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빠딸 작가님이 활동하시는 건 항상 관심있게 보고 있습니다.
댓글로 이야기라도 건내고 싶은 마음은 가득한데, 제가 워낙 탁한 어른이라… 자칫 때가 묻을까봐 교류 없이 멀리서 바라만 보는 중 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이게 아빠딸님과의 제 처음이자 마지막(?) 교류가 될 것 같습니다.
2.
사진 찍는 인간과 늑대인간을 읽고 이에 대한 감평을 말하려고 했는데, 스토리가 현재 마무리 되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사진관에서 사진을 배우는 주인공은 우연히 찾아 온 늑대인간과 친구가 됩니다.
이 소설 속에서 늑대인간은 인간들로부터 괄시당하는 존재입니다.
주인공의 스승을 비롯하여, 마을, 병원 모두가 늑대인간을 타박하는 가운데에 주인공만이 손을 내밀어주지만, 독을 먹고 고통받는 등 둘 사이의 우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습니다.
작품 태그, 소개 글의 ‘인류를 찍거라.’ 라는 이야기의 주제는 아직 나올 기미는 없는 상태입니다.
3.
리뷰 공모를 원하시는 작가의 말에는
“객관적인 평가 부탁드립니다. 내용의 흐름이나 자연스러움 정도를 파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라고 적혀있습니다.
내용의 흐름과 자연스러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자연스럽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면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이야기가 굴러가려면 ‘개연성’이 필요하다.
우연히 흘러가는 이야기들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우연히 흘러가는 이야기들이 재미없는 것 또한 아닙니다.
오히려 빡빡하게 진행되는 이야기보다. 우연하게 편안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들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럼 도대체 뭐가 문제냐?
그것은 이야기가 결국 사건과 사건의 연결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로또복권이 한 번은 맞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매번 맞을 수는 없습니다.
이야기는 사건의 연속입니다.
사건이 단건으로 처리되는 것에는 우연이 가능하지만,
여러 건으로 연결되면서 하나로 묶여야 할때는 인과가 필요합니다.
4.
개연성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일종의 법칙성입니다.
앞서 3에서 말한 인과율입니다.
‘A라면 B하다.’
A라는 원인이 있기 때문에 B라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거의 반드시 말이죠.
개연성은 둘로 나뉜다고 봅니다.
1) 상황 : 객관적
2) 인물 : 주관적
상황은 세상에 널리 퍼진 상식, 법, 질서등으로, 인물은 인물의 특성과 조형으로 굴러갑니다.
둘 모두가 알기 위해서 경험이 중요하지만, 특히 어려운 건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기중심적인데, 이야기에 쓰이는 인물은 타인입니다.
여러가지 조형이 필요한데, 작가가 타인의 삶과 감정을 충분히 관찰하지 못할수록, 인물은 입체적으로 표현되기 어렵습니다.
5.
앞서 설명한 개연성에 비추어 이 소설의 문제를 정리해보겠습니다.
첫째는 상황의 개연성입니다.
이 세계가 어떤 법칙으로 움직이는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 작품에서 늑대인간은 인간들에게 괄시받는 존재입니다.
그 설정 자체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왜 늑대인간이 그렇게까지 미움받는지, 그 차별이 법인지, 관습인지, 공포인지, 혐오인지가 아직 충분히 드러나지 않습니다.
마을도, 병원도, 스승도 늑대인간을 타박합니다.
하지만 그 태도가 하나의 세계관에서 자연스럽게 나온다기보다는, 장면마다 갈등을 만들기 위해 배치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둘째는 인물의 개연성입니다.
인물이 왜 그런 선택을 하는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주인공은 늑대인간에게 손을 내밉니다.
그러나 주인공이 왜 다른 사람들과 달리 늑대인간을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이유가 아직 약합니다.
단순히 착한 인물이기 때문이라면 조금 부족합니다.
주인공이 사진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그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남들이 괴물로만 보는 늑대인간 안에서 다른 무언가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 주인공의 선의는 단순한 착함이 아니라, 사진가적 시선에서 비롯된 태도가 됩니다.
이 작품의 제목은 「사진 찍는 인간과 늑대인간」입니다.
그리고 소개글에는 “인류를 찍거라.”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중심에는 결국 ‘사진’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전개에서는 사진이라는 소재가 이야기의 중심 동력이라기보다 배경 설정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주인공이 사진을 배운다는 사실이 사건을 움직이고, 늑대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주고, 나아가 “인류를 찍거라”라는 주제로 이어져야 하는데, 아직은 그 연결이 약합니다.
결국 이 작품의 문제는 사건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장면은 있습니다. 갈등도 있습니다.
주인공과 늑대인간의 우정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면들이 하나의 법칙 아래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느낌은 아직 약합니다.
