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작품은 시린골 사건의 세계관과 인물이 공유되는 장편이다. 시린골에서 이미 우리는 작가의 탄탄한 복선과 풍부한 세계관을 맛보았다. 이 장점은 단편애서 장편으로 왔어도 여전하다. 마치 튼튼하고 바삭한 파이크러스트 위에 군침이 도는 필링을 잔뜩 채워 넣는 듯한 풍부함을 느꼈다. 암흑 삼부작과 공포 단편, 초현장처리반으로 단련된 자극적인 공포의 맛은 사건의 심각성을 강조하고 독자를 몰입시킨다. 장편이기 때문에 각 인물이나 배경에 시간을 쏟을 수 있고, 그 정성은 세계관을 진하지만 유동적이게 녹여 빠져들 수 있게 만들었다. 가장 최근의 작품인 걸 증명이라도 하는 듯 장점은 늘리고 단점은 덜어냈다. 부디 시간이 있다면 천천히 진득하게 읽어보길 권하겠다.
미궁사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뜨는 건 이름이다. 두메초롱성, 희락초, 갈치물레, 감정갈귀, 모사꾼, 영수림, 퀜티마, 사람 이름 같은 고유명사들은 하나같이 독특한 발음을 가지고 있으며 두메초롱과 갈치물레, 감정갈귀와 같은 지명과 종족명은 특이하기 그지없다. 거기에 판타지하면 느껴지는 가상의 중세성곽과 들판 같은 청량하고도 웅장한, 그러면서도 누군가에겐 삶의 일부인 장소를 깔끔하게 담아냈다. 작가가 어중간한 감각이 아닌 확실한 지향점과 취향을 알고 쓰는 느낌이다. 특히, ‘야이샤’라는 이름은 자칫하면 ‘아이샤’라 읽거나 발음하기 쉽다. 이는 나는 이 부분에서 대중성을 추구하면서도 독창성도 유지하겠다는 작가의 묘한 고집이 느껴졌다. 물론 좋은 의미로.
그러나 내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은 건, 단편에서부터 보였던 작가의 튼튼한 기본기다. 일단 가독성과 같은 의미는 아니다. 물론 눈 아픈 기교 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이다. 하지만 강조하고 싶은 건 각 사건과 정보의 정리이다. 말하고 싶은 것이 많고 쓰고 싶은 것이 많으면 이야기가 흔들린다. 당장 미궁사변에 나타나는 개념과 설정만 해도 미궁, 마궁, 희락초, 미궁의 마력, 마법 발현 현상, 초원의 미궁화, 미궁석, 두 개 이상의 미궁석, 비인간, 모사꾼, 고대 마법, 미궁 유지 마력에 주역에 조연 단역에 악역과 사망자까지. 읽고 나서 정리하면 생각보다 글이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이런 정보들이 자연스럽게 들어오게 만드는 건 작가가 정리를 잘했기 때문이다. 사전이나 도감처럼 줄글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각 정보들이 사건으로, 사건들이 사람으로, 사건과 사건 인물과 동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편지’의 비밀이 밝혀지는 장면에서 감탄을 할 수 있고 모사꾼의 정체가 드러날 때 같이 환호할 수 있다. 이렇게 탄탄한 이야기는 마치 레고 같아 정보가 서로를 지탱하고 이야기를 안정적으로 만든다. 미궁병의 참혹함은 야이샤가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고 사건을 해결할 원동력이 된다. 그리고 독자를 자연스럽게 수사대의 편에 끌어들인다. 미궁병의 신비함은 미궁의 유지라는 HOW의 의문을 풀어내고 편지의 반전에 카타르시스를 준다. 초반부터 언급되는 야이샤에 머릿속 작은 친구는 사건을 해결하는 열쇠가 된다. 이렇듯 서로가 서로를 떠받치는 이야기는 편의주의적인 설정과는 정반대다. 1막에 총이 등장했다면 총알에 총열에 방아쇠에 개머리판까지 2막 3막 4막에서 골수에 척수액까지 알뜰하고도 튼튼하게 써먹는다. 이 모든 복선에도 불구하고 뻔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도 튼튼함에 가려진 강렬한 장점이다.
최대한 스포일러 없이 쓰기 위해 노력했다. 이 작품의 반전과 클라이맥스를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경험했으면 한다. 반전에 이르기까지 차곡차곡 쌓아가는 과정도, 모든 것을 뒤집었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거대한 윤곽도 직접 보았으면 하기 때문이다. 작품은 독특한 이름과 풍부한 세계관, 수많은 인물과 설정 속에 독자를 천천히 녹여낸다. 그러다 작가가 공포 단편을 쓰며 쌓아온 경험을 아낌없이 발휘해, 결정적인 순간에는 선명한 경악을 불러일으킨다. 고유한 가상 설정들은 낯설고 복잡하지만, 각자의 영역과 역할이 확고하게 정리되어 있다. 처음에는 정확한 경계를 알지 못하더라도 끝까지 읽고 나면 무엇이 무엇이었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를 요리에 비유할 수 있겠다. 강력분과 중력분, 박력분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도 빵과 국수와 과자를 먹으며 서로 식감과 맛을 느낄 수 있다. 성분과 원리를 알지 못해도 그것들이 전혀 다른 결과물을 만든다는 사실은 맛과 촉감만으로 충분히 전해진다. 이 작품 역시 먼저 설정의 정의를 암기시키는 대신, 각 설정이 만들어내는 사건과 인물, 공포와 반전을 차례로 맛 보여준다. 독자는 개념의 명확한 경계를 미리 알지 못해도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이야기를 모두 맛본 뒤에는, 그 재료들이 어떻게 구분되고 어떤 방식으로 서로 어우러졌는지까지 이해하게 된다. 복잡한 세계관을 설명으로 납득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로 체험하게 만드는 작품. 부디 다른 사람들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 글을 읽고, 내가 느낀 것과 같은 풍부함과 경악을 직접 맛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