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르거나 앞으로 나아가거나 둘 중 하나였다.
비행기에 타서 여행지에 오기까지 승희는 자기 시간이란 게 없이 오로지 가족만을 위해 주부의 삶을 살았다. 여행을 가게 된 계기도 황당하다. 남편은 갑자기 티켓이 생겼다면서 혼자 다녀오라고 한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으니 쉬다가 오라고 거의 강제로 떠밀듯이 보낸 여행이었고 승희에게는 안 가자니 언제 또 올지 모를 휴식 시간이었다.
여행을 즐기려면 원하는 목적지를 선택할 자유가 있어야 하고 가고 싶은 시기에 떠나야 한다. 승희의 마음이 어떤지 그런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남편은 아이를 자신이 돌보고 있을 테니 다녀오라고 한다. 승희는 마지못해 그러기로 하고 떠난다. 남편은 그것이 아내에게 베푸는 큰 배려이며 승희 역시 원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그녀의 불만이나, 생각은 들어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며, 그럴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꿈 속에서 일어난 일이 현실이 되어가는 과정은 설명할 수 없는 미스터리라 할 수 있겠지만, 하루가 반복되면서 바라지 않는 현실이 되어가는 과정은, 원인이 결과가 되어가면서 만들어진 역사였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 외면한다. 미래를 바꾸지 못 한 것은 의지가 없어서 그런 것이었다기 보다는 나누어서 해야 할 일들을 한 사람이 전부 감당하게 되면서 돌아온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가족이 삶의 전부가 되어버린 그녀와 달리, 아이들과 남편에게 그녀는 삶의 일부일 뿐이다. 세상 모든 엄마들이 그렇진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엄마이자 아내로 살아가는 많은 여자들이 이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 육아로 인해 커리어가 끊어지고, 사적 관계가 끊어지고, 아이의 친구에 부모를 중심으로 인간 관계가 형성된다. 아이의 시간과 남편의 시간을 중심으로 하루가 돌아가는 그들의 만남에는 한계가 있다.
꿈에서 봤던 코지 하우스에 발을 들인 승희는 그곳에서 무엇을 찾고 싶었던 걸까? 결말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부정하며 자신의 발로 여기까지 걸어왔다. 예상하는 불행한 결과가 이루어지길 바라기 때문에 그곳으로 간 것이 아니라 악몽은 악몽일 뿐, 현실은 악몽과는 다르다는 걸 확인함으로 줄곧 가지고 살아야 했던 불안감을 떨쳐내고 싶었던 것 같다.
어딘가에는 그녀를 위한 탈출구가 반드시 있어야만 할 것 같았은데 집에서도, 여행에서도 찾지 못 한다. 죽게 만드는 함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승희를 죽게 만든 요인은 복합적이다. 혼자가 아니었다면 그곳으로 갔을까? 남편이 준 티켓이 아니었다면 갔을까? 승희의 삶은 계속 그런 식으로 흘러왔다. 아니면 안 된다는 책임과 의무가 주어졌고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해낸다. 아이 하나가 성장할 정도의 시간이 흘렀으나 인생에 주어지는 보상은 없었다. 밑 빠진 독처럼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고 반복되는 일상이 전부였다. 자신이 유령 같다고 느끼고 있던 그녀는, 유령의 집에서 홀로 죽게 된다. 페허였던 곳에서 악몽처럼 죽었던 승희는 자신을 이곳으로 이끌어 온 이유를 끝내 찾지 못 했다.
이 결말이 아니더라도, 그녀의 내일이 바뀌지 않고 계속 되었다면 종착지가 어땠을지 희망적이지 않아 보인다. 그런 미래는 아닐 거라며 평생 부정만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생이 끝났을 것이다. 죽기 직전 깨달았을 교훈은 무엇이었을까? 승희에게 찾아오던 악몽은 사실 너를 죽게 만드는 미래가 다가오고 있으니 그 집으로 들어가지 말고 달아나란 경고 메시지였을지도 모르겠다.
‘진짜’ 나 같은 건 없었다. 매순간 행동하고 선택하며 살아가는 자신이 있을 뿐이었다. 기분이 흐린 날도 맑은 날도 있지만 매일 다른 하루 속에서 변해가는 게 바로 자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