인과가 없기 때문입니다.
늑대인간은 왜 차별받는가.
주인공은 왜 늑대인간을 다르게 보는가.
사진이라는 행위는 왜 이 이야기의 중심이어야 하는가.
이 세 가지가 더 분명해진다면, 이 작품은 단순한 인간과 늑대인간의 우정담을 넘어서, 사진이라는 시선을 통해 인간을 다시 바라보는 이야기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6.
작품에 대한 리뷰는 5에서 끝났습니다.
이 아래는 불필요한 사족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글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덧붙입니다.
1) 이야기를 구성할 때, 모듈화 작업을 한 번 참조해보시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 모듈화는 큰 덩어리를 작은 기능 단위로 나누어 정리하는 것 입니다.
원래는 프로그래밍이나 설계 쪽에서 많이 쓰는 말입니다.
소설에 적용하면 이런 뜻입니다.
이야기를 통째로 감으로만 쓰지 않고, 사건·인물·동기·갈등·주제 같은 작은 단위로 나누어 보는 것. #
모듈화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작가들 중에 이런 식으로 작업하는 사람은 도리어 소수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 방식을 말씀드리는 이유는 이것이 더 우수한 방법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야기를 구성하는 하나의 참고 방식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2) 제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저는 원래 소설을 써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책을 읽는 건 좋아했었지만, 글 재주도 없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흥미가 없어 단 한번도 써본 적이 없습니다.
아빠딸 작가님과는 어떻게 보면 완전히 반대의 인물인 셈이지요.
그런데 우연한 기회로 작년에 처음 장편 소설을 쓰게 되었습니다.
쓰고 난 뒤, 저는 이게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스스로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디자인이나 문서 기획 일을 체험하면서 몸에 익힌 방식이 소설을 쓸 때도 작동한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한마디로 저는 선천적으로 글재주를 타고났다기보다, 다른 분야에서 후천적으로 익힌 기술이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 도움이 된 경우에 가깝습니다.
재주가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작법을 모르는 사람도, 이 방식을 통해 장편을 구성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모듈화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에 한 번쯤 참조해볼 만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듈화라는게 소설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소설 뿐 아니라 어떤 작품이나 프로젝트를 한다고 해도 완성할 가능성을 높혀준다는데에 있어서는 마인드 맵 처럼 한번 쯤 배워 볼만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서 권해드려봅니다.
3) 모파상은 소설 목걸이를 쓰면서 이야기의 끝을 먼저 생각하고 소설을 집필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결론을 낼 것인가.
무엇을 말할 것인가.
먼저 주제를 잡고, 그 주제를 드러내기 위한 장면과 서술 방식을 고릅니다.
그리고 기승전결 각각의 사건을 그 주제에 맞춰 배치합니다.
그다음에는 사건에 들어갈 인물을 정합니다.
인물을 조형하기 위해서는, 그 인물이 사건 속으로 걸어 들어갈 동기가 필요합니다.
가능하다면 이 동기에 맞춰 캐릭터를 잡는 편이 수월합니다.
이 인물은 무엇을 욕망하는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무엇을 믿고 있는가.
그래서 왜 이 사건을 피하지 않고 통과하려 하는가.
결국 중요한 것은 인물이 사건 속에서 무엇을 원하고, 무엇과 충돌하며, 그 갈등을 지나 다음 장면으로 나아가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캐릭터가 저절로 이야기를 굴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그말이 이 캐릭터의 ‘동기’랑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A라는 인물에게는 A의 욕망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B라는 인물에게는 B의 욕망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C, D, E에게도 각각의 동기가 있습니다.
이 동기들이 서로 맞물리고, 때로는 어긋나고, 때로는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사건이 굴러갑니다.
캐릭터가 잘 짜여 있다면 사건을 억지로 만들 필요가 줄어듭니다.
인물들이 각자 원하는 것을 향해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갈등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만화작가들이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캐릭터 시트를 만드는 작업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인물은 무엇을 원하는가. 무엇을 싫어하는가.
어떤 상황에서 화를 내는가. 무엇을 위해서는 손해를 감수하는가.
무엇만은 절대로 포기하지 못하는가.
이런 것들이 정리되어 있으면, 인물은 장면마다 작가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성격과 동기에 따라 움직이게 됩니다.
그때 독자는 사건을 억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저 인물이라면 저렇게 할 수 있겠다”라고 납득하게 됩니다.
4) 결국 이것이 이루어지려면 사람에 대한 이해, 더 정확히는 타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기능적으로 캐릭터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착한 인물, 나쁜 인물, 조력자, 방해자, 피해자, 가해자처럼 역할만으로 인물을 배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인물은 쉽게 납작해질 수 있습니다.
