과로 이끌었는지 단서를 끌어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1부의 구조가 품었던 비극성이 상당 부분 희석되었어요. 인간계에서도 동일한 양상을 보여주는 바유와 아그니를 본다면, <비천>은 끝내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그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인간계에서 다른 선택을 한 베마와 수자타를 본다면, 이들은 운명의 굴레로부터 벗어났지요. 모든 인물이 같은 운명을 걷는 것은 불가능하나 각각의 과정을 도려낸다면 결과에는 의문이 남습니다. 

너무 당연한 말이라 덧붙이는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만, 이건 제가 한 명의 독자로서 글을 읽고 난 감상입니다. 작가님이 의도했거나 의도하지 않았거나, 의도와 다르게 읽힌 부분도 분명 있을 테지요. 제가 약점으로 지목한 부분을 작가님께서 수정해야 한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라는 점을 밝혀 둡니다. 세상에 완벽한 글은 없고 모든 글에는 약점과 강점이 공존하니까요. 어느 독자에게는 이렇게 읽힐 수 있으니 글을 쓰실 때 참고할 만한 이야기가 된다면 기쁘겠습니다. 리뷰를 마치며, 작가님의 창작 활동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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