이야기도 함께 단순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사람은 단순히 하나의 역할로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착한 사람도 비겁할 수 있고, 나쁜 사람도 누군가에게는 다정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선의로 행동하지만 그 선의가 타인에게 상처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는 이기적으로 행동하지만 그 안에 두려움이나 결핍이 숨어 있기도 합니다.
이런 복잡함을 이해할수록 인물은 조금씩 입체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인물이 입체를 가질수록, 사건도 더 자연스럽게 움직입니다.
5) 그래서 처음에는 사건과 인물에 각각 번호를 매기고, 알고리즘처럼 전개도를 만들어보는 것도 한 번쯤은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A 인물은 무엇을 원한다.
B 인물은 그것을 막으려 한다.
C 인물은 A를 돕지만, 사실은 다른 목적이 있다.
D 인물은 갈등을 피하고 싶어 하지만,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개입한다.
이렇게 인물의 사고방식과 동기를 먼저 정리한 뒤, 그 동기들이 어디에서 맞물리고 어디에서 충돌하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1번 사건이 2번 사건을 부르고, 2번 사건이 3번 사건의 원인이 되며, 3번 사건에서 인물의 선택이 다시 4번 사건으로 이어지는 식으로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이런 작업은 처음에는 다소 기계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이야기가 어디에서 끊기는지, 어떤 인물의 동기가 부족한지, 어떤 사건이 우연에만 기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잠깐이라도 큰 틀을 잡아놓아 보시기를 권장합니다.
공책 한바닥에 내가 쓰는 소설을 독자가 어떻게 읽게 될 것인지를 흐름을 잡아보는 겁니다.
A,B,C라는 인물이 존재하고, X 라는 사건이 발생한다.
X에 대해 A,B,C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처음에 X – Y라고 흐를 꺼라고 생각한 사건이 A,B,C에 의해 Z로 넘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흥적으로 쓰면, 이런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큽니다.
작가는 Y를 의도했는데 쓰다보면 Z로 넘어갑니다.
한마디로 X – Y로 넘어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면, Y로 넘어가게끔 만들 인물을 세우던지.
아니면 주인공 A가 Y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야 합니다.
결국 이것이 개연성입니다.
나중에는 이런 전개도를 일일이 만들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인물과 사건의 흐름을 잡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7. 재능이나 나이에 대한 이야기는 일부러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하고 싶은 다른 말도 많았지만, 전부 자르고 잘라냈습니다.
가능한 한 드라이하고 사무적인 어투로 작성했습니다.
괜한 수사나 감정적인 표현을 덧붙이기보다는, 제가 읽으며 느낀 구조적인 문제를 정리하는 쪽에 집중했습니다.
혹여 제 말이 다소 건조하게 느껴지셨다면, 그것은 작품이나 작가님을 가볍게 여겨서가 아니라 감평의 초점을 흐리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PS : 여기서부터는 좀 편하게 말하겠습니다. ###
딱딱하게 쓰려니, 와 진짜 힘드네요… (아마도 이게 제가 올린 리뷰들 중에서 제일 고심하고 쓴 걸 겁니다.)
마지막으로 무게를 빼고 말씀드리는 이유입니다.
길게 쓴 저 위에 이야기들 가볍게 흘려들으세요. (뭐???)
도움이 되면 좋겠다 싶어서 길게 적었지만, 전부 저라는 사람 개인의 의견일 뿐이고 저것은 정답이 아닙니다.
【 정답은 작가님 안에 있습니다. 】
잘 아시겠지만, 이건 소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방식이 있습니다.
그걸 발견하기 위해 살면서 시행착오를 겪습니다.
작가님 앞에 많은 과정이 기다릴 것이고,
그 중에 하나가 제가 말한 것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적었습니다. (실은 제 MBTI가 P라 이런 게 꽤 도움이 되더라고요.)
“젊어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건 좋은 일이니까요.” “다양한 의견을 듣는 건 좋은 일이니까요.”
제가 이 글을 그래도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한 지점이 이 지점입니다.
“글쓰는 것. 지금 재밌는게 제일 아닐까요?”
재밌게 많이 만들어보세요.
그 나이에만 할 수 있는 감성이 있습니다. (저더러 지금 동화를 쓰라면 절대로 못 쓸겁니다. 전부 잊어버렸거든요. ㅎㅎㅎ.)
작가님 작품들은 좋은 작품입니다.
지금 많이 만들어 놓으시면, 그것들 모두가 훗날 작가님의 큰 재산이 될겁니다.
작가님 활동을 멀리서 응원합니다.
화이팅.
(어느 작가님이든 제가 잘못된 말을 하는 거 같다면 바로 잡아주십셔… 아빠딸 작가님한테 리뷰 하려니 제가 말실수라도 할까 너무나 두렵습니다.)